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도서정가제 '개악' 국민 여론 조장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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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석(jjseok1004)등록 2020.10.16 14:45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주관 미디어정책국 출판인쇄독서진흥과)는 <도서정가제 보완 및 개선 민관협의회>(이하 민관협의회)를 2019년 7월 구성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 관련 3개 단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 유통 관련 4개 단체, 소비자시민모임을 포함해서 소비자 관련 2개 단체, 그리고 웹툰산업협회를 비롯한 웹 기반 출판 4개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총 16차례 회의를 거쳐, '소비자 후생 고려'를 우선해서 4가지 합의안을 만들었습니다. 2020년 6월 3일까지 민관협의회는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체부는 합의안을 만들고 나서, 전 국민 대상의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조사>(조사 규모 2000명, 성/연령/지역별 할당 추출 표본)를 2020년 6월 30일 ~ 7월 5일 사이에 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민관협의회 관계자를 포함해서 여러 경로로 문체부에 인식조사 전반에 대해 수차례 문의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문체부는 '대외비'여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에 인식조사와 관련해서, 직접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며 마침내 조사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 속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도서정가제의 개선 방향과 대책을 모색"한다는 조사 목적과 배치되게, 설문 문항이 도서정가제의 개악에 부합하는 답변을 유하도록 질문과 답변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설문 문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1번 매우 부정적이다, 2번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3번 부정도 긍정도 아니다 4번 대체로 긍정적이다 5번 매우 긍정적이다"로 되어 있어 부정적인 것을 답변의 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또 "현행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할인율 범위에 대한 다음 의견 중 어디에 가깝습니까?"라는 질문의 답으로 "1번 할인율을 확대해야 한다 2번 현행 유지해야 한다 3번 할인율을 축소해야 한다"라며 질문과 답변의 배치로 할인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뉘앙스 입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할인율 범위는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의 답변에는 "15% 초과 ~ 19% 미만, 19%, 19% 초과" 중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할인율의 시작점이 15%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전자출판물에 대한 조사항목은 어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자출판물에 대하여 별도의 정가 표시 방식이 필요하다면 다음 의견 중 어디에 가깝습니까?"의 답변에는 "1번 전자화폐로만 표시해도 되고, 소비자가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표시해야 한다, 2번 전자화폐로만 표시해도 되고, 위치는 자유롭게 표시해도 된다." 이것은 원화 단위로 정가를 표시하기로 한 합의안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질문입니다.

또 "전자출판물에 대한 별도 할인율이 필요하다면 다음 의견 중 어디에 가깝습니까?"라고 질문하고 "1번 종이책보다 높은 할인율이 필요하다"로 '높은 할인율' 답변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자출판물에 대해 종이책과 다른 별도의 도서정가제 적용기간을 두어야 한다면"서, 그 기간을 묻고 있습니다.

별도 할인율과 별도의 적용기간을 질문하는 것은, 종이책과 전자출판물 모두에 현행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것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질문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서정가제 개선방안을 묻는 항목에서는 "도서정가제 적용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다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모두 선택해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적용의 완화를 묻는 질문 형식으로, 도서정가제 개선이 곧 현재의 제도보다 폭넓은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답변으로도 "1번 공인 도서전 등 책 관련 축제에서 판매하는 책, 2번 제작, 유통과정에서 약간의 흠집이 발생하여 훼손된 책, 3번 최초 발행일 이후 18개월이 지난 책, 그리고 4번 기타"를 보고서야, "5번 도서정가제 적용이 적절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를 볼 수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선방안'을 묻는 첫 번째 질문으로,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를 뭘, 뭘 하면 좋을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더 문제인 것은, 도서정가제 준수는 하나밖에 없는 데 반해서 답변 문항 다섯 개 중 네 개가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의 사례를 자세히 알려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선이 곧 도서정가제 예외 확대라는 의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질문과 답변의 구성입니다.

또한 이 조사의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총 13개 문항 중에서 종이책과 관련한 것은 총 4개 문항뿐입니다. 대부분 전자출판물에 대해서 묻는 것입니다. 네 개 문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1번 문항은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에 관해서 묻고 있습니다. 2번 문항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할인율 범위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고 있으며, 상세 질문으로 2-1번 문항으로 할인율 범위 확대를 얼마나 하면 좋을지를 묻고, 2-2번 문항으로 적절한 할인율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종이책은 모두 '예외와 할인'과 관련된 내용뿐입니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의 구성 방식을 볼 때, 도서정가제 예외를 위한, 그리고 할인을 위한 의도로 문체부가 조사를 했다고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한 설문 문항이, 도서정가제 개선과 인식조사를 위해서 적절한 설문조사 방식이었는지 의문입니다.

문체부에서 실시한 이 설문은 "과업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설문 항목을 개발하여야 하며, 설문 구성 시 발주처와 협의하여야 한다. 조사목적, 조사내용, 조사방법, 세부일정, 보고서 작성 계획, 기타 사항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세부사업계획서를 작성, 제출하여 발주처(문화체육관광부 사업주관과)의 승인을 받아야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조사하는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주관과와 목적과 방법만이 아니라 항목 등 지정한 사항에 대해서 협의하고 모든 내용을 승인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체부는 도서정가제 개선을 빙자해 '예외와 할인율 확대'만으로 점철된 <도서정가제 인식조사>를 실시했으며, 이 결과를 2020년 7월 15일에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발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체부의 인식조사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개악'에 유리한 설문 결과를 만들었다고 판단됩니다. 지난 6월 3일에 민관협의회가 끝남과 동시에, 이러한 설문조사를 준비해서 진행했다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문체부가 진행한 민관협의회의 논의사항을 골격으로 한 도서정가제 개정을 추진할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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