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누구나 보석같이 빛나는 유년 시절이 있다. 보석이라 함은 화목한 가정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의미이기 보다 천진난만하고 어른이 짊어질 수 있는 걱정 따위는 없는 행복한 시절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권리이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가 나는 가엾다. 어렸을 때는 그저 칭찬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주인공 동만이는 2학년 때 한글을 깨우친 꼴통이었다. 오작교 아버지와도 살고 창신 여인숙의 어머니와도 살고, 어린 아이가 버스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리다. 엄마는 오작교에서 창신 여인숙까지 오는 길을 몇 번이고 알려주었다. 아빠를 닮아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예전에는 아이를 더 어른스럽게 대한 게 분명해 보인다. 나도 1학년 때에는 꽤 먼 거리의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 거리에 있는 학교를 아이 혼자 매일 오가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 <똥만이>의 책표지 ⓒ 웃는돌고래 동만이의 아버지 박 사장은 오작교에서 개고기 보신탕 가게를 했다. 오작교는 여름에 호황을 누리고 봄, 가을, 겨울에는 조용했다. 동만이는 그곳에서 반찬도 나르고, 얼큰하게 취해 노래를 부르는 어른들을 구경하며 지냈다. 벌이가 시원치 않고, 밤새 화투를 치느라 종종 집을 비우며, 손님보다 술을 더 퍼먹기가 일쑤인 남편을 꼴사납게 보지 않을 아내가 몇이나 될까. 결국 엄마는 오작교를 떠나 창신 여인숙에 정착한다. 엄마는 '유 프로'라는 예명을 얻을 만큼 신박한 때밀이 기술을 가졌다. 엄마가 일을 쉬는 화요일에 동만이는 일주일을 기다려 엄마를 만나러 온다. 동만이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남영이 누나도 알게 되고, 룸살롱인 <현 살롱>에서 일하는 소영이 누나도 알게 된다. 창신 여인숙에 사는 누나들이 있어 동만이는 덜 심심했다. 어느 날은 딸기밭 할머니 아들 민철 아저씨가 창신 여인숙 206호에 놀러왔다. 엄마가 지내는 206호에 민철 아저씨 신발이 보이면 들어오지 말고, 좀 놀다가 신발이 없으면 오라고 엄마가 시켰다. 엄마에게 다섯 살 연하의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 동만이는 언짢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고씨 아줌마가 생겼어도 엄마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고씨 아줌마는 오작교 건물이 박 사장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마음이 멀어져갔다. 자신을 속인 것이라 여겨 손님과 질펀하게 놀다 고씨 아줌마는 박 사장에게 쫓겨났다. 엄마의 남자친구 민철 아저씨도 세 살 연하의 맞선 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찾아온 민철 아저씨는 엄마와 심하게 치고 박고 다투었다.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엄마가 죽는 건 아닌지 울면서 동만이는 남부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렇게 엄마와 아버지는 사랑을 잃었다. 가을만 되면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지는 아버지가 결국 사고를 쳤다. 동만이를 재우고 만날 화투를 치러 다녔는데, 자다 깨서 아버지의 부재를 알게 되면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는 동만이 어느 날은 잠을 안자고 버텨 결국 아버지가 동만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지갑을 안 가져 왔다며 지갑 좀 가져 오라해 놓고는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 버린 것이다. 동만이는 아버지를 따라 달리고 달렸지만, 아버지는 더 빨리 가버렸다. 동만이는 너무 멀리 와버려서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엉엉 울며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안내양 누나에게 버스 좀 타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창신 여인숙으로 갔다. 밤늦게 눈물범벅이 되어 온 동만이에게 사연을 들은 엄마는 그때부터 동만이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집이 나왔다며 엄마는 남영이 누나와 돈을 합쳐 연립주택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소영이 누나도 함께 살기를 원해서 3월이면 네 식구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동만이는 너무 설레었다. 그런데 이사를 일 주 일 앞 둔 어느 날 박 사장이 찾아왔다. 박 사장은 '동만이 나오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동만이는 엄마에게 아버지와 살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남영이 누나와 소영이 누나가 있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무도 없다고. 화투치고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냐며 자주 놀러오겠다고 하고는 박 사장을 따라나섰다. 남영이 누나는 손뜨개질 한 모자를 동만이에게 씌워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보니 박 사장의 대머리가 너무 춥게 보여 동만이는 모자를 벗어 박 사장에게 씌워주었고, 박 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동만이는 박 사장과 살게 되었다. '하늘이 내린 보신탕집 사장'이라던 아버지는 <오작교>를 잃었고, 때밀이 전국체전에 나가면 일등 먹는다던 엄마도 자기 인생의 때는 벗기지 못했다. 얼굴이 예뻐 '<현 살롱> 에이스'인 소영이 누나는 부끄럽다며 고향에 가지 못했고, 다리병신이라 놀리는 사람들을 피해 떠나온 남영이 누나는 이젠 가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 고향에 갈 수가 없다. 그 모든 일에도 다 까닭이 있을 것이나, 동만이는 아직 답을 알지 못했다. -본문 257쪽 동만이는 심윤경의 작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만큼이나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동만이는 아이의 어조로 슬프지만 최대한 슬픔을 억눌러 유머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동만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어땠을까. 때로는 어른이 아이 보다 못할 때가 많다. 호기심 많고 꼴통이었지만 엄마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자였던 동만이는 자라서 기자가 되었다. 기자고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루트로 기자가 되고, 작가가 되었다. 저자의 이러한 이력에서 많은 아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정형화된 길을 통해서만 기자가 되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으니까. 초등 고학년 권장도서지만 어른들에게도 너무 행복한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책에 간간히 나오는 그림들도 어른들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런 동화를 또 만나고 싶다. #똥만이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