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맨, 김현식, 김광석의 부활

AI 시대, 떠났던 목소리를 다시 불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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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theinterview1112)등록 2021.02.08 08:50

12년만에 돌아온 '완전체' 거북이 2020년 12월 9일, 거북이는 2008년 세상을 떠난 리더 터틀맨과 함께 대중들에게 돌아왔다. 현대과학의 대표주자인 AI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 엠넷

 
2019년부터 대한민국 음악시장을 트로트 열풍이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말과 최근 음악팬들을 향수와 그리움에 젖게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Mnet <다시 한번>과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 AI vs 인간>이었다.

이 두 프로그램은 터틀맨, 김현식, 김광석을 다시 무대로 소환했다. 발달된 AI 기술과 함께 돌아온 이들은 생전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노래를 마치 직접 부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른다.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그들의 목소리와 음악을 그리워하던 음악 팬들과 대중에게 이들의 '신곡' 은 감격 그 자체였다. 

안타깝게도 두 프로그램 모두 특집 방송을 끝으로 시청자들과 작별해야 했다. 그러나 방영 1~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들을 향한 많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1)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
 

터틀맨 <비행기> 로 데뷔 5년만에 음악 방송 1위를 수상한 터틀맨은 유독 이 날 많이 울었다. ⓒ SBS

 
첫 번째로 무대에 돌아온 인물은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임성훈)이었다. 1990년대부터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래퍼로 활동해온 그는 2001년 혼성그룹 거북이를 결성, 1집을 내며 본격적으로 음악시장에 뛰어든다. 1집 타이틀 곡 < Let's boogie >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후 민중가요를 리메이크한 후속곡 <사계>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정규 2집부터 탈퇴한 수빈을 대신해 금비를 영입 <왜 이래>, <빙고>, <거북이>, <싱랄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터틀맨은 팀 내에서 음악적, 정신적인 리더 역할을 맡았다. 거북이의 모든 정규앨범은 그가 프로듀싱했으며, 말년에는 직접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려 대표로서 경영을 맡기도 했다. 터틀맨은 "작곡가들에게 갔더니 곡을 써주지 않아 결국 내가 직접 쓰기 시작했다"며 프로듀싱을 시작한 계기를 밝히기도 했었다. 터틀맨의 손에서 만들어진 희망과 긍정이 담긴 거북이의 음악은 많은 대중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빙고>와 <거북이>, <싱랄라> 등에서 선보인 유쾌함은 터틀맨과 거북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는 다른 두 여성멤버들에게도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터틀맨은 프로듀싱 과정에서 항상 3명에게 똑같이 파트가 배분되도록 작사를 했다. <빙고>에서는 멤버 3명의 이름(터틀맨, 지이, 금비)과 거북이를 세로읽기 형태로 만든 가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북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쓰러지더라도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싶다" 며, 음악과 팀에 대한 사랑을 자주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꿈과 달리 그의 몸 상태는 열망을 따라주지 못했다. 선천적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그는 1998년 같은 병으로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했던 터틀맨은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군 면제를 받은 상태였음에도 자진해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훗날 <장군에게>라는 곡을 통해 아버지를 추모하기도 했다. 의사는 심근경색 치료를 위해 체중감량을 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지만 터틀맨은 "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이 모습이다. 팬들을 위해 내 모습을 바꿀 수 없다"며 감량을 거부했다. 그는 이미 2005년, 심근경색에 의한 급성 심정지로 쓰러져 치료를 받았다. 수술 후 그가 병상에서 우연히 들은 4계음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거북이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겨준 4집 타이틀 곡 <비행기> 였다. <비행기> 로 처음 1위를 하던 날, 터틀맨은 "두 번째 삶" 을 언급하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터틀맨의 생전 마지막 방송 출연 2008년 4월 12일 방송된 <만원의 행복> 은 터틀맨의 생전 마지막 방송 출연이었다. ⓒ MBC


 
그러나 2008년 4월, 그는 다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했다. 향년 38세. 한창 5집 앨범으로 활동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거북이 멤버들과 팬들, 대중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과 눈물 속에 그는 마지막 길을 홀연히 떠났고, 정신적 지주를 잃은 거북이는 결국 해체를 선언한다. 두 여성 멤버는 거북이라는 이름을 남겨두고 개인적인 삶 속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거북이라는 이름은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주인을 잃은 체 서 있었지만, 대중들과 팬들의 마음 속에는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아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터틀맨 터틀맨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다시 소환됐다. ⓒ Mnet

