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성'을 명분으로 선수협을 배제하려는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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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빈(woodroof)등록 2020.08.04 15:31
최근 코로나19를 둘러싼 후속조치로 선수단의 연봉삭감을 안건으로 한 프로축구연맹과 선수협 사의의 논의가 결렬되었고, 결렬과 함께 각 언론사에서는 선수협을 공격하는 기사들이 쏟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상투적인 주장과 함께, 선수단의 '대표성'을 공격하는 기사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7월 30일 <일간 스포츠>에서는 "진성회원 40%...선수협은 대표성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기사는 2019년 기준으로 선수협 가입 선수가 630여명에 불과하고, 이는 프로축구연맹 등록 선수의 81%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수협의 대표성을 지적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사는 추가적으로 선수협의 '진성회원' 비율이 전체 프로축구 선수의 40%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노조가입률이 100%인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며 선수협의 대표성을 공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성'이라는 표현은 정당 내부 문제에 관련된 기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당과 노동조합에서는 일정기간 회비를 납부한 당원과 조합원들에 '권리당원' 혹은 '진성당원'과 같은 명칭으로 분류한다. 조직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조직 내에서 조직원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은 회원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권리당원, 진성 조합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정당과 조합의 운영이 보다 민주적이고, 적극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진성회원의 비율로 조직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것은 타당한 비판으로 보기는 어렵다. 회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그에 따른 의결권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직 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회비를 납부하지는 회원들의 사정은 제각기 다르다. 해직자들이 조합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노동조합도 있는 것처럼, 선수협의 경우, 계약해지 상태로 자유계약 신분의 선수로 생활하는 선수도 있을 수 있다. 소속이 있어도 선수협 회비를 납부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가지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물론 한국의 주요정당들이 월 '3-5천원' 정도의 낮은 당비를 납부하기만 해도 권리당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상징적인 수준의 회비를 납부하게 하면서 진성회원의 비율을 늘려나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선수협 내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지, 선수협 밖에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선수협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논리는 연맹이 고수하는 협상방식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프로축구연맹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선수들의 참여를 연맹에서 추린 '주요 구단'의 주장단을 불러 모으는 형태로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선수협과의 논의가 결렬된 이후에도 프로축구연맹은 '주요 구단의 주장'들을 불러 모아 연봉삭감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 구단'도 아닌, '주요 구단'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주장단은 선수들을 대변할 정당성을 가지는가? 구단과 감독의 의사에 따라 선택된 주장단이 어떻게 전체 프로축구 선수들에 대한 대표성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모든 구단의 대표가 참여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의 결정은 어떻게 프로축구 구단 전체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가?

혹자는 선수협이 주요 활동 멤버들을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가입여부를 공개해야하는 의무가 없는 것처럼, 선수협 역시 마찬가지로 선수협 가입여부를 밝히는 것은 선수 개인의 선택에 불과하다. 프로야구선수협의 사례에서 보듯, 선수협이 일정한 힘을 가지지 못하면 선수협 가입 여부가 부당한 트레이드나 방출, 강제은퇴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선수협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기사가 등장하는 것은 프로축구연맹이 선수협을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뜻한다. 실제로 선수협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기사들에는 익명의 프로연맹 관계자가 등장하며 선수협의 정당성을 공격하고 있다. 선수협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기사들은 주장단을 소집해서 연봉삭감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연맹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사전정지작업이다.

프로축구연맹의 일방적인 연봉삭감논의 강행은 상황에 따라 프로선수들의 계약이 언제든 가볍게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바라볼 문제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프로구단들이 표면적으로 맺는 계약과는 별개로 선수들의 연봉을 계약과 무관하게 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가 리그 전체에서 제도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면 선수들의 권익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계약은 상호 간의 의무와 권리를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스포츠에서 의무는 선수에게만 강요된다. 스타플레이어들은 에이전트, 변호사, 여론의 압박을 무기로 떨쳐나갈 수 있지만, 그게 가능한 선수들은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하다. 선수협의 존재가치는 스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무명의 2군 선수라도 자신이 맺은 계약과 그 계약에 따른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

많은 언론들이 프로축구를 상시적 위기상태로 규정하고, 높은 인건비에 대한 공격과 함께 리그 발전을 위한 헌신을 선수들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프로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언론의 논조 구분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의 선수협 비판 기사가 대표적이다. 만약 이러한 논조의 기사를 경향신문의 사회면이나 정치면에서 읽는 것이 가능한 것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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