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을 포기하라고요?

폐업한지 1년 9개월, 3일 째

검토 완료

김준정(zzun78)등록 2021.03.06 11:02
책 <생각하는 힘은 유일한 무기가 된다>의 작가 야마구치 요헤이는 앞으로의 일은 불교나 무도에서 말하는 수파리의 순서를 따른다고 했다.     

"20대에는 수행의 시기, 30~40대에는 리더를 경험하고 50~60대에는 독립된 조직을 이끈다." 

20대에는 스승 아래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이를 바탕으로 30, 40대에 창업을 하고 50, 60대에는 업계를 뛰어넘는 독립된 사업을 하라는 뜻이다.    
 

"업계를 뛰어넘어 큰 도전을 하고 싶다면 40세 이후가 좋다. 40세 정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에 학원 강사로 일했다. 차츰 규모가 큰 학원으로 옮기면서 고정월급에서 수강료의 35%를 급여로 받
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31살에 수학학원을 개업했고 12년간 운영한 뒤 42살에 폐업했다. 책에 따르면 나는 수파리의 순서를 따른 거라 볼 수 있지만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교과목을 가르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만둬야 하는 이유만 끌어 모으는 데만 온 기력을 다 써버린 기분. 학원을 할 때나 그만두고 나서나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영부영하다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해력 교정 훈련'과 독서토론으로 학습역량을 키우는 수업을 하려고 했지만 전단과 현수막 광고로 온 문의전화가 등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학원을 할 때, 괜찮은 독해력 훈련 프로그램을 가맹을 했었다. 수학 외에 독해력 교정 훈련 수업을 개설했지만 학부모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에 그 이유가 학부모들의 의식 수준이 과거 입시교육에 머물러있어서 설득하는 게 힘들다고 단정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나 강의에서 들은 말을 따라 하는 말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었다.      

학습역량이라는 학부모 입장에서 생소한 수업을 하겠다면 나부터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집필한 책이나 프로그램, 혹은 앱을 만들면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게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자기 혁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와 같은 아파트에서 수학공부방을 하는 S선생님은 요즘 주식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고, 미술학원장인 J 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다. 아빠가 40년간 운영해온 선반 CNC가공 공장을 지금은 오빠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갈수록 일거리가 줄어서 두 남자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작가가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해서 미리 예상 답안을 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생존'에서 '창조'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니트로 1~2년 동안 명실공히 생산을 포기하는 기간을 계획하는 것이다."     

-생산을 포기하라고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니트 초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가상통화 거래나 PC반 등지에서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정도의 일뿐이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 어느새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에 복귀하고 싶어 진다. 먹고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맞아요, 불안한지 어떻게 알았어요?     

"힘들 수도 있지만 이 기간을 견뎌내면서 기존의 사회지표가 아닌, 자신만의 지표를 설계해야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것이라고 좋다. 나이키 플러스로 조깅을 기록하거나, 요리 레시피 사이트에 자신이 만든 레시피를 올리거나, 채소를 기르고 수확량을 기록한다. 구글맵을 사용하여 자신이 여행한 장소에 별 표시를 한다."     

-그러면 뭐가 생기는데요?    
 
"작은 기록이 작은 성취감을 주고 성장을 촉구한다. 차츰 커다란 사회적 목표가 생겨나고 '타인에게 공헌해보자'라는 생각에 이른다. 공헌을 돈으로 변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일하는 방법이다."
     
-공헌이라...     

"그것을 지속해나가면 일과 일을 조합하여 더욱 큰 가치를 창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비즈니스 창조다. '일은 놀이다. 비즈니스는 가치와 신용을 창조하는 게임일 뿐이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면 패러다임 시프트가 완료됐다는 증거다."     

알 듯 말듯하고 언젠가 세바시에 들었던 이야기 같다. 왠지 하늘로 올라가는 다리를 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 
    
폐업한 지 1년 9개월, 3일이 된 나는 그동안 책도 안 되는 글을 꾸준히 써온 건 야마구치 요헤이 님 말처럼 '기록'을 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작은 성취감"을 맛봤고 스스로 "성장"이 되었다고 느꼈다(오직 나만 아는 나만의 성취감)     

"타인에게 공헌해보자"라는 마음이 내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돈에 쪼들리는 것에 붙들리면 안 된다고 나를 타일렀다. 과외가 잘리는 일에 천착하기보다 "사회적 목표"를 가지는 게 나에게 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독서토론모임을 만들었고 블로그에 매일 공부법에 관해 짧지만 실용적인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생활 전반이 내가 하려는 일과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학생에게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필사와 감사노트, 플래너 작성으로 학생들의 '학습 루틴'을 잡는 일을 하고 싶다.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어서 나도 매일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습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공부 방법을 코칭할 생각이다.     

이 길은 글쓰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새벽에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밤 술 마시고 싶은 걸 참고 있다.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영원히 하지 못할 거라고(하면서 마시기도 한다) 생각해서다. 술을 마신 다음날 멍한 머릿속을 헤집으면서 글을 쓰다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앞으로의 일은 글쓰기처럼 생활과 나, 일이 하나가 되어야만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세 가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질 때 이전보다 충만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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