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밈'의 블루오션 속 자정작용이 필요하다

'놀라운 토요일'은 왜 논란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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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기(ysg7892)등록 2021.01.11 10:46
 tvN 예능 '놀라운 토요일'(놀토)이 새해 첫 방송부터 논란을 빚었다. 타 방송에 출연한 일반인 방청객 사진을 모자이크없이 내보내고 외모를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놀토'는 '짤의 출처를 찾아라' 코너에서 방송인 박나래와 가수 쌈디의 닮은꼴로 SNS 상에서 화제가 된 일반인의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내보냈다. 출연진이 사진을 보며 손뼉을 치고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그대로 전파를 탔다. 해당 사진은 이미 SNS에서 유명한 '밈'(Meme)이다. '밈'이란 모방 및 진화를 거듭하며 주로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문화 요소를 일컫는다. 작년 차트를 역주행한 가수 비의 '깡'이 대표적 예시다. 밈은 원작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해 마케팅 효과를 내는 긍정적 측면도 있는 반면 원작물이 무단 도용되거나 누군가에게는 초상권이 침해되고 지우고 싶은 과거가 온라인에 영구 박제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놀토'가 촉발한 논란을 바탕으로 밈의 그림자를 추적했다.
 
1. 밈은 내가 만들게. 저작권은 누가 허락할래?
'놀토' 속 논란의 사진은 밈을 게시 및 공유하기 전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사안을 환기시킨다. 첫 째는 원작물에 대한 저작권이다. '놀토'의 경우 타 방송국에서 만든 영상 속 한 장면을 차용했기에 사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어야 한다. 둘 째는 사진 속 여성의 초상권이다. 이 밈의 주인공은 방송 출연에 대한 사전 동의 하에 방청객으로 출연했다. 다만 방청객으로 참여한 방송이 아닌 타 방송에서 다른 목적으로 얼굴이 나올 경우에도 동의를 했는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2일 '놀토'가 방영된 후 사진 속 여성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한 네티즌이 "큰이모가 방청객으로 출연한 사진을 저런 식으로 쓰냐"며 댓글로 불쾌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세번 째는 밈에 대한 저작권이다. 밈은 원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재가공해 만들었을 경우 2차적 저작물로 인정받아 그 권리가 보호된다. 따라서 밈도 함부로 출처나 동의없이 퍼나르면 안된다. '놀토'는 이 세 가지 사안에 대해 사전 허가를 받았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2. 유머와 조롱 사이
밈은 대개 풍자와 해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는 종종 풍자와 해학을 넘어 조롱과 비하, 더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놀토'가 차별과 혐오를 조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일단 사진 속 당사자가  이를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 들였는지 조롱으로 받아 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당사자가 이를 조롱으로 느꼈다면 밈을 만든 사람이든 향유한 사람이든 한번 쯤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든 농담은 더이상 농담이 아니라 실례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면 이젠 정말 마음 놓고 웃어도 되는걸까? 아직 아니다. 그것이 차별이나 혐오를 조장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지난 해 졸업사진을 유별나게 찍기로 유명한 한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가나의 장례식 운구단을 따라해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됐다. 학생들은 얼굴에 검칠을 하고 관을 드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대중은 이들에게 '관짝소년단'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SNS 상에서 밈으로 활발히 소비했다. 방송인 샘 오취리가 흑인 비하라며 제동을 걸기 전까지는 말이다. 샘 오취리의 문제 제기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관짝 소년단' 자체만 보면 이는 흑인 사회를 모독하는 행위다. 흑인을 모방해 얼굴에 검칠을 하고 입술을 과장되게 두껍게 그리는 등의 분장을 '블랙페이스'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조롱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쓰였으며 현재 미국에서는 '블랙페이스'를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법으로 엄격히 금지한다. 학생들의 의도가 순수했고 실제 가나 장례식 운구단이 모방을 허락했다고 해도 이 행위는 흑인 사회에 대한 모독과 차별이 된다. 인종, 성별, 성 정체성, 장애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밈은 해학의 경계를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잊혀질 권리
밈은 한 번 생기면 지우기 어렵다. 왜냐하면 주로 SNS에서 생산되고, 공유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우고 싶은 과거가 온라인 상에 영구 박제돼 주홍글씨로 남기도 한다. '놀토'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이 밈의 시작도 SNS였다. SNS에서 퍼지던 밈을 방송에 여과없이 들여온 것이다. SNS는 소통이 쌍방적이고 즉각적인 반면, TV는 소통이 일방향적이고 사후적이다. 이 말인 즉, SNS는 즉각적인 문제 제기가 가능하고 게시물을 바로 내릴 수 있지만, TV는 방영 중 내용 수정 및 삭제가 불가능하며 사후적으로 해당 방영분을 내리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수많은 방송 관계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놀토'에 나온 사진은 SNS와 TV라는 두 대형 플랫폼에서 모두 다뤄졌으니 사실 상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풍화되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풍잣거리로 끊임없이 회자된다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지난 2020년은 '밈의 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 엄청난 양의 밈이 양산됐다. 코로나로 단절된 사회적 거리를 각종 챌린지가 좁히기도 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 새롭게 재조명돼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처럼 그 양면성은 늘 함께 존재해 왔다. 밈을 게시하거나 공유하기 전 누군가의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조장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는 태도는 중요하다. 밈의 블루오션에 자정작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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