 
그러던 2020년 12월 9일, 터틀맨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되었다. Mnet <다시 한번> 에서, 다시 거북이란 이름 앞으로 모인 금비와 지이는 터틀맨과의 추억을 돌아보며 거북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다. 그들에게 주어진 곡은 가호의 <새로운 시작>. 금비와 지이는 생전 터틀맨이 작사한 노래들에서 영감을 얻어 터틀맨이 부르게 될 가사를 써내려갔고, 이 후 녹음과 터틀맨을 AI로 재현하기 위한 과정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수 많은 거북이의 팬들이 지켜보는 순간, 터틀맨은 특유의 밝은 미소와 묵직한 음색을 뽐내며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금비와 지이도, 함께 무대를 지켜보던 팬들도, MC 하하도, 평소 거북이의 팬을 자처하며 금비, 지이와 거북이의 히트곡을 불렀던 펭수도, 무엇보다 아들과 동생을 그리워했던 터틀맨의 모친과 형도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모습을 반겼다. 터틀맨은 팬들이 생전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 밝게 팬들과 인사했다. 노래가 끝날 때, 터틀맨은 '손가락 하트' 를 날리고 홀연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터틀맨을 다시 보게 된 전율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무대에 소환된 터틀맨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2000년대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을 보냈던 세대들은 향수를 느끼며 돌아온 터틀맨에게 박수를 보냈다. 또한 터틀맨의 생전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AI 기술에 대한 관심과 찬사도 이어졌다. 어린 시절, 대중들의 동심과 추억 한 페이지에 남아있던 그는 다시 거북이라는 이름으로 추억과 함께 되돌아왔다. AI 기술이 대중들에게 남긴 뜻 깊고도 뭉클한 선물이었다.

(2) 사랑의 가객, 김현식
 

김현식 6집 <내 사랑 내 곁에> 커버 앨범 김현식은 음악팬들에게 '사랑의 가객' 이라는 호칭으로 더욱 애정있게 남아있다. ⓒ 동아기획

 
AI는 또 다른 스타의 귀환을 알렸다. 1990년 11월, 간경화로 사망한 가수 김현식이었다.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의 메인보컬로 가요계에 입문하여,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당신의 모습>, <어둠 그 별빛>, <떠나가 버렸네>, <넋두리>, <내 사랑 내 곁에>, <사랑 사랑 사랑>, <이별의 종착역>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80년대를 대표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보컬로 꼽힌다. 초창기 맑고 고운 미성으로 시작해 점차 둔탁해지는 목소리의 변화, <넋두리> 와 <내 사랑 내 곁에> 에서 보여준 마지막 절규까지 김현식의 음악인생은 매우 굴곡진 모양으로 흘러갔다. 특히 간경화 말기 상태에서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며 녹음을 끝냈다는 6집 <내 사랑 내 곁에> 에서 보여준 그의 절규 같은 고음은 지금도 많은 음악팬들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그는 사후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고, <내 사랑 내 곁에> 는 그의 굴지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은 많은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수 많은 후배들과 음악예능이 그의 이름을 추억하고 노래했다. 그를 '기억' 하는 것을 넘어 다시 '재연' 하기 위해, AI는 그를 다시 무대에 소환했다.

 

무대로 돌아온 '가객' 김현식 그는 그 때처럼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하고 있었다. ⓒ Mnet

 
그를 재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평소 방송 출연을 하지 않고 라이브 무대 위주로 활동한 그였기에 공식적인 라이브 영상을 찾는 것도 큰 숙제였다. 결국 터틀맨과 달리 그의 온전한 얼굴은 AI 기술로도 복원이 불가능했다. 발매된 지 오래 되어 대부분 LP 등의 구식 녹음장비로만 남아있는 그의 목소리도 그를 재연시키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작곡가 김형석, 함께 음악활동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등이 함께 모여 김현식에 대해 추억하며, 그가 부른 새로운 노래에 대한 구상을 했다. 그가 부르게 될 노래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1994년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박진영이 애절한 가사와 함께 불렀던 사랑노래였다.

드디어 김현식의 새로운 노래를 만나보는 날. 녹화장에는 평소 매체에 얼굴을 들어내지 않던 김현식의 친동생이 모습을 들어냈다. 그의 어머니나 아들 김완제 씨는 종종 김현식과 관련된 행사나 방송에 모습을 들어냈지만, 그의 친동생은 매체 출연이 처음이었기에 화제가 되었다. 녹화가 시작되고, 평소 그를 동경했다고 자처한 워너원 출신 가수 김재환, EXID의 솔지가 김현식의 히트곡을 부르며 그를 추억했다. 솔지는 스크린 속 김현식과 함께 <비처럼 음악처럼> 을 듀엣으로 불렀다.

'추억' 이 끝나고 '재연' 의 과정이 시작될 시간, 김형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들리기 시작한 김현식의 목소리는 그 때의 처절한 음색 그대로였다. 1절이 끝나고 하모니카를 불며 등장한 그의 모습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던 당시와 유사했다. 비록 얼굴 복원이 완벽하게 되지 않아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가 새로운 노래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하는 감성은 그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던 김형석은 노래 중간중간 눈을 감으며 김현식의 목소리에 함께 감격하고, 감동하며 반주를 이어나갔다. 

