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잠적 5년 째... 그대는 어디에

2016년 전국투어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활동 중단... 그의 근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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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theinterview1112)등록 2021.02.08 16:31

<여러분> 을 열창하는 임재범 많은 대중들은 임재범을 <나는 가수다> 에서 포효하듯 노래하는 싱어로, 특히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음악인생을 투영시키는 듯한 <여러분> 을 가장 인상적인 무대로 뽑는다. ⓒ MBC

 
'록커' 라는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여러 인물과 음악 중에서도 대중의 입에서 절대 빠지지 않을 인물이 있다. 바로 임재범이다. 독특한 음색과 포효하는 듯한 샤우팅, 발성 자체에서 전해지는 그만의 감성은 수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고 그를 대한민국 정상의 가수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1986년 시나위의 보컬로 데뷔한 그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 를 시작으로 <이 밤이 지나면> <그대는 어디에> <고해> <너를 위해> <낙인> <사랑>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노래했고 이 중 <고해> 와 <너를 위해> 는 발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방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불려지고 있다. 임재범을 대중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시나위, 외인부대, 아시아나 등의 밴드로 대표되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굵은 음색, 찢어지는 듯한 샤우팅이 있고, 솔로로 전향한 이후 <고해>, <너를 위해>, <낙인> 등의 록발라드에서 보여준 그만의 감성이 있다.

 

임재범을 극찬하는 김형석 김형석은 임재범에 대해 "가수 10명 중에 1명이라도 임재범의 반 정도만 했으면 한다" 며 그의 노래에 최고의 극찬을 내렸다. ⓒ SBS

 
그의 가창력과 특유의 음색은 대중들은 물론이요 수 많은 음악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도 하나 같이 인정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SBS <한밤의 TV연예> 에서 임재범의 노래를 프로듀싱하던 김형석은 "가수 10명 중에 1명이라도 저 반 정도만 했으면 한다" 며 그의 가창력을 극찬한 바 있다. 많은 후배 음악인들의 그의 음악에 존경을 표했고, KBS <불후의 명곡> 에서도 임재범은 3차례 전설로 출연하며 그의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2015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던 그가 2016년, 전국투어 콘서트 이후 지금까지 종적을 감췄다. 2017년 부인상, 2020년 그의 생부였던 임택근 전 아나운서가 별세했을 때 상주로서 자리를 지켰다는 뉴스가 지난 5년간 그가 세상에 보여준 행적의 전부였다. 그의 히트곡 <그대는 어디에> 라는 제목처럼, 임재범은 다시 긴 침묵에 들어갔다. 

공백기가 잦은 가수의 삶

임재범은 음악팬들에게 공백기가 가장 잦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1년 <나는 가수다> 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지상파 방송에 거의 출연하지 않고 라이브 무대 위주로 활동했다. 어쩌다 TV에서 임재범을 보는 날에는 그는 여김없이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만 서 있었다. 그는 온전히 음악인으로서 인정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적 갈등 역시 그를 방송과 세상으로부터 숨게 만들었다. 1991년 시나위에서 탈퇴한 이후 발매한 <이 밤이 지나면> 이 큰 히트를 기록한 뒤 방송가에서 그와 그의 노래를 찾았다. 그러나 시나위, 아시아나 등에서 보여준 록커 임재범이 아닌 소울, 록발라드를 부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록 팬들은 물론 대중들도 낯설어 했고, 이는 곧 근거 없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마이클 볼튼' 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결코 영예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소속사로부터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한 것도 그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결국 그는 <이 밤이 지나면> 으로 활동한 이후 오대산으로 들어가 칩거를 했고, 활동을 재개한 이후에도 칩거와 재기를 반복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방송사와의 갈등으로 1993년에는 출연정지를 받는 등, 그의 음악 인생은 순탄치 못했다.

2000년 <너를 위해> 가 수록된 4집 활동 이후 그는 4년간 잠적했다가 2004년 MBC 수요예술무대를 통해 모습을 들어내고 5집을 발매했다. 팬들의 기대도 잠시, 5집 활동이 끝나자 그는 다시 사라졌고 2008년 6집과 함께 4년만에 얼굴을 비춘다. 6집 이후 다시 모습을 감춘 그는 2010년 KBS 드라마 <추노> 의 OST <낙인> 을 통해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추노가 대중들에게 언급된 횟수만큼 그의 노래도 여러 방송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지만 그는 <김정은의 초콜릿> 과 <수요예술무대> 를 제외한 어떤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임재범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데뷔 이후 칩거와 재기를 반복해오던 그는, 2011년 가수생활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 였다.

