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노인 시점 ; 코로나19

노인들에게 더 가혹한 코로나 시국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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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voiceyr)등록 2020.12.20 16:59
 

코로나 시대, 노인은 어떻게 살아갈까 ⓒ 픽사베이무료이미지

 
코로나 시국은 노인들에게는 더욱 더 가혹하다. 고통에 대해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노인들.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관계가 단절된 위기의 노인들
몇 년 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노인들이 아침부터 서울의 한 성당 앞에 길게 줄을 선 뒤 돈 500원을 받아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IMF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이 성당의 동전 나눔이 이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지하철 요금이 공짜라도 그렇지, 돈 500원을 위해 저렇게 돌아다니느니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제작진의 마이크를 받은 한 노인의 인터뷰에 아차, 싶었다.
"내가 이 동전 하나 받으려고 여기 오는 게 아니야. 집에 있으면 뭐해? 혼자서 할 일도 없는 걸. 여기 나와 줄 서면 그래도 다른 노인들과 만나서 사는 얘기라도 할 수 있잖아. 하루 종일 이렇게 돌아다니면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집에 가는 거야."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뒤덮고 노인이야말로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들릴 무렵, 문득 그 노인들이 생각났다. 바이러스는 둘째치고, 말 한 마디 섞을 대상을 찾아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던 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까. '돌아다니지 말고 사람 만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침을 그들의 외로움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면회금지, 과연 최선일까
국내에 '우한폐렴'이란 이름으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확인된지 한 달여가 지난 시점, 뉴스에 '코로나'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오르내린 단어가 바로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에 확진자가 많은 데 대해 질병본부에서는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의 '집단' 생활을 주 요인으로 들었다. 요양기관의 단체 감염 사건이 다수 발생하자, 여러 요양원들은 직계 가족인 보호자를 비롯한 외부인 면회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부모의 안부가 궁금한 보호자들은 애가 타들어갔다.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의 간호가 마뜩잖아서라도 자주 부모를 보러 요양원을 찾았던 자식들의 안타까움도 들린다. 시인 최영미 씨도 기고를 통해 비슷한 심경을 토로했다.(헤럴드 경제 3월 3일자)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는 있지만 옆에서 권하지 않으면 밥은커녕 입도 벌리지 않는 상태라 거의 매일 찾아뵙고 식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양원 면회가 금지되면서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해 너무도 불안해졌다는 내용이었다.
무조건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것은 노인들의 면역력 약화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의견이었다. 요양원에서 코로나 19가 감염된 사례 중, 비업무 시간에 종교 활동을 해 온 요양보호사가 외부에서 노인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사례가 적지 않음을 생각하면 가족 면회의 금지가 코로나 예방에 상책인지, 오히려 요양원 측에 그 어떤 감시도 없이 게으르게 일 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많다. 얼마 전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코로나 19에 대비할 수 있는 노인요양병원 면회 시스템을 마련해주세요>라는 국민 청원 또한 올라왔었다. 이러한 논란의 여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해도, 치매환자에게 면회와 외출을 허락하여 스트레스를 줄이는 온전한 '돌봄'이 우선인지 일단 '감염되지 않는 것'이 우선인지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감염병은 그만큼 골치 아프다.

코로나19, 노인차별의 면죄부?
연 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한 이탈리아에서는 똑같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고령의 환자보다 완치될 가능성이 큰 '젊고 건강한 환자'들에게 치료가 집중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스페인에서는 아직 사망하지도 않은 감염된 노인들이 요양시설 등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바이러스에 휘청대고 있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분명한 '노인차별'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노인 복지와 존엄한 죽음의 제도를 마련하라 권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들은 요즘도 하루 수 백 명의 사망자를 보며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에 씁쓸하게 혀만 차고 있었던 시기, 또 하나의 뉴스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난 3월 일본 국적으로 추정되는 한 트위터 사용자가 게시한 두 장의 일러스트.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수십 명의 노인들을 떠받치며 힘겨워하다 노인들이 사라지자 두 손을 치켜들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겼다. 노인들의 주변에는 코로나19로 보이는 바이러스들이 둥둥 떠 있기도 했다. '빨리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덧붙은 이 게시글은 순식간에 1만 5천 여 건 이상 재공유되고 7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 글에 대한 답글, '(노인이 없으면) 국가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 '코로나가 구세주'라는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코로나 덕에 노인이 사라지고 나라가 살기 좋아진다는 일본의 한 트위터의 일러스트 ⓒ 일본트위터기사일러스트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노인이 떠나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발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타인의 상황이 내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 참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동물이다.   

이런 다른 나라의 모습에 비하면, 나이 불문 모든 환자를 동등하게 치료해주는 우리나라는 그나마 나은 것인가? 아직 우리나라에도 노인 복지를 위해 갈 길이 요원하기만 한데, 이런 시국에서는 그런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것인가?
'너도, 나도 모두가 힘든', '젊은이들 신경쓰기도 바쁜'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이 노인을 차별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는 데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아픈 노인들은 자신의 요구 사항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 노인 돌봄 문제 또한 그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할 때다. 미적미적하다가, 우리가 그 대상이 될 날은 금방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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