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페미니즘, tvN 드라마 <스타트업>

드라마 <스타트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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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tn4994)등록 2020.12.06 11:10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인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창업을 꿈꾸며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이다. 서달미(배수지 분)와 남도산(남주혁 분)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달콤하지만, 여태 대중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스타트업 업계 내 이야기를 잘 드러내서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업계 구조상 다양한 조연들이 출연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조력자이자 도산의 경쟁자인 한지평(김선호 분)의 매력으로 자칫 쳐질 수 있는 드라마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잘 끌고 나간다. 

이 드라마의 첫 부분에서부터 비중 있게 사건의 큰 줄기를 이끌고 가는 건 다름 아닌 주인공 달미의 할머니(김해숙 분)이다. 할머니는 지평이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그래서 지평이와 달미와의 기나긴 인연을 만든다. 게다가 도산이에게 시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 결심까지 하게 만든다. 삼산텍이 만든 서비스 '눈길'이 결국 달미, 도산, 지평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마음으로 개발되고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다소 낭만적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주주와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만들어지고 팔리는 것이니까 말이다.

<스타트업>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퍼주고 원동력이 되어 주던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은 바로 본인의 아들을 버리고 떠난 며느리, 달미의 엄마(송선미 분)다. 그러나 그렇게 밉던 자신의 며느리가 두 번째 남편인 원 회장에게 끌려가는 걸 목격하는 순간, 할머니는 우산을 들고 달려들어 그를 제지하고 며느리를 구해낸다. 엄마로서는 미울 수밖에 없지만 악한 남성으로부터는 그녀를 보호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 여성끼리 연대하는 전형적인 페미니즘 서사이다. 

작가가 대본을 쓰며 페미니즘을 고려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스타트업의 CEO인 여성이 되면서 덩달아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성들도 매우 다정하고 온순해졌다. 주인공인 서달미와 그의 언니 원인재 모두 스타트업 여성 CEO로, 자신의 인생을 당차게 설계해 나가며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은 회사 경영에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빠 원 회장과 투자자이자 조언자인 한지평에게 조금도 기대지 않는다. 사심에 그런 도움을 받고 다른 무게의 부담을 받는 것을 오히려 경계하며 호의를 거절하고 밀어내고 꿋꿋이 혼자 일어선다. 

그런 서달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남도산과 한지평에게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다. 그녀에게 멋진 차나 좋은 집은 의미가 없다. 그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성공해서 너를 구해줄게, 같은 서사는 있을 수 없다. 달미 본인이 성공하지 않으면 그녀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둘 다 잘 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캐릭터 설정만 현실적으로 잘 마쳐도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일구어나가는 여성은 이 시대에 흔하다. 이름이 거창해서 그렇지, 페미니즘은 별 거 아니라니까. 

드라마에서 주인공 달미가 어떻게 성공하고 사랑까지 쟁취하는지는 마지막 회까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꽤나 멋진 CEO가 돼서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드라마를 장식하리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의식하지 않은 페미니즘 드라마의 시대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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