단 3번의 무대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 그는 임재범이었다
 

<나는 가수다> 첫 인터뷰 20년만에 지상파 예능으로 얼굴을 비춘 그에게 PD가 꺼낸 말은 "고맙습니다" 였다. ⓒ MBC

 
2011년 그가 대중들 앞에 가까이 다가섰다. 일밤 <나는 가수다> 에 얼굴을 비춘 임재범을 보며 가수들도, 대중들도 모두 놀랐다. 잠적과 활동을 반복하며 방송과는 거리를 두었던 그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PD가 꺼낸 말은 다름 아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였다.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 대중을 가까이 바라보기로 한 그의 결정을 경외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년만에 대중들 가까이 다가온 그는 역시 임재범이었다.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으로 김영희 PD가 하차하고 새롭게 정비된 <나는 가수다> 가 일밤 예능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갈 수 있었던 도약점은 바로 임재범의 출연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출연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첫 무대에서 부른 노래는 <너를 위해> 였다.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라는 가사처럼, 그는 그가 겪었고, 선택했던 음악인생을 한 없이 노래했다. 전성기에 비해 안 좋아진 목상태가 눈에 띄었지만 대중들은 그의 노래와 감성에 한 없이 감동했다. 그리고 그는 그 날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다.

 

<빈잔> 을 열창하는 임재범 그는 남진의 <빈잔> 을 록 음악으로 편곡하여 불렀다. 대북을 이용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 MBC

 
본격적인 경연으로 들어간 이후 그가 부른 첫 곡은 남진의 <빈잔> 이었다. 그가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트로트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추느냐가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는 뮤지컬 배우를 피쳐링으로 동원하고 대북을 준비하여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그의 음악 세계에서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형태의 경연을 펼친다. 그러나 이런 특별함 안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연 당일 그의 몸상태는 최악이었다. 노래를 하면서도 그는 수시로 음이탈을 내는 등 아픔이 가득담긴 노래를 불렀다. 그의 성적은 4위. 하지만 대중들은 임재범의 '고통' 속에서도 감동을 얻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고음은 아니었지만, 깨끗하면서도 거칠게 올라가는 그의 허스키함이 신체적 고통 앞에서 잠시 순해져도 대중들은 임재범의 음악 자체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2주 후인 5월 22일, 임재범은 <여러분> 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현재까지도 음악팬들이 가장 인상 깊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러분> 을 부르며 자신의 투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원곡 가수인 윤복희가 트위터를 통해 "이 곡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노래했다" 며 극찬했던 것처럼, 그는 어떠한 노래이든 자신만의 감성을 통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가수임을 보여주었다. <여러분> 의 가사인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를 통해 임재범은 자신처럼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의 심정을 위로했으며, 곡 마지막 부분에서 독백처럼 내뱉는 "바로 여러분" 이라는 짦은 문장을 통해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도중 울고, 그의 노래에 경외를 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 자체에 파고들었던 그의 음악과 감성에 눈물을 흘렸고, 그런 현상에 감탄을 느꼈다. 임재범이 이 곡을 부른 당시 경연은 '5.22 대첩' 이라는 은어로 통할 정도로 출연한 7명 가수 전원이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던 회차였다. 순위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렸던 그 날의 경연에서 1위를 받았던 그. 그러나 5월 22일 경연을 마지막으로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 무대를 내려왔다. 그의 건강 상태로는 도저히 서바이벌 방식의 경연 녹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치 잠깐의 꿈을 꾼 듯한 무대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그답게' 무대를 떠났다. 

대중들과 가까이 있었던 임재범
 

<바람에 실려> 출연 모습 나는 가수다 이후 출연한 버스킹 음악 프로그램 <바람에 실려> 에서도 그는 그다운 모습을 여러차례 선보인다. 음이탈을 낸 자신을 용납하지 못해 잠적하기도 하고, UC 버클리 학생들 앞에서 인생을 노래하기도 했다. ⓒ MBC

 
단 3번의 무대였지만 횟수는 중요치 않았다. 다시 돌아온 그의 모습과 그가 선보인 무대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했고, 이는 그를 더욱 대중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나는 가수다가 끝난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그는 데뷔 20년 만에 대중들과 가장 가까이 소통했다. 먼 무대에서 '맹수' 처럼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 이면에는 대중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들도 숨어져 있었다. 그는 여러 프로그램의 러브콜을 받으며 활발한 방송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 에 출연하여 예능인들과도 활발한 호흡을 보이며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KBS <불후의 명곡> 에는 몇 차례 전설로 출연하며 후배 음악인들의 음악을 경청하고 그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그를 가장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던 예능은 바로 일밤 <바람에 실려> 였다. JTBC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 과 컨셉이 유사한 버스킹 음악프로그램이었다. 공교롭게도 바람에 실려는 그가 출연했던 <나는 가수다> 와 같은 일밤에서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음악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임재범' 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공연 중 안 좋은 컨디션으로 인해 음이탈을 내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도중 잠적해버린다. 나머지 출연진들은 몽타주를 만들어 그를 찾아 헤맸고, 그는 결국 LA의 한 클럽 앞에서 노숙을 하다가 출연진들에게 발견됐다. 이 후 사기를 다진 그는 다시 출연진들과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다. 

