남해에서 소멸하는 도시의 미래를 찾다.

소멸하는 지방도시를 ‘미래세대’와 ‘문화예술’이 고민하다 : ‘남해무인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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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paxhistorian)등록 2020.05.04 17:00

남해는 '섬'이다. 흔히 지명 상의 이유로 지역보다는 바다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지명은 경상남도 '남해군'이다. 1973년 개통한 '남해대교' 덕분에 현재는 육상으로만 이용 할 수 있게 되어 섬이라는 인식이 희박해져 갔다. 제주도나 울릉도 등과 달리 섬으로의 인지도가 잘 없지만, 제주도를 빼닮은 섬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조선 건국 전 찾았다는 사찰 보리암을 중심으로 이어진 산등성이는 한라산만큼은 아니지만 빼곡한 산세를 자랑한다. 대한민국 8경 중 하나라는 한려수도를 끼고 보이는 바닷가는 언덕과 계단식 논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만 6시간이 걸리고 철도와 항공 교통이 전혀 없는 곳이지만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관광지로 유명한 이유다.
 
관광산업 이후의 도시를 고민하다 : 소멸하는 지방 도시의 고민과 방향
 
하지만 남해는 '소멸'하는 도시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228개 지자체 중 3분의 1 이상은 30년 후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2017년, 중앙일보) 남해군은 없어질 수도 있는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소멸 위험군에 해당해 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없다면 30년 내 도시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진은 이야기한다. 남해는 관광지로서 방문율은 높지만, 실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고령화되어 있다. 군민이 약 4만 명 정도로 국내 지역 중 인구 밀도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도시에서 확인될 수 있는 많은 기능(인프라, 정책, 문화 등)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늘어남에도 인구가 줄어 인프라는 확충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음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생활은 개인에게 만족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발전되지 않은 공간으로써의 불편을 그대로 간직하고 생활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편하고 성장의 가능성이 없는 이곳에 미래세대인 청년들은 보기 쉽지 않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남해는 귀촌 청년들에게 장려금으로 50만 원을 지원하기도 하는 동시에 청년 전담부서를 만들고 청년 조례를 제정하는 등 '청년 친화 도시 남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잘 알려진 '미조 냉동공장 재생 프로젝트' 등 문화예술인과 관련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이다.
 
남해라는 '소멸'하는 도시에 내려와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지역 재생과 귀촌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등을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팀들뿐만 아니라 '남해 돌창고 프로젝트'로 알려진 공간과 귀촌 청년들을 지원하는 '팜프라' 등이 대표적이다. 돌창고 프로젝트는 양곡과 비료를 저장하던 남해의 자연석인 청돌로 만들어진 창고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프로젝트이다. 지역 카페로도 잘 알려졌지만 지역에서 문화와 예술로 삶의 방법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전시, 축제 등 다양한 기획들이 펼쳐진다. 팜프라는 청년들이 농촌에서의 삶을 자립할 수 있도록 주거, 네트워크, 교육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10여 명의 청년들이 팜프라 프로그램을 통해 남해와 농촌을 경험했다.
 
도발적인 제안. 우연한 만남. 즉흥적인 결정. 이들은 왜 남해로 왔을까?

한편 '소멸'을 직접적인 주제로 기획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남해 근방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카카카'가 대표적이다. 서울 각지에서 문화기획, 디자인, 사회적경제 분야 등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2018년 2월 남해군으로 이동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018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로컬 라이프 랩>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지역조사, 인터뷰 활동을 진행했으며 2019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스타트업 서바이벌> 지원사업을 통해 '지방 도시소멸'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탐구하고자 지역 잡지를 기획하는 등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작년 9월 소멸하는 도시 남해를 주제로 개최한 제1회 남해 무인도영화제로 대표된다.

