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없다는 '눈치보기', 미덕일까 악습일까

[리뷰]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본 영화 < #아이앰히어 > 뒷얘기

검토 완료

김혜민(mingming216)등록 2021.02.24 16:3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족 모임에서조차 소외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한 중년의 프랑스 남성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만난 젊은 한국 여성과 메시지 및 사진으로 소통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 가끔은 짧은 영상통화도 하며 정신적 거리감을 좁혀가고, 이내 그는 무료했던 일상에 활기를 얻게 된다. 

한국의 벚꽃 시즌이 한창이던 어느 봄날, 여성은 벚꽃 사진과 함께 '당신도 이 풍경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날린다. 운전을 하다 이 메시지를 받아든 남자는 마치 고백이라도 받은 듯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까지 내고, 하룻밤 깊게 고민한 끝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출발 직전, 당연히 여자가 반겨줄 거라고 생각하며 공항 도착 시간을 메시지로 보내고, 여자는 당황한 듯하다 알겠다며, 공항에서 보자고 대답한다.

하지만 남자는 도착한 날, 그 다음날도, 다음 다음날도, 여자를 만나지 못한다. 그녀는 며칠째 소셜네트워크에 아예 접속하지 않고 있으며, 당연히 메시지에는 아무 답도 하지 않는다. 여자 하나만 보고, 혹은 그녀와 함께 볼 벚꽃만 생각하고 바다 건너 한국에 온 그는 공항에서 노숙을 하며 무려 1주일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본인의 소셜 네트워크에 사진을 업로드하며 꾸준히 그 여자의 페이지를 해시태그로 덧붙인다. "나 여기 있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기다림에 지쳐 결국 공항 버스를 타고 여자가 일한다고 말했던 종로타워에 무턱대고 찾아가고, 거기서 운 좋게 그녀를 만나지만, 그녀는 그를 반기기는 커녕 피하려 한다. 어찌저찌 길을 함께 거닐며 처음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여자는 그간 그 남자로 인해 생긴 불편을 호소한다. "사진마다 그렇게 해시태그하고 내 이름을 달아대서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냐", "우리는 만나기 전처럼 연락만 하고 지냈었도 좋았는데, 당신이 그 관계를 다 망쳐놨다", "당신은 눈치가 없어서 다 설명을 해야만 안다"며 면박을 준다. 남자는 벙쪄있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

이는 지난 1월, 남편이 내게 "우리 이거 꼭 봐야돼!"라며 강력 추천한 영화 <아이엠히어(I am here)>의 줄거리 일부다. 주연을 맡은 알랭 샤바(Alain Chabat)는 남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해왔다는 프랑스의 유명 영화배우 겸 감독이기도 하다. 촬영 배경이 한국이고, 또 한국의 배우 배두나도 출연한다는 정보에 나 또한 궁금해졌다. 

영화에는 가족 이야기도 나오고, 주인공 스테판(Stephane)이 의도치 않게 유명인이 되어버리는 황당하면서도 재미난 신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우리 부부의 논쟁을 가동시킨 부분은 '그 여자(배두나가 연기한 한국 여성 수)는 나쁜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남편은 그 여자가 완전히 나쁜 여자라고 못박았다. 첫째, 만나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벚꽃을 같이 보고 싶다느니 그런 메시지를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 둘째, 스테판에게 거짓말을 하고 본인 것이 아닌 그림을 돈 받고 팔았다는 점에서도 나쁘단다.(둘 사이 온라인으로만 소통할 때, 스테판은 수가 보여준 그림을 맘에 들어하며 구입했고, 나중엔 그 그림을 자신의 식당에 걸기도 한다. 하지만 둘이 서울에서 대화하는 동안, 수는 사실 그 그림은 이웃이 그려준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버린다.)

