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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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uj0102)등록 2021.03.19 16:38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3월 들어 세 번째 맞는 금요일,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아이의 들쑥날쑥한 하교 시간에 서서히 적응도 했고 일정도 하나씩 정비해 나가면서 휴직한 김에 오래도록 미루어 두었던 무위를 즐기고 싶은데 좀처럼 잘 되지 않네요. 오늘은 그와 관련하여 떠오른 그림책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형제 일러스트레이터인 테리 펜, 에릭 펜의 작품입니다.
함께 읽어보실까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527057

잿빛으로 가득한 남루하고 활기 없는 동네, 그림로치가. 어깨를 늘어뜨린채 무거운 짐을 들고 바닥을 보며 걷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단정하고 힘찬 발걸음으로 사다리를 들고 화면 안으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땅을 보며 부엉이를 그리는 윌리엄 곁을 지나갑니다. 이내 신비로움이 감도는 초록빛 가득한 달밤,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조심스럽지만 익숙하게 준비를 마치고 사다리를 타고 나무로 올라가는 그가 바로 한밤의 정원사로군요.

다음날 아침, 윌리엄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하룻밤 사이, 보육원 마당에 마법처럼 부엉이가 나타났거든요. 땅바닥이 아닌 나무 위의 부엉이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윌리엄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매일 매일 거리엔 새로운 모양의 나무 조각이 생기고 우중충한 잿빛의 죽어있던 거리가 서서히 색깔과 활기를 되찾아 갑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시끌벅적 소리가 들려오고 무표정하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밤, 윌리엄은 한밤의 정원사와 마주치죠. 윌리엄은 정원사의 특별한 선물을 받습니다. 정원사로 인해 달라진 것은 마을과 마을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윌리엄에게도 작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차츰 계절이 바뀌고 정원사가 남긴 흔적도 모두 사라져 갔습니다. 무성했던 잎들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았습니다. 마을은 다시 잿빛으로 물들까요? 모두 땅에 고개를 박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거리를 걷게 될까요?

질문의 답은 그림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봐 주세요.

직장인으로서 가정주부와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 순간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사느라 늘 저의 하루는 빡빡한 일정에 대한 조급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살았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자 가끔 시간이 나도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떠오르지 않았고 해야 할 일만 머릿 속에 가득 찼지요. 시간 투자 대비 성과를 늘 가늠했고 결과가 따르지 않는 일은 섣불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모처럼의 여유 시간을 가지게 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하던데로 생각하고 살던데로 행동하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 시간될 때, 목적있는 뭔가를 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끝없이 재고 따집니다.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할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쫓기는 마음으로 분주히 하루를 꽉 채웁니다. 목적없는 즐거움, 나를 미소짓게 하는 일을 떠올려 보다가도 실리적인지, 어떤 결과를 낼 건지 생각하다 보면 불안한 마음이 번집니다.

<한밤의 정원사>를 펼쳐들었을 때, 아무리 멋진 나무 조각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잎은 떨어지고 시들며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 것에 왜 공을 들였을까? 궁금했습니다.

여덟살 아이가 곧 무너뜨릴 블록으로 건물을 지어올리고 또 부수는 걸 보다가 문득 정원사의 마음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하고 싶어서 하면서 즐거워서 매일 밤, 밤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조각을 하러 다니지 않았을까 했어요.

자신만이 아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준 만족감과 더불어 잿빛의 마을이 점차 바뀌고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이 살아나는 것을 보며 그 또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듯 무척 기뻤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유투브 영상 하나를 보았는데, 좋아하는 그림을 업으로 하려다보니 마음껏 좋아할 수 없어서 그림을 즐겁게 그리기 위해서 그리는 자신을 얼마든지 부양하기로 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더군요.

한밤의 정원사가 낮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는 곧은 자세와 당당한 걸음으로 말끔하게 차려입고 밤이면 자신만의 놀이, 예술을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꿈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무 위에 펼치고 사라지죠.

멋진 나무 조각 덕분에 활기를 잃고 쓰러져 가던 마을이 생기를 되찾아가고, 윌리엄이 희망을 품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 이야기로 보상과 인정을 떠나 스스로 즐기며 할 수 일의 기쁨, 의미를 떠올려봅니다.

정원사가 하는 일은 문요한 작가의 <오티움>에서 말하는 것과도 통할 듯 합니다. 어떤 조건과 결과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거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작고 소소한 것, 그 과정 중에 있을 때가 많지요.

특별한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생각나고 하고 싶고 기분 좋아지는 일들, 일상을 기쁘게 만드는 나의 오티움이 한밤의 정원사가 그랬듯이 내 곁의 누군가에게도 기쁨과 의미를 주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봄, 지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를 찾아 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표현의 욕구를 더 이상 재단하기 보다는 한껏 즐겨 보고 싶습니다. 저만의 정원의 아름다운 나무 조각을 새겨 나가 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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