 

남해무인도영화제 상영 사진 2019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남 남해군 남면 남명초등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열린 남해무인도영화제 사진 ⓒ 조현준

 
 
2019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남 남해군 남면 남명초등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열린 남해무인도영화제는 3일간 '지역','방언','촌'이라는 세 개의 섹션에서 12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상영작들은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귀촌, 청년, 지역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영화제를 함께 기획하기도 하고 출품작인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의 박향진 감독은 카카카 멤버들과 함께 이주하면서 영상작업을 하였다. 도시에서의 삶에서 겪은 어려움과 함께 떠나며 방을 구하는 과정들이 담겼다. 영화의 인터뷰 한 장면에서 멤버 한 명은 '종이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도시의 삶에서는 나 자신을 차곡차곡 접어서 구겨 넣는 종이 인간이 된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지며 나답지 않은 게 싫다고 했다. 이들은 그렇게 서울을 떠나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게 되었다.
 
카카카 멤버들이 이곳, 남해에 내려 온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2년 전 어느 겨울, 서울에서 다니던 퇴사를 고민하던 친구들 여러 명이 모였다. 누군가는 이직으로, 누군가는, 자기 작품을, 누군가는 귀농을 꿈꿨다. 마침 남해가 고향이던 친구가 있었고 여행기획사를 차릴 장난으로 함께 내려갔다. 겨울에도 티 하나만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함께 꿈꿀 공간이 있었고, 시간과 사건, 감정과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남해군 선구리에 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위치의 집을 우연히 구했다. 방 4개에 마당과 창고가 딸린 집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에 얻었다. 서울에 기반이 있던 친구들이라 완전히 이주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서울에 방을 남기고 오가기도 한다. 멤버 중 몇몇은 아직 서울에 직장이 있고 3일은 서울에서 일을, 4일은 이곳에서 삶을 가져가며 살기도 한다.
 
 

남해무인도영화제 참가신청부스 2019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남 남해군 남면 남명초등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열린 남해무인도영화제 사진 ⓒ 조현준

 
 
지역에서 '생존'하고 싶은 이들의 생존 신고로 지역에서의 모험을 초대하다.
 
이들이 처음 내려와서 도시와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였다. 스타벅스, 올리브영 같은 편의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하나 보려면 40분씩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남해군 내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다. 3년 전 개관한 작은 영화관 '남해 보물섬 시네마'는 단관영화관으로, 현재 군민들의 큰 호응과 관심으로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영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나 프로그램이 부족하였다. 지역민의 문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남해 국제탈공연예술촌의 '영상제', 남해여성회의 '손뼉영화제' 등 작은 시도들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지역에서 영화제는 대표적인 관광상품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대규모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닌 영화제는 찾아보기 드물다.
 
지역에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영화제는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있다. 1999년 시작도니 이래로 올해 22회를 맞이하는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강릉시 정동초등학교에서 지역민 및 참여자 모두에게 무료로 독립영화를 3일간 상영한다. 정동진이라는 문화적, 자연적 장소성을 가진 곳의 영화제라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 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독립영화' 라는 키워드를 지역과 영화계에 안착 시켜 장수하고 있는 영화제로 알려져 있다. 남해 무인도 영화제 역시 정동진 독립영화제로부터 모티브를 받아 '지역소멸'과 '청년'을 주제로 영화제를 기획하였다.
 
영화제를 기획한 안지원(28) 카카카 공동기획자는 "남해에는 타지역에 가지 않더라도 매력적인 문화 행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남해 지역 청년들의 볼거리와 놀 거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절실하다" 라며 "영화제를 통해 남해를 지역특산물, 관광명소가 아닌 로컬리티의 관점에서 '지역'과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입체적으로 경험 시켜 먹고사니즘'으로서의 생존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을 모색
할 수 있는 내적 동기를 형성하기를 기대한다" 이야기한다. 영화제에는 지역 이장님, 어르신,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했다.
 
 

남해 무인도영화제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남 남해군 남면 남명초등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열린 남해무인도영화제 사진 ⓒ 조현준

 
 
멤버들은 여전히 이곳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디에도 이곳만큼 마음이 편한 곳은 없을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생활일 뿐인 시골에서의 생활이, 이들에게만큼은 편안한 안식처라 느낀다. 이들은 활동을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 기획과 콘텐츠를 고민한다. 연고 없는 지역에 내려와 활동하는 단체로서 단단하게 이곳에 뿌리 내리고 사람들의 삶에 예술이라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이 만들어나가는 '멋진 신세계'가 오래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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