나는 극중 수의 입장이 대충 이해가 갔다. 물론 100% 이해가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곳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일상을 공유하는 먼 친구가 생겼단 자체만으로 만족하던 그녀에게 그를 직접 만날 생각이라고는 1%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소셜네트워크로만 연락을 한다는 데에는 그러한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게 아닐까? 계정이나 이 앱을 없애기만 하면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리니 말이다. 이게 내 딴에는 눈치다. 그녀가 정말 직접 만나기를 원했다면 더 현실적인 질문을 했을 거다, 하지만 둘 사이 대화는 붕 떠있다. "나는 집 근처 참나무를 좋아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벚꽃이 피고 있다"... 이런 말은 어떤 면에서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대화에서 친밀함을 느끼고 한국행까지 계획하는 그는 그저 눈치가 없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아니면 무료한 삶의 돌파구라고 느껴서 더 과감하게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테판이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었다면, 한국에 오기 전에 "내가 한국에 가면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수는 아무래도 부담을 느끼며 소셜 네트워크로만 소통하자고 이야기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당장 비행기로 서울길에 오른 사람에게 안 만날테니 돌아가라 하기는 조금 '거시기'해, 또 한 번 저녁 먹자는 말에 거짓으로 오케이 했을 거다. 한 술 더 떠 이 남자는 아무래도 경제력도 있어보이고, 여유가 있는 중년 남성이니 한국까지 와서 본인을 못 만났다 할지라도 알아서 관광 잘 하고 돌아가겠거니 짐작했을 수 있다. 아이 엄마, 직장인의 굴레를 벗어나 소셜네트워크에는 풍경이나 그림, 셀피 등을 업로드하며 자신의 이상향만을 표출하며 살아가던 이 여인의 현실에, 슬프게도 스테판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스테판의 한국행에 불을 댕긴 멘트, "벚꽃을 같이 보면 좋겠다"란 그저 온라인의 자아가 했던 말 플러스, 한국인 특유의 "언제 밥 먹자" 같은 빈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빈 말이나 눈치 같은 개념 자체가 없는 스테판의 입장에서는 나쁜 여자가 맞긴 하다. "왜 대체 그런 거짓말을 하냐"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문화 차이 아닐까. 

사실 한국인인 나도 눈치나 빈 말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 언제 식사하자는 말, 크게는 일적으로 내밀었던 제안이 한 번 흐지부지되면 그 뒤로 다시 청했다간 눈치 없는 사람이 될까봐 더이상 진행하지 못한다. 빈 말도 너무 많으니, 칭찬을 들어도 딱히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빈 말일 것 같으니까. 

하지만 눈치를 보지 않는 스테판은 사실 너무나 자유롭다. 낯선 이와도 진심으로 소통하려 하고-대부분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때가 많지만-이 덕에 새롭고 값진 경험도 많이 하게 된다.  

결국 본인의 부족한 눈치로 무모하게 한국에 왔던 스테판에게, 미지의 여인에 대한 기대감은 산산조각났으나 결국 그 이상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행복하게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정도면 눈치의 완패나 다름 없다. 처음부터 눈치를 봤다면 한국행 자체도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눈치를 볼 줄 모른다며 스테판을 타박한 수는, 결국 괜찮게 지내던 채팅 친구 한 명을 잃었다. 이 또한 눈치의 패배를 의미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누구처럼 살고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스테판이다. 겉모습만 보면 아마도 좋은 직장에, 예쁜 아이도 있고, 멋진 외모로 남부럽지 않게 사는 듯한 수는 마음 속에 무엇이 부족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지내는 온라인 친구가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반대로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고, 눈치보기 전에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며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스테판의 모습은 찌질해보일지 몰라도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나는, 체화된 눈치에 소심한 성격까지 더해져 그 반대 모습으로 살고있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엔 눈치란 미덕이 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도 된다. 눈치가 없다는 건 칭찬이 절대 아니지만, 결국 눈치를 보는 사람보다 눈치 없는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실 간단하다. 눈치를 본다는 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이다. 곧 나의 행복과, 나에 대한 타인의 기대 중 무엇이 더 내 인생에서 중요한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내가 계속 눈치를 봐야 할지, 아니면 조금씩 이를 덜어갈지에 대한 답이 나올 것 같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