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이 백희나 작가의 <삐약이 엄마>를 소개시켜 주셨다. 수업 내용도, 그림책 소개도 특별히 더 '감성'적일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 수업 과정에서 활용할 도서로 <삐약이 엄마>를 보여주시는데, '이웃들은 악명높은 '니양이'라는 이름 대신 '삐약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고양이를 부르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암탉들이 나란히 서있는 한 편에 그 거대한 몸집을 숨길 수 없는 니양이가 자신의 아기 삐약이만을 바라보며 서있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아 올랐다. 눈치없이 흐르는 내 눈물에 책을 소개시켜주시던 선생님 입장께서는 '도대체 왜?'라며 의아해하셨다. 나 역시 '내가 왜?'라는 생각에 무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저 요즘 내가 마음이 많이 약해졌나보다라며 넘어갔다. 요즘은 크로스 오버 그림책의 등장으로 어른들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여전히 주독자층인 그림책 공부를 하다보면 암만해도 '육아'의 이런 저런 상황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니 자꾸 그 시절을 되돌이켜보게 된다. 어느날 늦게 귀가한, 이제는 다 커버린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어떤 엄마였냐고? 니양이같은 엄마 혹시 엄마가 말 끝마다 '니들 땜에 못살겠어' 이러면서 키우진 않았니?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물어본 질문에 아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해놓으라는 것도 해놓지 않고 집안을 저지레 해놓은 걸 보고서는 사온 요구르트를 패대기 친 적이 있었단다. 패대기를 쳤다니! 그렇게 '폭력적인 행동을!',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저 나는 큰 소리도 치지 않고 아이들을 온화하게 기른 엄마였다고 은근히 자족하듯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기억에는 저런 해프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왜 니양이가 삐약이 엄마가 된 그 장면에서 눈물이 울컥 솟았는지 깨달아졌다. <삐약이 엄마>는 뚱뚱하고 먹을 것을 밝히는 데다 작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니양이라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딱 한 눈에도 '조폭'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우락부락한 포스의 고양이가 등장한다. 먹을 걸 밝힌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암탉들이 외출 나간 닭장에 남겨진 노오란 황금 달걀을 날름 꿀꺽 삼켜버린다. 그런데 그 삼켜버린 황금 달걀이 소화되는 대신 '부화'가 되었다. 어느날 '아이고 배야' 하고 니양이가 힘을 준다. 그리고 삐약이가 똥대신 '태어난다.' 그림책 계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백희나는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길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니양이가 '응가'를 하는 줄 알고 삐약이를 낳는 장면에서부터 나는 묘한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낳던 날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는데 나도 니양이처럼 '응가'인 줄 알고 화장실에 가 한동안 걸터앉았었다. 한참을 앉아 있고서야 아, 이게 아이가 나오는 건가 보다 하고 허겁지겁 병원을 달려갔었다. 그 기억이 묘하게도 삐약이의 탄생 순간과 겹쳐진다. 혹 백희나 작가도 그런 경험을 되살린 것일까? 그렇게 니양이는 삐약이를 낳았다. 니양이의 뱃속에서 나온 삐약이는 엄마 품을 찾아들 듯 니양이의 배 위로 올라간다. 그런 삐약이를 니양이는 할짝 핥아본다. 그러자 삐약이는 기분좋게 눈을 감고 '삐약' 하고 답한다. 니양이가 핥는 순간, 많은 독자들이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니양이의 본성과 그간 행태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삐약이의 저항감이라고는 1도 없는, 니양이에게 무한의지하는 그 대꾸에 니양이의 마음이 움직인다. 삐약이를 키우는 니양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 처음부터 '엄마'가 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림책은 니양이를 먹을 것밖에 모르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는 조폭같은 고양이로 그린다. 그런 니양이의 습성이 아이를 낳기 전 온 세상이 나만을 향해 수렴되던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듯 보인다. 그렇게 나만 잘 사는 게 삶의 목표였던 사람이 아이를 낳았다. 임재범의 노래 '전쟁같은 사랑'처럼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아랑곳없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을 '의지처'로 삼는 아이의 모습에 '니양이'처럼 마음이 움직였다. 물론 그 변화의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종족이 다른 니양이가 삐약이를 키우는 시간이 쉽기만 했을까. 삐약이처럼 그 해맑은 눈빛으로 나에게 온전히 의탁한 생명에 가슴이 뭉클 저려오지만 그걸로 육아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한 생명이 버거워 '산후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육아책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예측불가한 해프닝의 연속으로 눈물로 밤을 세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실수와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도 니양이가 삐약이에게만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하듯 내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려 안달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위험한 길을 다니지 않도록 알려주듯 위험한 것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 던져진 내 아이에 대한 노파심에 전전긍긍한다. 성질 나쁜 개 집 앞을 지날 때 털을 꼿꼿이 세우듯 세상에 맞짱이라도 뜨는 심정으로 아이를 키워가며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암탉들 옆 삐약이 엄마 모습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가졌던 니양이 임에도 '삐약이'와 같은 아이들을 키우며 전전긍긍했던 내 자신처럼 여겨졌기에 눈물이 터졌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이다'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럼에도 제법 니양이를 닮은 삐약이 모습처럼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도 도둑이 제 발 저린 속내가 여전히 숙제처럼 남는다. 그래도 니양이였던 내가 '삐약이'들을 그래도 잡아먹지 않고 '엄마인 척'하며 무사히 키워낼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한다. 내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삐약이 엄마'로 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내 자신 밖에 모르던 '니양이'처럼만 살다 가지 않았을까. #삐약이 엄마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