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공공성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

국민을 볼모로 한 정부와 의료계의 치킨게임 즉시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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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관욱(rocco)등록 2020.08.28 18:05
시설이 열악하고 의료 인력이 부족하며 수익도 내지 못하여 환자들에게도 외면 받고 지자체의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공공병원이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불행하게도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재난 덕분이었다. 내원환자들에게 불안감을 줄까봐 감염병환자 유치를 꺼리는 민간병원들에 비해, 행정력을 이용한 병상동원이 용이하고 필요하다면 병원 전체를 비워 코호트 격리시설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 제2, 제3의 감염병 위기상황에 대응하여 권역별로 공공병원을 확충해야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공병상의 부족과는 반대로 민간병상은 넘쳐나는 나라다. 따라서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도 공공병원의 확충만큼이나 필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영리추구에 전념하는 민간병원의 실상은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몇 안 되는 공공병원도 경쟁력이 생기면 민영화시켜 이름만 공공병원인 매머드급 병원으로 운영되고, 적자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은 폐원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공병상 수를 늘이는 것도 시급하겠지만, 공공병원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질적인 향상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공공병원이 영리목적의 운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로 감염병 유행 시기에 입원환자를 퇴거시키고 쉽게 동원될 수 있는 총알받이로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 공공병원은 그 기관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하며, 그에 합당한 양적, 질적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공공병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공공병원을 지어도 근무할 의사가 부족하니 의대정원을 늘여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별도로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신설로 대표되는 정부의 개혁정책은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20년만의 의사 총파업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의사들의 파업투쟁에 반대한다. 의료인의 파업은 환자의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생명을 위협하게 되어 올바른 의료체계를 세우겠다는 스스로의 투쟁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의료현장과 학교를 떠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가 정부의 성급하고 일방적인 정책추진에 있음에 대해 공감하며 깊은 아픔을 느낀다.
 
정부는 정책추진의 근거로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의사수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에 속하며, 의사인력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지역사회에 의료인 수급이 어렵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평가지표중 하나인 인구당의사수 만으로 한 국가의 의료시스템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의료의 접근성이나 의료수준, 주요 질환 사망률이나 평균수명 등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료시스템의 위기상황 대처능력도 서구유럽 선진국에 비해 뒤지지 않음을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경험한바 있다. 따라서 첨예한 의견차를 보이는 의대정원이나 지역 간 의료 인력의 불균형 해소방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며, 시간에 쫓기듯 성급히 단정하고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급함보다 더 큰 문제점은 지역의사제 도입이나 공공의대의 설립이 개인의 권리에 대한 지나친 제약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지역의사제는 해당 의사의 거주이전의 자유, 전공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한다. 행여나 지역사회 근무기간이 수련기간 합해서 10년밖에 안되니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역의사제로 충원된 지역의사들이 의무복무기간이 지나면 모두 대도시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설계된 정책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마치 80년대 도입되었다 폐지된 군의탁장학금제도를 연상케 하는 지역의사제는 계약조건에 따라 마지못해 의무기간을 채우는 수동적인 의사들을 양산할 뿐이며, 이는 지역사회 의료 인프라를 더욱 약화시키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정 지역사회의 자생적 의료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원한다면, 의사들이 지역사회에 근무하는 것이 불이익이 되지 않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지역의사제 출신이 아닌 일반의사도 지역 의료기관 근무를 고민할 만큼의 인프라 확보와 지원정책이 필요함을 의미하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지역의사제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공공의대의 도입도 의료의 공공성을 소수의 공공의대 출신 의사들에게 전담시키고 의사들을 출신에 따라 두 그룹으로 갈라놓을 위험성을 갖는다. 의료의 공공성은 소수의 공공재 의사를 육성하여 전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료의 공공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면 공공의대 출신만이 아닌 모든 의사들이 그 의무를 기꺼이 나누어가져야 하며, 의료의 공공성에 정말로 동의한다면 의사를 교육하고 육성하는 비용을 기꺼이 지원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공공의대 신설은 궁극적으로 모든 의사를 사회적 비용으로 육성하겠다는 장기적인 로드맵 하에 시범사업으로서만 유용할 수 있다. 어느 의과대학도 공공의대로의 전환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라면 공공의대는 낙인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기존의 의과대학들이 공공의대로의 전환을 고민할 정도로 공공의대의 교육여건과 수련의 질이 보장되어야하며, 졸업 후 특성에 맞는 진로의 모색이 가능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결국 의료인력 육성의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일회성 공공의대의 신설은 무의미함과 동시에 무책임할 뿐이다.
 
한약 첩약의 급여화나 원격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정책도 또 다른 직역 간 갈등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첨예한 정책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이 사회적 합의 없이 당정 협의만으로 추진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성급하게 추진된 의료개혁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의료계와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재 모색해야 한다.
 
하나, 의사들과 학생들은 스스로의 주장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총파업을 즉시 중단하고, 의료현장을 지키며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를 설득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하나, 의협 집행부는 강경일변도의 대정부 투쟁노선을 철회하고, 무엇이 진정 회원들의 권익과 의료인의 참모습을 지키는 일인지 숙고하여,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성명서는 지역 언론사에도 메일로 송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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