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 포기한 급식 꾸러미

러시아 국적 학부모들에게 280만원 돌려줘

검토 완료

정수기(jungsuki)등록 2020.06.03 13:46
1. 문제 상황 발생
아침에 학교에 가니, 러시아 선생님이 핸드폰 메시지를 보여준다.
러시아어로 주고 받는 메시지 중에 유일한 한국어 문장 '배고파서 어떡해'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에요?"
나는 물었다.
 
"미르(가명) 아빠가 뒤늦게 연락이 왔어요."
안내 사항을 알리려고 전화하면 잘 받지 않더니, 결국 신청 기간을 놓친 모양이었다.
 
어떤 부모에게는 20번이나 통화했지만 결국 신청이 불발되기도 했다. 통화만으로 부족할 때는 러시아어로 설명한 문자, 화면캡쳐를 주고 받기까지 했다. 평소 핸드폰 앱에 익숙하지 않은 학부모가 많기 때문에 급식 꾸러미 회원가입 절차를 끝내 마치지 못한 것이다.

2. 추가 신청의 기회가 생기다
며칠이 지나자, 다문화협력학급 담임선생님들 단톡방으로 요청이 왔다. 4학년이었다. 급식실에 문의해서 확인한 결과 영양선생님께서 추가 신청을 도와주시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4학년의 러시아 학생 몇 명이 신청을 못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급식실입니다.
 
급식 식재료 지원 사업(농협몰, 식재료 꾸러미)과 관련하여 이알리미로 신청서를 받았습니다.
현재 우리학교는 신청서 미회신자와 아이디 미생성 학생이 너무 많습니다.
바쁘시지만 담임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알리미 회신은 마감을 했기 때문에 제가 보내드리는 아래 파일 신청서를 개별로 받아 주셔야 합니다.
학생들이 매일 등교하지 않으니 부모님께 파일로 받으셔서 저에게 보내주시면 됩니다.
(부모님께서 수기로 작성한 뒤 사진을 찍어 담임선생님께 전송, 또는 부모님과 통화한 뒤 담임선생님께서 작성 등)
번거로우시겠지만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10만원 상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담임선생님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또한 다문화, 조손가정 등으로 농협몰 가입이 어려운 학생은 농협측에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니 아이디를 적는 곳에 "지원요청"으로 처리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개인정보는 모두 다 작성해주셔야 합니다)
 
6.5일까지 제 메세지로 부탁드리며, 기간내 추가 신청서를 보내주시지 않을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기간 안에 추가신청을 받기에 난관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첫째, 아이들이 주1회 등교라 서류 회수를 하려면 학부모들이 모두 방문해야 한다.
둘째, 학부모들은 화면캡쳐도 핸드폰마다 기능키가 달라서 또 다시 온라인 회원가입의 악몽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생각이 났다. 학부모와 사전에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여러 번 통화에서 전달받았으니, 우리가 신청서에 대신 기입하는 것은 어떨까?
 
3. 다문화협력학급 선생님과 함께 하루 만에 추가 신청서 수합하기
나는 급히, 협력학급 선생님께 협조를 구했다.
학년별로 러시아학생 신청하지 않은 학생 빠짐없이 받을 수 있게 아래 파일에 명단 정리해서 주시면 서류 작성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2분 내에 양식을 만들어 톡방에 올렸다.
올리자 마자, 바로 4학년 메시지부터 도착했다.
빠른 협조가 되도록 할테니, 협력학급 샘들의 명단 작성 협조 부탁드려요!
학년별로 명단 정리해주시면, 서류 작성해서 바로 급식실로 전달할게요~
혹시 다른 학년도 급식실 통해 명단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명단 주시는 학년 순차적으로 처리하도록 할게요~ 협력학급 선생님들 이런 때 선제적으로 옆반에 챙기고 도와주시면 제가 다음에 꼭 우수 사례로 잘 엮어서 보고하도록 할게요^^ 늘 감사드려요~~~^^

내가 보낸 메시지에 방역과 온라인 수업, 면대면 수업을 병행하고, 녹초가 되었을 선생님들이 빠르게 수합하여 답장을 주었다.
나는 러시아선생님들께 내일 이런 일을 하게 될거라고 안내차 통화를 했다.
러시아선생님은 다시 1차 신청을 놓친 학생 명단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수집해서 표를 완성해주었다. 밤 9시 50분이었다. 혹시 주소변경이 있을까봐 러시아 학부모에게 톡방을 통해 확인하고 정리한 것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전화로 동의한 것으로 보고, 직접 우리 손으로 도로명 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기입하는 작업을 했다.
 
급식실로 전달하며, 영양사 선생님께 나는 위로와 격려를 드렸다.
"이 업무가 추가되어 많이 힘드실텐데,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도 나에게 한 마디 하신다.
"협조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온 나는 협력학급 선생님들 단톡방에 일이 마무리되었음을 알렸다.
협력학급샘들의 협조로 모은 명단 어제 밤에 러시아샘들이 주소 변경 확인해서, 조사 마쳐주셨고, 오늘 아침에 저희가 28명의 신청서 자필로 주소 쓰고 방금 영양사님께 제출 완료했습니다. 영양사샘도 고생하실텐데, 기꺼이 해주시고, 샘들도 협조해주셔서 28만원의 혜택이 러시아가정에도 가게 되었네요. 교감샘도 수고하셨다고 전해달라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바로 바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아차! 정신을 차리고 보니, 28만원이 아니라, 280만원이잖아?
이런 부끄럽군.'
 
4. 다시 바쁜 일상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반 학생을 위한 온라인 수업자료를 제작하며, 하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니 어이없는 실수도 발생한다.
아침에 러시아 학생 전입생이 와서 처리를 도왔다.
또 러시아어 선생님이 집에서 만들어온 온라인 수업 자료 업로드를 했다.
학교에서는 조용한 환경이 되기 어려워서 서로 시간을 피해 작업해야 한다.
그리고 나도 어제부터 온라인 수업 1차시 개발한 것을 e-학습터에 탑재하고, 오늘 중 2차시 개발을 마치려고 한다.
오늘도 제암초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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