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 율곡이 들려주는 미래를 위한 지혜-3

코로나 이후 100년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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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대(watershed)등록 2020.09.07 10:07
코로나 이후 100년을 위한 질문
  공부란 무엇인가? : 율곡이 들려주는 미래를 위한 지혜-3
 
1.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2. 공부란 무엇인가?
3. 공부를 왜 하는가?
4.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5.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3. 공부를 왜 하는가?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주자(朱子)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여 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대학(大學)"을 읽고 이어서 "논어," "맹자"의 순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학"은 공씨(孔氏)가 남긴 글이니, 처음 배우는 자가 덕(德)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 옛 사람들이 학문을 한 순서를 보게 되면, 이 편(篇)이 먼저이고 "논어"와 "맹자"는 그 다음이다. 배우는 자가 반드시 이 순서로 배우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첫 문장은 대학공부의 목적에 대하여 "대학의 도(道)는, 밝은 덕을 밝히는[明德]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新民]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至善] 데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해야 하며,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자가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齊家],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修身],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고[誠意],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아는 것을 지극히 하였으니[致知], 아는 것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格物].
 
  율곡은 유교의 제왕교육론을 집대성하여 선조에게 올린 "성학집요(聖學輯要)"의 서문에서 "성학집요"가 임금의 학문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상하에 두루 통하는 글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도 "성학집요"의 내용이 임금만을 위한 공부론이 아니라 상하에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공부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조선시대에는 공부하는 목적을 내적으로는 자신을 수양하고 잘못된 기질을 변화시켜서 성인(聖人)을 본받는 데에 두었고, 외적으로는 자신이 배운 바를 실천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예악(禮樂)을 숭상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 두었다. 이번 단락에서는 율곡의 이론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공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만들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들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을 본받고자 했는지도 아울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치인(治人)을 통한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실현
 
  "대학(大學)"에서 '명명덕(明明德)'을 공부의 목적으로 설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율곡은 치인(治人)을 통한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실현을 공부의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율곡은 자신이 저술한 "성학집요"에서 "예기(禮記)"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대동사회의 모습을 제시하였다.
 
대도(大道)가 행해질 때에는 천하가 공정해져서 어진 이와 능한 이를 선발하여 신의(信義)를 도모하고 화목을 기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봉양하지 않으며, 자기의 아들만 아들로 친애하지 않게 된다. 늙은이는 생을 잘 마감할 곳이 있게 하고 젊은이는 쓰일 곳이 있게 하며, 어린이는 자랄 곳이 있게 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자 및 병든 자도 모두 부양을 받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모략이 막혀서 일어나지 못하고 도둑이 일어나지 않아 사립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않으니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율곡은 자계황씨(慈溪黃氏)의 말을 인용하여 샘을 치는 것은 물을 긷기 위함이고 뿌리에 물을 주는 것은 열매를 먹기 위함이듯이 공부를 하는 것은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율곡에게 있어서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배운 바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여 그 혜택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었다.
  율곡은 "학교모범"의 「입지(立志)」장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자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곧바로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생민의 삶을 위하여 기준을 세우며, 지난날의 성인을 위하여 끊어져가는 학문을 잇고, 만세의 후손을 위하여 태평을 여는 것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율곡은 공부에 입문하는 유자(儒者)가 사회와 분리된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천지만물과 생민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율곡이 설정한 배우는 자의 위치는 우리 주변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을 초월하여 앞 시대를 살아갔던 성인과 다음 시대를 살아가야 할 후학들과 연결되어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대의 삶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존재였다.
  율곡은 "예기"의 「왕제(王制)」편에는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조선의 경제력이 9년 동안 먹을 만큼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운영되었던 조선에서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가 몇 년 동안 지속되더라도 백성을 굶주리게 하지 않을 정도의 비축된 식량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不足)하다"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나라도 아니다"라고 한다. 3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먹을 식량 여분이 있고 9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으니, 비록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서 흉년이 된다 하더라도 백성에게 굶주린 기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 뒤에야 천자가 날마다 밥을 먹는 일을 즐겁게 행할 수 있다.
 
  율곡은 "맹자"의 「양혜왕(상)」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백성이 생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안정적 소출이 없으면서도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잘할 수 있고, 백성으로 말하면 안정적 소출이 없다면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안정된 마음이 없다면 간사함과 사치함을 꺼려하지 않게 되어 자기를 위해 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죄(罪)에 빠지는 것에 이르게 하고 그 다음에 이들을 벌한다면 이것은 함정을 파놓고 그곳으로 백성을 몰아넣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어찌 어진이가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백성을 함정에 몰아넣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율곡은 "예기"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백성을 교육시켜서 예악(禮樂)을 일으키는 것이 백성을 교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백성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예기"에 이르기를, "황폐한 땅이 없고 놀고먹는 백성이 없으며 먹는 것이 절도가 있고 일을 때에 맞게 하면 백성이 모두 자기가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고 일을 즐거워하고 성과를 내려고 힘쓰며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하게 대하니, 그런 뒤에 학문을 일으킨다" 하였습니다. 먼저 부유하게 해주고 그 다음에 교육을 시키는 것은 이치와 사세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민(安民) 다음에 명교(明敎)로써 끝을 맺습니다.
 
