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의 시댁행에서 느낀 것

시댁 가족과의 대화에서 듣는 자의 입장을 헤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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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uj0102)등록 2020.05.12 15:24
지난 주말, 시댁에 갔을 때 평소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시누가 쉬는 날인지 일찍 오셨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댁 식구다. 대화는 몸에 좋은 음식과 운동에서 시작되어 육아로 흘러갔다.

우리는 네살 차다. 크다면 크고 작은 차이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상사가 부하 대하거나 이모가 조카 대하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세대차도 난다.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30대가 되기 전에 관리자가 된 직업적 배경, 부모를 대신하여 집안을 일구며 살아온 장녀의 역할, 고2가 된 아이를 키우는시누와 올케라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시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남편도 눈이 많이 나쁘다. 신경을 써 줘야겠다는 말에 남편처럼 눈이 나쁜 시누는 조카(시누의 아들)가 '책을 많이 보지 않아서 눈이 나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책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밥 먹을 때도 책을 붙잡고 있고 밤을 지새워가며 책을 읽다가 혼이 자주 났다. 현재 시력은 0.8 정도. 조금 멀리 있는 글자는 잘 안 보이지만 안경을 안 쓰고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내 경우를 봤을 때 책이 주요변수이긴 하지만 상수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에 "진짜 어릴 때부터 많이 본 건 아니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한 뒤 무수한 받아쓰기에서 틀려가며 익힌 한글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어서 페이지까지 외우고 이동도서관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나의 유년시절이 통째로 거부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고 싶진 않아, "뭐. 그렇죠."라고 대화를 끝냈다.

이어서는 영양보조식품 이야기가 나오다가 최근 골감소증 때문에 생존 운동으로 하고 있는 스쿼트가 화제에 올랐다. 시누는 여자들은 누구나 출산하고 나면 골밀도가 낮아진다며 건강에 신경쓰는 건 좋지만 과하게 챙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나의 골밀도는 -2.4(골다공증은 -2.5부터 시작). 아직 40대 초반인데 이런 수치가 나와서 주치의가 거듭 운동을 강조했다. 출산 직후부터 -2.2가 떴고 당시 병원갈 시간도 없이 바빠서 자꾸 치료를 미뤘다. 부서이동이 된 후, 근무지의 특성을 잘 활용해 3개월에 한번씩 채혈도 하고 상태를 점검하며 약을 먹고 있다. 당장 생명에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관리와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하셨고 다음 검진을 앞두고 조금이나마 노력 중이다.

상황을 듣고 멋쩍어진 시누는 다음 모드로 전환했다. 여지껏 뭐하고 지냈냐는 거다. 평가와 판단, 충고와 조언의 단계다. 게을렀던 것도 맞고 운동할 여유가 없었던 것도 맞다. 정확한 자세를 배워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없이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고 있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상황에서 운동시간까지 보탤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겼다. 최근에서야 유투브에 좋은 영상들이 많이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적당한 것을 골라 매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설명과 달리 주요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릎에 무리가 갈 것 같은 우려가 든다.

관리를 일상화하는 시누에게 피트니스는 자신있는 분야였나 보다. 스쿼트를 한다는 말에 바로 자세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피트니스 용어들이 쏟아졌다. 미혼시절 헬스장 좀 다녔고 요가도 1년 반 했는데 들어봤지만 언뜻 연상이 잘 안되는 영어단어들이 쭉 이어졌다. 시누의 결론은 '스쿼트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제대로 하는데 3년 걸렸다. 그러니까 다른 거 해라.' 였다. 이미 스쿼트를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깨달음의 결론을 전했는데. 우리의 대화는 늘 일방통행으로 가르침과 훈계로 흐른다.

사실 시누는 괜찮은 사람이다. 요즘같이 가정의 달을 맞아 쏟아지는 시댁 뒷담화를 듣다보면 그녀같은 시누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자기 시댁에 가져갈 차례 튀김을 내게 맡긴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그것은 상황 상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어머님과 남편이 일을 크게 만들어 더 서운했던 일이었다. 그나마 시누는 같은 여자, 며느리 입장에서 어머님이 선을 넘으면 불의를 참지 않고 한마디로 정리를 해 준다.

어머님이 매번 반복하시는 수많은 말씀 중 Top 5에 드는 레퍼토리가 있다. 남편과 시누, 우리 아이는 이가(씨), 자신과 아주버님, 조카는 김가(씨), 그리고 나는 박가(씨). 그 말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늘 하신다. 무의식적인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드러내며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그 발언에도 남편은
"사실이잖아. 뭘 그리 예민하게 듣냐?"
고 감수성 없이 반응하지만 시누는
"그래서 왜? 패싸움이라도 시킬라고? 그런 소리를 뭐하려고 하는데?"
하며 자신의 엄마를 다그칠 줄 안다.

정도가 과할 뿐 어머님을 챙길 때도 공평하게 때로는 더 많이 챙기는 인생 선배로서의 모습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녀를 좋아하고 배울 점도 많다고 여김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나이 더 먹은 사람, 아이를 먼저 키워본 사람, 상사 모드로 변해 수많은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이 우리는 동등한 존재가 아님을 수시로 상기시키며 서열을 확인하게 된다.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잘나든 못나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갈증이 난다. 맥주가 땡긴다. 그리고 내게 그런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충조평판과 비교의 본능이 전혀 없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그날 저녁은 등심구이와 채소볶음을 준비했다. 양송이와 양파를 볶았다. 시누는 내게 양송이를 썰어 줄 것을 부탁하며 같은 말을 세번 반복했다.
"새송이에 비해 양송이 버섯이 맛있지. 새송이는 맛이 없어. 맛이 없다고."
그렇다. 시누의 선택은 탁월했다. 고기 볶음 요리에는 양송이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새송이든 양송이든 느타리든 표고든 송로든 세상의 버섯이란 버섯은 다 좋아하는 나는 버섯에 굳이 차별을 두고 싶지 않다.
"양파와 소고기, 양송이 참 탁월한 조합이야"
라고 말하며 오늘의 저녁에 감사하고 싶을 뿐.

그들과 함께일 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의 정체를 깨닫는다. 힘을 가진 자로서 비교와 견주기. 자신의 가치관을 강화하기 위해 끝없이 비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대화법은 결국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약한 이를 소외시킨다. 건강 상의 이유로 약을 챙기고 운동을 해야하는 이에게 게으름을 다그치고 운동법의 장단을 설파하기 보다는 "걱정되겠다. 잘 챙겨. 내가 좀 아니까 필요하면 도와줄께" 정도로 격려해주는 수준에서 대화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과 주장이 중요한만큼 남의 그것은 어떠한지 귀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늘 약자의 입장이 분하기만 했다. 그랬기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소중하다. 예민하게 반응한 나의 감정이 머문 지점에 같은 입장의 다른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아이였을 것이고 동생, 사무실의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직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역할에 납작하게 고정된 엄마나 시어머니도 때로는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차별받았던 것과는 또다른 지점에서.

나이가 들고 지위를 획득하면서 성취한 것과 경험의 우월함을 기준으로 비교와 견주기를 하며 충조평판을 건네지 않는 연습을 조금씩 해 보려 한다. 자주 약자의 입장에서 평가당하고 분노하는만큼 나도 자주 놓치고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더욱 부지런히 감수성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싶다. 약자이기에 알 수 있는 약자의 입장을 조금씩 헤아려 가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제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https://blog.naver.com/uj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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