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숙'의 기로에 놓인 국민연금

<낙타와 국민연금 / 김상균 / 학지사>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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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훈(simpson123)등록 2021.05.10 16:03
국민연금과 낙타를 연관지을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 저자는 국민연금과 낙타를 연결시킨다.  국민연금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있다. 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불신을 저자는  '역설'이란 단어로 귀결시킨다. 저자는 신속한 산업화 이후 국민연금이란 제도가 대한민국 사회에 도입됐던 배경에서부터 보험‧경제‧정치·전문·언론 5가지 분야에서 발생하는 역설의 종류와 원인을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의 원인을 짚어낸다.
 
모든 것은 '앞으로 국민연금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현재 국민연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연금의 고갈'이란 개념으로 공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9%의 보험률과 43.5%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고 있고, 소득대체율은 매년 0.5%씩 감소해 2028년부터는 40%로 유지된다. 낸 돈의 2.6배를 돌려받는 구조인 현 제도는 급속한 고령화와 갈수록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2057년 고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대한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을 늦출 것인지에 맞춰진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적립금의 고갈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근본적으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로 이뤄져있는 공적 연금의 특성상 재정의 고갈 시점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갈되기 마련이고, 헌법 제 34조 2항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설령 재원이 고갈되더라도 정부차원의 대책을 통해 국민연금을 지속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미 재정이 고갈돼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 그 예이다.
 
 '지속가능성'을 단순 재정 고갈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지속가능성을 가입기간으로 비춰 본 노동 시장 불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국민연금 수급액은 소득대체율과 가입 기간의 결합으로 정해지는데, 소득대체율이 높더라도 불합리한 노동 조건으로 인해 노동 근속연수가 짧아 가입 기간이 짧아지면 수급액도 적어진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젊었을 때 노동시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국민연금에서도 사각지대에 남는다"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연합은 성공적인 연금개혁에 대한 기준을 사회적 배제방지, 생애 근로기간 연장, 노동유연화와 고용불안정성 심화에 대한 대응 등으로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연금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적당하게 수용함으로써 연금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엔, 단순히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는 게 아닌 노동시장의 개선, 연금제도의 사각지대 해소가 분명히 적용돼야 한다.
 
 <낙타와 국민연금>의 핵심은 역설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5가지 역설은 개별적이지 않고 상호 연관적이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국가는 국민 복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할 의무를 가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여러 분야의 학자, 전문가, 정치인들과 협력하고 의논해서 제도를 마련한다. 국민은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의 일방적인 수혜자가 된다. 국민은 국가와 전문가‧정치인 집단, 그리고 언론이 제시하는 정보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지표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정보 공급주체에게 요구되지만, 정치인과 전문가, 그리고 언론 개별 주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킨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역설은 서로 얽히고 확대되며, 고착화된다. 고착화된 역설은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연하게 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의 종식과 국민연금의 개선을 위해선 고착화된 역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설 타파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 역설의 행위자인 언론인, 경제관료, 정치인, 연금 전문가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요구된다.
 
첫째, 경제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객관적 지표와 이를 활용한 건강한 토론이 요구된다. 국민연금의 위기가 진행되고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치 논리가 배제된 토론, 정치적 이점이 고려되지 않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언론이다.  언론은 사실(fact)를 중시해야 하지만, 사실만큼 중시돼야 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맥락(context)이다.  고령화 시대에 국민연금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언론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고려한 사실을 언론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과 국가다. 국민연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 복지국가의 역량은 생존권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들로 하여금 법이 보장하는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 등에 대한 교육을 초등교육에서부터 고등교육, 일생동안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정보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보 격차를 줄이는데 신경써야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오랜 불신과 오해는 적절한 가르침으로 종식되고, 이로 말미암아 국민연금의 진정한 취지가 발현될 수 있다. 성장의 때에 어떤 것을 가르치고 어떤 것을 배우느냐에 따라 성숙의 농도는 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연금의 시작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은 편이었기에 따라갈 길이 멀다. 그러나 시작이 늦은 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활발하다.

더욱이 코로나-19와 겹쳐 다른 선진국에서 볼 수 없었던 복지차원에서의 성장을 기대해 볼 수도 있는 기회이다. 마침, 완성차 3대 업체 현대차‧기아차‧한국GM에서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년연장과 국민연금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또한 정년연장은 연공제와 직무급성과제 논쟁이 활발한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와 연관됨으로써 대한민국 노동 환경의 개선과도 연결된다. 국민연금과 노동, 그리고 국민의 행복한 삶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국민연금의 성숙, 나아가 노동환경과 대한민국의 성숙을 판가름할 시기에 어떤 것을 가르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가 중요한 문제로 눈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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