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기준 - 역사 바로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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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태(hpalian)등록 2020.07.22 10:07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석사나 박사 등의 학위를 받거나, 세상의 잣대에 걸맞는 자격증을 따거나. 이와는 다르지만 전문가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오덕은 평범한 초등학교 선생이었지만, 평생 우리 말을 연구했다.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교육에 힘쓴 그는 여느 국어학자 못지 않은 최고의 전문가이다. 강판권은 역사학자이지만 나무 인문학자로 불리며, 나무가 좋아 나무에 빠진 식물학자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1996년에 돌아가신 고려대 사회학과 최재석 교수는, 한일고대사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역사학자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들 모두 이른바 '축적의 시간'을 거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셈이다.

흔히 말하는 문사철을 비롯해서, 영화, 음악, 미술의 여러 분야에 오래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인문, 사회과학의 학문 영역이나 심지어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미 존재하는 연구의 결과물이나 창작물을 읽고 교감하며 그저 누리기만 해도 된다. 그러는 사이 (축적의 시간을 거쳐) 탁월한 성과를 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쳐서 인정을 받으면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전문가에 대해 요즘 조금씩 회의를 느끼고 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정은 '암묵적 동의'로서 받아들인다. 그것도 하나의 약속이니까. 다만, 전혀 예외가 없는 듯 완고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앞서 말한 이오덕, 강판권, 최재석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땀흘리며 문헌을 탐구하고 발품을 팔아서 마침내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고 하자. 이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거나 평가하기에 앞서, 그가 해당분야의 학위가 있냐부터 따지고, 비전공자의 성취가 아무리 빼어나도 아예 논의의 대상에 올리지도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문의 카르텔이 완고하게 형성된 영향도 있겠고, 객관적인 '타이틀'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잣대도 한 몫 했을 것이다.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역사이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의 일에 대한 복원이나 탐구의 뜻을 가진 역사 historia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나 그에 대한 서술을 일컫는다. 그런데 과거 한 시기의 일을, 그것도 상고사라 불리는 기원전의 이야기를 서술한다고 하자. 부족한 사료때문에 많은 논란을 지닐 수밖에 없다. 역사는 사료나 유물을 통해 토대를 쌓고 학자의 합리적인 추론이 덧대야 비로소 완성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학설을 딋받침하는 근거를 요구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과거를 다루기에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제한되는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철학을 생각해보자. 행복의 기준이나 삶의 의미가 제각각이듯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다양한 가설이 나오고, 그로 인해 철학의 폭은 외려 더 넓어질 수도 있다. 역사는 다르다. 하나의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누가 더 진실에 다가갔는지를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진실이 모두를 아우르진 않는다. 밝혀지지 않은 유물을 발굴하거나, 이웃 나라의 사서까지 모조리 찾고 비교해서 마침내 새로운 학설을 내놓지만, 여전히 카르텔이나 타이틀이라는 넘어야 할 산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사관의 차이에 따라 제각각 해석이 분분하다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너무 답답하고 궁금하다. 역사연구의 방법론에는 의례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연 다른 나라의 역사학자도 자신과 다른 사관을 드러냈다고 해서 밝혀진 진실마저 부정할까? 과연 제 나라의 역사를 신화로 내몰고 우리처럼 축소하려고 애쓸까?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채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강단사학의 실재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들도 한국인일 텐데, 팔이 안으로 굽겠지 설마 그럴까 여겼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점점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강단사학자들은 역사학자든,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려한 (예의 최재석 같은) 학자든, 그 학설이 제아무리 근거를 담지한 진실이라도 자신이 믿는 사관과 다르면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해방이 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사관을 맹신하며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곳곳에 일본 우익세력과 연대한 친일파가 많은 걸 보면.

일본은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며 재침을 위한 근거로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한족의 시조로 삼는 삼황이 모두 동이족 출신인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만약 이를 인정하면 중국 고대사는 고조선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역사를 왜곡하며 동북공정에 혈안이 된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은 불순한 정치의도가 밑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양심 있는 학자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그릇된 애국심'에 의해 역사왜곡을 일삼고 묵인하거나 방조한다.

우리의 역사학자에게 일본과 중국처럼 왜곡하라고 부추길 마음은 전혀 없다. 더도 덜도 말고, 사관을 떠나서 사료와 표지유물에 근거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면, 그 결과물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일본과 중국의 눈치를 보며 한사코 그들의 왜곡된 역사를 따르기만 할 텐가? 식민사학의 주장을 맹신하면 도대체 무슨 이득을 보길래 이토록 제 살을 갉이먹는지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슬쩍 황해도로 비정批正해도 우리 사학계는 눈을 감고 모르쇠 한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동의하며 버젓이 국사책에서 가르친다.

선진국의 기준

역사는 복숭아를 배어물 듯 긴장과 설렘으로 속까지 확인해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만큼 난관을 무릅쓰고 깊이있게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다. 그 험난한 길을 가는데 안타깝지만, 역사의 실체가 왜곡된 부분은 없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떤 의도를 가진 채 역사의 진실을 감추거나 비트는 일이 너무도 흔해서다.

거짓된 역사를 배운 일본과 중국의 학생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서로 이웃나라를 인정하며 사이좋게 지내려 하기보다, 지난 잘못을 덮씌우고 호시탐탐 영토를 침범하려고 두 눈 치켜 뜨고 있는 기성세대를 후대는 닮아가지 않을 텐가! 중화사상에 치우쳐 한반도 북쪽을 제 역사에 넣고 사료와 유물을 조작하고 훼손히는 어른을 바라보면서 한참 커가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랑케 Leopold von Ranke는 역사학에 과학을 접목시켜 역사학을 새로운 학문영역으로 틀을 세웠다. 랑케로부터 비롯된 일본 역사학계는 실증사학이라는 역사연구의 방법론을 계승하였지만, 정치와 결탁하여 교묘히 식민사관을 꾸미는 데 이용하였다. 랑케가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내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고 할 듯싶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에드워드 카 Edward Hallett Carr가 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읽고자 하는데, 지금 우리의 역사는 망가져서 분절상태이다. 과거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일본과 중국이 우리를 업신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넌지시 역사를 왜곡해도 성토는커녕 오히려 순순히 받아주는 나라이니 더 기고만장할 수밖에.

우리나라는 이제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어섰고, 코로나 대응에 모범을 보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이 위기를 빨리 극복해서 재도약을 하리라 믿는다. 모두가 선진국으로 추켜세운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 여전히 후진국이다. 역사를 홀대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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