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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열흘도 더 지난 일을 이제야 기록한다는 게 되우 면구스럽습니다. 건강 문제도 있고, 최근 출간된 내 '촛불시집' 배포 작업도 있어서 내 행동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게다가 5년 전 비염 수술을 한 것이 잘못되어 한 쪽 점막이 손상된 탓에 지속적으로 코가래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도 내 발목을 잡는 실정입니다.
지난 13일 우리 가족에게 조촐하면서도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손자 다음에 얻은 손녀가 100일을 맞았는데, 100일 기념에다가 내 촛불시집 출간에 따른 '가족 출판기념회'를 곁들인 행사였습니다.
시간은 점심때였고, 장소는 대전 전민동 사돈댁이었습니다. 내 친손녀 100일 행사이니 내 집에서 행사를 갖는 것이 더 옳겠지만, 내 집은 복막투석 환자가 사는 집이라서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32평 아파트지만, 투석 기계에다가 투석액 상자들로 집이 비좁게 돼버려서 사돈댁 내외와 아들 부부와 두 아이, 그리고 우리 집 세 식구가 한 자리에서 행사를 갖기는 어려웠습니다.
나는 손녀에게 일정 금액과 함께 축시를 선물했습니다. 이제 100일 된 아이가 시가 뭔지 알 턱이 없지만, 무럭무럭 커서 장래 어른이 되면 할아버지가 지어서 선물한 축시를 꼭 읽어볼 터였습니다.
나는 아이의 오빠처럼 돌 때 축시를 지을 생각이었지만, 아들의 부탁을 뿌리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건강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벌불져서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 손녀 100일 대전 전민동의 아이 외가에서 손녀 100일 행사를 가졌다 ⓒ 지요하
그리고 손녀에게 오래 기념이 될 만한 것이 내게는 축시를 지어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손녀의 100일 하루 전에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를 품에 지니고 13일 대전에 갔습니다.
내가 만들어 가지고 간 현수막에는 손녀의 100일을 축하하는 문구와 함께 바로 아래에 '할아버지 촛불시집, 가족 출판기념회'라는 말을 적었습니다. 두 가지 행사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셈입니다.
나는 내 촛불시집 출간에 맞추듯이 손녀가 태어난 것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가 절로 고마워지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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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고속도로 덕분에 대전은 꽤나 가까운 동네가 됐습니다. 태안에서 출발한 후 1시간 40분 만에 대전시 전민동 사돈댁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먼저 기도부터 했습니다. 이미 고질병이 되어버린 내 코가래 분출이 오늘 행사 동안에는 제발 분출하지 않기를 하늘에 빌었습니다.
손녀의 100일 행사는 내가 가져간 지폐들을 백일상 위에 늘어놓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내가 축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됐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내 손녀 100일 축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손녀 지윤슬 스콜라스티카 100일 축시
우리 사이에 인연의 실타래가 이어졌구나!
윤슬아, 어디서 왔니
어디서 생겨났니
생명의 신비, 인연의 신비를 한 아름 안고
우리 가족 사이에서 태어난 너
태고 적부터 마련된 아비의 씨줄과
어미의 날줄을 타고
하느님 창조 의지를 가득 안고 세상에 온 너
너는 말 그대로 하느님 창조 신비의 열매이고
하느님 은총의 꽃다발이다
이제부터 네게서는
저 아득한 태고 적부터 마련된
하느님 성령의 축복이 꽃향기처럼 피어나고
은총의 열매들이 아롱다롱 달리리라
어언 칠십 고개를 넘긴 할아비가
장엄하고도 신비스런
인연의 타래를 안고
손녀의 100일을 기념하는 축시를 짓는구나
이 또한 하느님 은총이 아니겠니
오늘은 네가 할아비의 이 시를 읽지 못하지만
네가 자라나서 은총의 눈을 뜨면 명오도 열리고
세상 사물과 함께 할아비의 이 시를 읽고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고 또 자라날 손녀 지윤슬 최 스콜라스티카야
네 앞에는 하느님 성령께서 깔아주시는 비단길과
그 길을 시샘하는 비바람 길도 있을 터이니
그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 믿음의 길을 잘 밟아나간다면
그것 자체로 은총이 되고 축복이 되리니
네 100일을 맞은 오늘, 가족 모두 감사와 축복 기도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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