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 집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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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alloyj)등록 2020.08.31 14:40

▲ 국회 입법조사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기까지 12년이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 출처 = 위키 백과) ⓒ 박예진


문재인 정부 들어 23번째 부동산 규제 정책이 발표됐다. 솔직히 정책 실패와 성공은 우리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살(buying & living) 집이 있는가'였다. 지난 8월 3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12년이 걸린다. 이마저도 연봉 6000만원인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취업도 못한 25살과 27살 청년이다. 우리가 집을 사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저축, 대출, 부모님 도움 세 가지가 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최대한 안 먹고 안 쓰며 모아야 1년에 약 1500만원 가량을 저금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살면 행복할 수 없다. 여행도 갈 수 없고 친구들도 만날 수 없겠지. 아마 옷도 못 살 것이다. 이렇게 30년을 살아도 겨우 4억 5천만원을 모을 수 있다.

이 방법이 싫다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6억 짜리 아파트를 사겠다고 돈을 달라 하면, 나는 우리 집 문밖에서 가방 두 개를 들고 서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밀번호는 바뀌겠지. 그렇다면 남은 건 은행 대출이다. 우린 친분이 있던 은행원 A씨와의 사적인 만남을 통해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그를 만나자마자 우린 대뜸 물었다.
 
"저희 같은 사람도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은행원 A씨는 우리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의 웃음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 보였다.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전에 신용대출을 받는 사람이 많아요" 우린 놀랐다. "그럼 다른 대출로 집을 사나요?" 우리가 무지렁이인 건 어쩔 수 없다. 대출 상담을 받는 건 처음이니까. A씨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는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이렇게들 많이 해요. 주택담보대출만으로 집 사는 건 어렵거든요. 어차피 정부는 신용대출로 받은 금액을 어디에 쓰는지 모르고, 은행은 대출해 주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날 신용대출로도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취업도 못한 20대는 어쩌나
 
신용대출을 합쳐 집을 사는 건 직장이 있는 30대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취업도 못한 우리에겐 '그들만의 리그'일뿐이다. 취준생인 우리가 집을 사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청약이다.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서울 청약 당첨자의 가점 평균은 61점이다. 이 점수는, 자녀 둘을 둔 4인 가족 가장이 저축 가입 기간 만점(15년 이상)을 받고 무주택자로 11년 이상 살아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지금부터 전세를 얻어 독립해도 30대 중후반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이라는 것도 있다. 기존 '주택청약종합저축통장' 대비 우대금리 1.5% 포인트를 더 적용된다. 연 600만원 한도로 최대 10년간 혜택이 제공된다. '청년우대형청약통장'은 만 19세부터 34세까지의 직전 소득이 3000만원 이하인 사람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여야 한다. 전세나 월세를 얻어 독립해야만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내겐 전세 얻을 돈은커녕 당장 월세를 얻을 돈도 없다. 청약통장을 신청하려고 다달이 월세를 내야 하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좌절감에 빠진 우리에게 은행원 A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상품을 추천해 줬다. "한도가 많이 나오는 상품이 있어요. 한국 주택 금융 공사에서 제공하는 디딤돌 대출과 보금자리론은 주택담보대출 70%까지 나와요. 아파트 매매 가격이 5억이라고 하면 대출을 3억 5천까지 받을 수 있어요"라고 은행원 A씨는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대표적인 내 집 마련 상품을 찾아봤다. 디딤돌 대출과 보금자리론이 있었다. 디딤돌 대출은 기혼자와 30살 이상의 미혼자를 위한 상품이다. 지금 당장 대출을 받으려면 결혼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부부합산 소득이 6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나는 연봉 4000만원은 받고 싶으니, 남편의 소득이 2000만원이어야겠다. 한 사람은 최저임금도 받으면 안 된다. 이런.
 
보금자리론은 민법상 성년인 대한민국 국민 모두 신청할 수 있다. 무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자까지 가능하다. 단, 85㎡(25평) 이하 소형 주택을 구입할 때만 받을 수 있다. 드디어 괜찮은 조건을 찾았다. 더 읽어봤다. '주택 가격은 6억원 이하여야 하며, 대출 한도는 최대 3억원(미성년 자녀가 3명인 가구의 경우 4억원)이다.' 우리 둘 다 둘째에 막내니 4억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기본 자산이 3억은 있어야 6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최소 1년에 1000만원씩 모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30년이 걸린다.
 