노래가 끝나자 쏟아지는 박수, 김현식은 짧게 인사를 하고는 유유히 무대 밖으로 걸어나가며 사라졌다. 한 때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가객' 의 귀환은 짧지만 강렬했다. 30여년이 지난 그의 노래는 추억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리움과 추억을, 새롭게 그를 접한 이들에게는 감동과 경외를 선사했다. 그는 다시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과 무대로 다시 걸어나왔다.

 (3) 또 다른 가객, 김광석

 

김광석의 생전 모습 많은 음악팬들이 기억하는 뮤지션 김광석의 모습이다. 기타와 하모니카, 애절한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의 모습을 많은 대중들은 그리워했다. ⓒ KMTV


80년대를 대표했던 가객 김현식의 뒤에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또 다른 가객이자 노래꾼, 김광석이 있었다. 노찾사와 동물원을 거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9년부터 솔로로 전환하여 활동했다.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등 시대와 젊음을 상징했던 그의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서 불려졌으며, 많은 이들을 여러가지 감정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소극장 공연으로만 공연 기록 1000회를 돌파한 소리꾼 김광석의 비상은 1996년 1월 6일,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렇게 음악 팬들 곁을 홀연히 떠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그의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었다. 그의 음악을 기억하고 즐기는 <김광석 다시부르기> 에는 많은 후배 가수들이 참여해 김광석을 부르고 있고, 그의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만 해도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이미 2편이나 나왔다. 그 역시 '기억' 에서 '재연' 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집이자 안식처였던 무대로 다시 소환되었다.
 

다시 부활한 김광석의 목소리 AI를 통해 그는 한번도 그가 불러보지 못한 노래 <보고 싶다> 를 부른다. ⓒ SBS

 
2021년 SBS의 신년 특집으로 방송된 <세기의 대결 : AI vs 인간> 을 통해 김광석은 다시 많은 이들을 울렸던 그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 위로 돌아왔다. 그가 부른 노래는 김광석 사후 6년 후인 2002년에 발매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 였다. 그는 한번도 이 노래를 부르거나 접하지 못했다. 의아해하는 대중들 앞에 <보고 싶다> 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던 순간, 많은 이들은 놀라움과 함께 곧 그리움과 추억에 가득한 눈빛으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그의 생전 노래 습관과 버릇도 그대로 녹아있었다. 비록 터틀맨과 김현식처럼 그의 모습까지 함께 무대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한 때 추억 속에서 함께하던 그의 목소리를 기억했던 대중들은 그의 귀환에 박수를 보냈다.
 

옥주현과 김광석의 <편지> AI로 돌아온 김광석은 그가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노래 <편지> 를, 듀엣으로 후배 가수 옥주현과 함께 불렀다. ⓒ SBS

 
특별한 무대도 이어졌다. 김현식의 생전 목소리와 함께 듀엣을 했던 솔지와 달리 옥주현은 AI로 돌아온 김광석과 함께 김광진의 <편지> 를 불렀다. <편지> 역시 김광석이 한번도 부르거나 접하지 못했던 노래였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로 시작하는 <편지> 의 가사가, 김광석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건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옥주현 역시 떠난 선배와의 듀엣 무대에서 그의 목소리에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를 지켜보는 MC 전현무는 울컥한 듯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부활한 김광석의 목소리 앞에 패널들과 관객, 대중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재연해놓은 현장 앞에 많은 이들은 하나씩 감추어놓은 추억들을 꺼내보며 돌아온 그와 함께했다.

AI 시대와 '귀환, 재연'

AI의 발전과 함께 '죽은 이의 귀환' 이라는 많은 이들의 오랜 열망이자 소원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 나이에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AI를 통해 그토록 그리워했던 딸을 만났으며, 대중들이 기억하고 사랑했던 3명의 음악가가 다시 무대에서 노래했으며, 아내와 사별한 남편도 AI를 통해 함께 사랑을 키웠던 집에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죽음을 '영원한 이별' 로 여겼던 오랜 상식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조금씩 예외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이를 다시 세상으로 부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기술로 죽은 이를 다시 나타나게 하는 건 죽은 이의 대한 예가 아니라며 반대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들이 조금씩 가능한 일로 바뀌고 있는 현재의 시대에서, 발전된 기술의 대표로 여겨지는 AI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와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해야 할 지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그러나, 확실했던 건 그들의 귀환은 많은 음악팬들에게 좋은 상기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악과 예술은 단순한 퍼포먼스로 남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이 가진 추억과 감정 안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음악과 예술이 어느 순간 사라지더라도, 그것이 선물했던 전율은 그 안에 그대로 남아 살아있는다. 새롭게 들어오는 또 다른 음악과 예술에 밀려 잠시 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과거의 전율을, 그들의 부활과 소환은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전율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AI를 통해 인간이 간직하고 있는 여러 전율을 다시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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