  "전한서(前漢書)"의 「가의전(賈誼傳)」에는 법(法)과 예(禮)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율곡은 가의(賈誼)의 말을 빌어서 조선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예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의(賈誼)가 상소하여 아뢰기를, "대개 사람의 지혜는 지난 일은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은 보지 못합니다. 무릇 예(禮)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금하는 것이고, 법(法)이라는 것은 이미 그렇게 되고 난 뒤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쓰이는 바는 알기가 쉽고 예가 만들어진 까닭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율곡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조선사회의 모습은 학교의 교육이 성대해지고 향촌 사람들이 서로 간에 공경과 겸양으로 대하는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율곡은 학교를 설립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향사(鄕射)와 향음주(鄕飮酒)의 의례를 시행하여 백성을 서로 화목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교육과 향촌의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임금이 정치를 잘하여 사회의 구조적인 폐단과 백성의 괴로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백성을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드시 임금께서 먼저 몸소 실천하는 데에 힘쓰고 어진 이를 얻어 같이 다스리며 조정의 명령에 대하여 인심이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하고, 몹시 가난하여 하소연할 곳이 없는 백성도 모두 다 흥기할 생각을 품게 한 후에 그들의 폐단과 질병을 제거해 주어서 괴로움이 되는 것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토지와 거처를 제공해 주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쳐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禮)를 제정하고 단속해서 예절을 지키게 하고, 향사(鄕射)와 향음주(鄕飮酒)의 의례를 시행하여 그들을 화락하게 인도하고, 선을 표창하고 권장해서 나아갈 방향을 알게 하며, 악을 미워하고 징계하여 배척해야 할 것을 알게 한다면, 앞으로 학교의 교육은 성대해질 것이요 향당(鄕黨)은 공경과 겸양의 풍속을 일으킬 것이니, 한 시대에 큰 도가 일어나고 형벌을 버려두고 사용하지 않으며 예악이 성대해질 것입니다.
 
  율곡은 좋은 정치의 효과가 본인이 살아갔던 당대에만 나타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올바른 정치의 효과가 넘쳐서 후세에까지 흐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율곡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당대에 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영향이 후대에까지 미쳐서 후손들 또한 풍요롭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공부하는 자들이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수기(修己)를 통한 내성(內聖)의 완성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처음 학문을 배우는 사람은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율곡은 일반인과 성인은 타고난 본성(本性)이 같으므로 일반인이 낡은 습성을 버리고 본성을 되찾는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衆人]도 그 본성은 성인과 똑같다. 비록 기질에는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뒤섞인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참답게 알고 실천하여 젖어 온 구습(舊習)을 버리고, 그 본성(本性)을 되찾을 수 있다면, 털끝만큼도 더 보태지 않아도 온갖 선함을 다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 사람이라 해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율곡이 저술한 조선시대 학교규칙인 "학교모범"에는 독법(讀法)에 관하여 "독법이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유생들이 학당에 모두 모여 문묘에 배알하고 읍례를 마친 뒤 좌정하여 장의가 소리 높여 백록동 교조와 학교모범을 한 번씩 읽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서 서로 강론하며 실질적인 공부로써 서로를 권면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선시대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전에 문묘를 배알한다는 점이다. 문묘란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들을 모셔놓은 사당을 말하는데, 학생들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문묘를 배알한 이유는 공부를 하기 전에 자신들이 왜 공부하는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유교의 성인을 닮기 위한 각오를 매번 새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율곡에게 있어서 공부를 하는 개인적인 목적은 잘못된 기질을 변화시켜서 태어날 때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회복하였는지의 여부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 중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을 본받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성인이 말하고 성인이 행동한 것을 따라하는 것은 곧 하늘이 부여한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길이었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예쁘게 바꿀 수 없고, 체력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없고, 신체는 키가 작은 것을 크게 할 수 없으니, 이는 모두 정해진 분수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심지(心志)에 있어서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고칠 수 있고, 못난 것을 현명하게 고칠 수 있으니, 이것은 텅 비어 신령스러운 마음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진 것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진실로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本性)을 망치는가? 사람이 이런 뜻을 가지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율곡에게 있어서 공부하는 사람이 본받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성인(聖人)은 요(堯)와 순(舜)이었다. 율곡은 사물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사람은 변화가 불가능한 사물과 완전한 성인(聖人) 사이에 위치한 중간자로 설정하였다. 율곡은 사람은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 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신이 생각건대, 일기(一氣)의 근원은 맑고 깨끗합니다. 오직 그 양(陽)은 동적이고 음(陰)은 정적인데, 혹은 상승하기도 하고 혹은 하강하기도 하며 높이 올라가거나 어지럽게 흩날리다가 합쳐져서 품성(質)을 이루게 되며 드디어 고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물은 치우치거나 막히게 되면 다시 이것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으나, 오직 사람만은 비록 맑거나 흐리거나 순수하거나 순수하지 않거나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텅 비어 밝아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허언(虛言)이겠습니까?
 
  율곡은 성인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하여는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덕이 하늘과 땅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였다. 율곡은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명명하고 군자는 '사사로움을 버렸기 때문에 행실이 성인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였다. 율곡에게 있어서 공부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도량이 넓은 군자와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성인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덕이 하늘과 땅에 부합되는 것이며, 군자는 사사로움을 버렸기 때문에 행실이 성인에 부합되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그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도량을 넓혀서 군자와 성인에 미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사사로움을 다스리는 방법은 학문하는 것뿐이니, 학문이 진보하면 도량도 커지게 되며, 타고난 아름다움과 추함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율곡은 공부하는 자는 책을 읽어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고 앎을 지극히 하여 내성(內聖)을 완성하고 요(堯)와 순(舜)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율곡에게 있어서 공부란 일상생활 속의 말과 행동을 모두 이치에 맞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는" 경지는 공자도 칠십 세에 이르러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평생 수기(修己)를 위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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