은행원 A씨는 "변호사 같은 전문직 아니면, 요즘 일반적인 청년이 집을 사긴 힘들어요.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솔직히 아무리 대기업 다녀도 못 산다고 봐야 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연봉별로 달라지는 대출 한도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수도권의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 9399만원 이다. 이 아파트를 살 때 받을 수 있는 주택 담보 대출의 한도는 2억 7,759만원이다. 대출을 받기 위해선 적어도 연봉 3700만원의 소득이 필요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2억 7,759만원을 꽉 채워 대출을 받아도 나머지 4억 1,640만원은 신용대출과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 자금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본 자금 4억이 있을 리가 없다.

연봉 3700만원을 받으려면 6년이 넘게 걸린다. 취업사이트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직급별 평균 연봉을 조사한 결과, 대리급은 평균 3700만원, 과장급은 평균 4200만원을 받았다. 우리가 대리가 되려면 평균 6.7년, 과장은 10년이 넘게 걸린다.
 
대리가 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기본 자금 4억을 모으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영혼을 끌어모아 신용대출을 받아야 한다.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와 이자가 달라진다. 돈이 많은 사람은 더 저렴한 금리와 이자로 더 많은 대출을 받고, 돈이 없는 사람은 더 비싼 금리와 이자로 더 적은 대출을 받는다. 당연히 우리는 후자다.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4대 보험이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 은행원 A씨는 아무리 영세한 사업장이라도 건강보험료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료에 비례해 은행의 대출금액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은행원 A씨는 "공무원도 중소기업 정도의 대출이 가능하지만, 금리는 훨씬 낮아요. 공무원의 안정적인 수입과 메이저 대기업의 높은 연봉을 고려하면 결국 이들의 대출 한도가 제일 높을 수밖에 없거든요. 삼성 같은 메이저 대기업은 이자와 금리도 훨씬 낮아요. 메이저 대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150% 정도 대출이 가능해요"라고 밝혔다.
 
연봉은 같더라도 직장에 따라서 대출 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은행원 A씨는 "연봉이 같은 사람인데 직업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신용대출을 받을 때 한도가 달라져요. 의사라면 최대 200%, 중소기업이면 등급에 따라 150%, 80~100% 정도 대출이 가능해요"라고 설명한다. 청소년 시절부터 부모님이 '공부해라'라는 말을 달고 사셨던 이유를 신용대출 상담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이다.


부동산 가격 규제와 함께 적극적 주거대책 도입해야

한국에서 집을 사는 건 빚을 사는 것과 같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공임대주택이다. 문제는 공공임대주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공공임대주택을 내놓았지만, 질보다 양적인 면만을 고려해왔다. 수백 가구가 닭장처럼 모여있는 공공임대주택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왔다. '휴거지', '엘사' 등 공공임대주택의 거주민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공공임대주택이 인기가 높다. 대기자가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만 공공임대주택에서 살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는 소득의 구분 없이 누구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평생 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공임대주택이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는 인식도 낮다.

싱가포르는 국민의 80%가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민간주택의 절반 수준 가격 밖에 안 되는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싱가포르 국민 대부분이 반값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임대 형태가 아닌 소유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 국민들이 공공임대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싱가포르는 거주 연속성의 불확실성, 단지의 슬럼화, 시세 차익 불가 등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경기도 기본 주택'을 제시했다. 이곳엔 고급 분양 아파트 못지않은 식사·청소·돌봄서비스와 스카이 커뮤니티가 들어설 예정이다. 입주민이 원하는 대로 내부 구조 변경도 가능하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경기도형 기본 주택은 전체 물량의 50% 이상으로 짓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중산층까지 포함해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주택'으로 확장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선 4일에는 서울권역에 2028년까지 주택 13만 3000가구를 새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5살과 27살이 살 집 찾아 고민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일이 대통령과 도지사와 국회의원이 할 일이 아닐까? 우리가 비정규직이든 임시직이든 백수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취업 준비생이다.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아르바이트로 원룸 월세를 내야 하는…
 
 
※ 이 기사는 박단비(bbibbibam)기자님과 함께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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