방송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그의 잠적은 1번이지만 그는 <바람에 실려> 녹화 기간동안 무려 3번을 잠적했다. 대중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임재범다운' 그의 방식은 사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과 삶 앞에서 결코 놓지 않은 그의 끈질긴 고집과 집념은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만들었다. 그는 UC 버클리에서 최후의 공연을 펼치며, 젊은 학생들 앞에서 그가 만들어온 '방식' 을 여김없이 노래하고 가르쳤다. 큰 칠판과 화려한 말솜씨도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와 마이크 하나는 그의 삶과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업 자료였던 셈이다. 

30주년과 함께 멀어지다
 

JTBC <히든싱어> 에 출연한 임재범 데뷔 30주년, 그는 히든싱어에서 모창능력자들과 만났다. ⓒ JTBC

 
2015년은 임재범의 데뷔 30주년이었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대중들과 가까이 하며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그의 활동에 정점을 찍은 건 JTBC <히든싱어> 출연이었다. 김진호, 민경훈 등 과거 추억 속의 가수들로 여겨지던 이들도 히든 싱어 출연 이후 전환점을 맞게 되었을 정도로 프로그램의 인기와 영향력은 대단했다. 히든싱어의 PD는 시즌 1 기획 초반기부터 임재범을 염두해두며 그를 원조가수로 출연시키려 했으나 예능 섭외를 까다롭게 하는 그의 특성상 실제 출연은 시즌 4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김진호와 민경훈, 두 명의 가수가 탈락할 만큼 실력 높은 모창능력자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시즌 4에서 그는 그가 왜 임재범인가를 증명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를 동경하며 그의 목소리, 창법을 흉내냈던 모창능력자들도 임재범의 목소리를 완벽히 재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히든싱어 출연 이후 그는 김태우, 윤도현, 바다, 태연 등 후배 가수들과 함께 3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하고 전국투어 콘서트를 버렸다. 30주년이라는 가수 인생의 경사 앞에서 그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열심히 무대에서 뛰었다.

그러나, 30주년 콘서트와 함께 올라간 정상의 자리에서 그는 홀연히 내려왔고, 가까이하던 대중들과의 거리를 조금씩 넓게 벌리며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는 왜, 또 다시 홀연히 모습을 감춘 것인가.

'애처가' 임재범
 

눈물 흘리는 임재범 <너를 위해> 로 1위를 차지한 뒤, 아내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기분이 좋아서요" 라는 말을 10년만에 꺼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 MBC

 
임재범은 뮤지컬 배우 송남영 씨와 2001년 결혼한 뒤, 다음 해 딸을 낳았다. 그는 아내와 딸을 끔찍히 사랑하는 애처가이자 아버지였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무대에 선 이유도 아내의 딸에게 도리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었다. 그는 나는 가수다 첫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아내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평소보다 흥분한 아내에게 "왜 그래요?" 라고 묻자 돌아온 답은, "기분이 좋아서요" 였다. 결혼생활 10년동안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내의 행복한 말에 그는 눈물을 쏟았다. 

아내 송 씨는 갑상선 암 투병 중이었다. 임재범은 자신의 무기력한 모습이 아내의 병을 키웠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우울증, 조울증에 시달리며 보낸 6~7년의 세월동안 보낸 아내의 힘든 시간, 저작권료로 나오는 월 100~200만원의 돈으로 연명한 시간들, 차 없이 딸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가 딸이 원하는 물건들을 마음껏 사 줄 수 없어 "오늘은 조금만 사자" 라며 딸을 달래고 돌아와야 했던 모든 기억들이 그에게는 아픈 상처이자 후회로 남아있었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본격적인 방송 활동에 뛰어든 임재범은 아내와 딸을 위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악화되어 갔고 결국 2017년 6월, 송 씨는 6년간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평소 그가 아내를 향해 보내온 사랑을 누구보다 알고 있던 대중들은 그에게 위로를 건냈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중단한 체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갔다. 방송, 음악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정신적인 이유였던 아내의 부재가 그를 흔들어버린 것일까. 그는 아내와 사별한 이후 4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도 들어내지 않고 있다. 그가 팬들과 소통하던 페이스북 계정도 2016년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고, 그가 자주 드나들던 팬카페와 갤러리 커뮤니티도 활동이 뜸한 상태다. 최근 들려온 소식은 2020년 1월 그가 생부였던 임택근 전 아나운서의 별세 이후 장례식에서 상주를 맡았다는 소식이었다. 

전설적인 록커이자 삶 자체를 감동을 주었던 가수 임재범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있다. 그가 늘 고집했던 것처럼 그는 또 다른 알 속에서 깨어나오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들은 변함 없이 그의 음악과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노래를 통해 배움과 감동을 얻었던 수 많은 일반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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