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서평 사이] 상실의 바다 사이, 사랑이라는 등대

『바다 사이 등대』 | M.L. 스테드먼 | 문학동네

검토 완료

현부연(aprillotus)등록 2021.01.25 10:35
1926년 4월 27일. 금발의 남자와 생후 3개월 된 여자 아기가 탄 작은 배가 파도에 떠밀려 등대 근처 닿았다. 남자는 죽어 있었고, 아기는 울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18년 12월. 톰 셔본은 멀쩡한 몸으로 살아돌아온 감사마저도 전쟁의 상흔으로 새겨진 상태였다. 그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등대에 스스로를 감금시키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독은 그의 운명이 아니었다. 등대로 가기 위해 머물렀던 작은 어촌, 파르테죄즈에서 만난 유쾌한 아가씨가 그를 유혹했다. 

톰과 이저벨은 등대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고립된 생활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저벨의 세 번째 유산 직후. 그러니까 바로 그 날이 4월 27일, 아기가 나타났다. 마치 선물처럼. 

부부는 완벽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부모가 됐다. 이저벨의 모성은 아기에게 바로 이입되었지만, 톰의 이성은 아기를 뭍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 균열이 『바다 사이 등대』의 가장 큰 갈등이며, 그 갈등에서 파생된 긴장감은 톰과 이저벨의 주변으로 펼쳐지고,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주인공인 톰과 이저벨에 집중하다보면 초반에 등장한 신화 속의 두 이름이 눈에 띈다. 종전 후 톰이 타고 온 배의 이름은 프로메테우스다. 그는 제우스가 숨겨놓은 불을 인간에게 전한 신이다. 제우스는 복수를 위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보내고 판도라는 금기된 상자를 열어 희망을 제외한 모든 악을 세상으로 쏟아낸다. 

톰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 '프로메테우스'로, 이저벨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 '에피메테우스'로 치환되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떠내려 온 아기를 딸로 키우느냐 마니냐는 문제 앞에서 톰은 이성적이고 양심적이고 싶었고, 이저벨은 감정적으로 본능을 따랐다. 

또 다른 신화 속 이름은 등대가 위치한 지명이었던 야누스다. 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던 야누스는 흔히 두 개의 얼굴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인간의 선택에는 늘 두 가지가 따른다. 획득과 상실. 이들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딱 붙어서 인간을 고뇌에 빠뜨리는데 때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게도, 때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도 만든다. 등대가 위치한 야누스 록은 바다를 지키는 문이기도 하지만 셔본 부부의 선택이 낳은 양면을 부각시키는 장소로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또한 '야누스의 달'이라는 라틴어 Januarius에서 유래한 January(1월)에 소설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바다 사이 등대』가 주는 깊은 여운은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서사마저 입체적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 서사의 공통점은 바로 선택할 수 없는 '상실'이다. 아이를 셋이나 사산한 이저벨부터 전장에서 아들 둘을 잃은 부모, 바다에 아이를 빼앗긴 부모, 불쾌한 소동에 휘말려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 등등 이들의 사연이 하나 같이 절절하다. 그런가하면 불륜 문제로 엄마를 떠나보낸 아이, 엄마와 사별한 소녀들, 가난 때문에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도 있다.  『바다 사이 등대』는 '피붙이의 상실'을 통해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연민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 

하지만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그 상실이 그저 개인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황폐한 땅과 그 땅 속에 묻힌 희생자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이 남는다. 이 책은 톰이 안고 있는 전쟁의 트라우마라든지, 전장에서 온전치 못한 상태로 살아 돌아온 것은 오히려 불행이 될 수 있다는 묘사를 통해 전쟁의 끔찍함이 종전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다. 태어난 지 100일 된 아기가 야누스로 흘러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모든 독일인이 전쟁의 원흉이라는 비뚤어진 분노가 있었다. 전쟁이나 범주화의 오류 같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집단의 광기가 얼마나 많은 개인에게 불행을 안겨주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불행을 나열하는데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과 상실이라는 캄캄한 바다 한 가운데서 이 책이 보여준 것은 사랑이라는 빛이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끓는 사랑이라면, 등대처럼 비추는 것이 한 남자의 순애보일 것이다. 
"아직도 이 삶에서 가야할 길이 더 남아 있었다. 지나온 길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길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길을 가는 사람을 만들어왔음을 톰은 알았다. 흉터는 기억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저벨은 어디에 있든 톰의 일부였다. 전쟁과 등대와 바다처럼..." 470쪽 

마지막 페이지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바다 위를 지나는 중이냐고. 당신의 등대는 무엇이냐고. 그리고 당신은 누구의 등대가 될 수 있느냐고. 
덧붙이는 글 위 글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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