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끌어낸 한 '부캐' 유튜버의 정체

빅뱅 대성의 또 다른 이름... 꼭 밝혔어야만 했나

검토 완료

허건(theinterview1112)등록 2021.03.15 09:42
 

유튜브 'D'splay' 채널 속 영상 . ⓒ D'splay 유튜브 채널

 
최근 '부캐' 는 연예계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본인 외에 또 다른 인물이자 아이덴디티로 활동하는 걸 '부 캐릭터', 줄여서 부캐라고 부른다. 보통 부캐를 사용하는 연예인들은 이름과 기본적인 정보까지도 새롭게 만들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활동한다. 지난 해 MBC <놀면 뭐하니?> 에서 유재석이 선보인 부캐 열풍이 시발점이었고, 이후 수 많은 연예인들이 부캐를 만들어 완전히 다른 아이덴디티를 가지고 대중과 소통하게 되었다. 

그러던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로 인해 유튜브 사용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채널의 이름은 D'splay(디스플레이). 흔한 이름에 컨텐츠는 드럼을 치거나 영어단어를 알려주는 등, 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영상만 봐서는 여타 존재하는 일상 유튜브 채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구독자 수도 그리 높지 않았다. 영상 속 남성 역시 구독자들의 댓글에 답을 달아주는 등 평범한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채널의 정체는 곧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영상 속에서 드럼과 일상을 즐기며 살았던 이 남성은 바로 빅뱅의 멤버 대성이었다. 대성은 지난 해 전역 후 대외적인 활동을 크게 하지 않았지만, 사실 D'splay라는 부캐로 유튜브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그는 자신이 대성이라는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부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언론의 보도가 확대되자 D'splay는 한 영상을 업로드해 자신도 대성의 팬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이 대성이 아니라는 걸 직접 강조하며 웃음을 줬다. '화악산 호랑이 조교' 라는 캐릭터를 강조하며 말투까지 군대의 조교를 똑같이 따라했다.

이번 대성의 부캐 활동은 대중들에게 큰 신선함을 주었다. 무엇보다 가요계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빅뱅의 멤버인 그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않고 부캐를 사용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는 사실 자체도 큰 화제거리였다. 특히 대성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 채널의 구독자들이 남긴 댓글에 답들 역시 연예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만큼 평범했다. 

하지만 언론의 이번 보도는 부캐를 지키는 연예인에 대한 언론의 침해처럼 느껴졌다. 또한 언론이 연예계의 트랜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결과 스스로 대성, 빅뱅의 이름을 감추고 평범한 유튜버로서 팬들과 소통하며 지내려했던 그의 바램도 깨져버리고 말았다. D'splay의 감춰진 정체를 밝혀낸 언론, 과연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부캐'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언론
 

방송인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 . ⓒ MBC

 
'부캐' 는 연예인의 또 다른 캐릭터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암묵적인 관례가 존재한다. 바로 부캐가 등장해 활동할 때는, 부캐의 실제 정체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아이덴디티로 등장한 연예인에게 본래의 정체성이 언급된다면 부캐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수 많은 부캐들로 활동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부캐가 등장할 때면 '본캐릭터' 유재석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과 싹쓸이로 나온 앨범에서도, 온전히 부캐 '유산슬' 과 '유두레곤' 만 언급되고 다루어졌다.

대성의 경우 부캐를 썼던 여타의 연예인들과도 사례가 틀렸다. 프로그램 중간에 부캐를 선언하고 활동했던 유재석과 달리, 대성은 처음부터 자신이 정체를 전혀 밝히지 않고 유튜브 활동을 했다. 그는 목소리, 얼굴 등 추측당할 증거들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렸고, 목소리 역시 잘 들어내지 않았다. 그의 채널에 드럼 연주 영상이 많은 것도 자신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영상 촬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빅뱅 데뷔 전부터 그의 드럼 연주는 팬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드럼 연주자로서 팬들에게 다가갔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언론이 채널의 정체를 공개하면서, 그가 부캐로서 활동하고자 했던 의도는 전부 틀어져버리고 말았다. 빅뱅의 명성을 보여주듯 수 많은 구독자들이 그의 채널을 구독했지만, 그가 내세웠던 부캐 '디스플레이' 의 본질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의 채널에는 벌써부터 대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았을 때, 언론이 대성의 부캐를 공개한 것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부캐로서 인정받고 싶어했던 대성의 의도와, 그런 의도를 뒷받쳐주는 트랜드를 완벽하게 무시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부캐' 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던 대성
 

그룹 빅뱅 . ⓒ 보그 코리아


대성이 부캐로 내세운 '디스플레이' 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실험과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데뷔 후 빅뱅은 수십년간 K-POP의 정상 자리를 지켜온 인기 그룹이었고, 수 많은 명예를 안겨준 빅뱅의 명성은 그에게 영광이자 독이 되었다. 대성은 그룹 활동 시절부터 다른 멤버들과 차별화된 트로트에 도전, <날 봐 귀순>, <대박이야> 등의 트로트 음악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시도들도 대성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빅뱅의 거대한 그림자를 때어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성이 부캐 '디스플레이' 로 운영했던 유튜브 채널은 그로 하여금 빅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순수한 청년으로서 대중들과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럼 연주를 올리고, 영어 단어를 공부하고, 이를 궁금해하는 구독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평범한 유튜버로서의 삶은 대성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언론의 공개 이후, 그가 잠시 벗어나있던 빅뱅의 명성은 다시 그의 앞에 달라붙었다. 빅뱅의 명성 자체는 결코 나쁘게 작용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대성이 지난 몇 달간 유튜브에서 경험했던 평범함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대성은 디스플레이가 아닌 다시 빅뱅 대성으로서, 수 많은 팬들의 응원과 댓글을 받으며 채널을 운영해나가야 한다. 

언론이 아니었더라도 디스플레이의 정체는 언젠간 밝혀졌을지 모른다. 특히 자신의 아티스트는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차린다는 팬들에게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까지 숨기며 부캐로서 대중들과 소통하려 했던 그의 실험을, 굳이 언론이 나서 직접 정체를 공개하며 망쳐버린 건 좋은 현상이 아니다. 

언론이 부캐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낸 건 이전에도 많았다. EBS의 인기 캐릭터 펭수는 구독자들에게 순수히 '펭귄' 으로 여겨지지만, 언론은 펭수를 연기하는 연기자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수 차례 내보내 팬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펭수 스스로 '나는 펭수다, 그 누구도 아니다' 라고 여러차례 밝혔음에도 언론은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부캐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방송으로 내보냈던 활동을 시작했던 유재석, 제시, 이효리 등의 연예인 역시 언론에 의해 부캐에 대한 여러 추측을 받아야 했다.

'부캐' 디스플레이의 정체는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안다. 빅뱅의 팬들에게는 전역 후 활동이 뜸했던 대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스플래이가 그 누구도 아닌 부캐 자체로 활동하려했던 계획을 무산시켜버린 언론의 보도는 트랜드를 역행하는 행동처럼 보여진다. 연예인들이 부캐로서,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받지 않고 당당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언론은 언제쯤 성숙해질까. 부캐를 장기간 동안 지켜왔던 대성마저 언론에 의해 정체성이 들어나는 걸 보며, '부캐' 의 문화와 관례에 대해 언론이 전혀 숙지되어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목격하게 되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