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행로

수구초심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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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광석(kshong25)등록 2021.06.02 09:37
내 마음의 행로
 
누군가에게 고원(故園)은 따뜻하고 멀면서도 가까운 소리로 남는 곳이라고 했으나, 오랫동안 내 고향은 짙은 서러움과 회한이 사무친 곳이었다.
귀향을 작정하고 아내를 설득하여 고원에 갔으나 장손이지만 작은 권리에 비해 당연하다는 듯 의무만 강조하는 집안 어른들과 다툴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차마 말할 수 없다.
결국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원에서 글을 쓰고 선영을 돌보면서 노후를 보내고자 했던 계획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 운명을 조롱하는 상속권에 기대지 말고 그냥 우리가 땅을 사고 집을 지었더라면 하는 미진한 후회도 없지 않았으나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서 있었다.

이제 고원의 목전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던 내 운명에 대한 노여움은 버렸으며 마음을 채워주는 노래를 찾지 못하고 토막잠에 시달리던 불면의 밤에서도 벗어났다.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은 날에 가슴 밑바닥을 휘젓던 향수병도 많이 치유했다.
하지만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이요 월조소남지(越巢南枝)라고 했던가!
아무리 전원에 집을 짓고 잔디밭이 너른 정원에서 살아도 증조부가 지었다는 툇마루가 높았던 초가, 모퉁이를 지키던 늙은 팽나무와 느릿한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조부모님이 보이는 꿈까지 막을 수 없었다.
밤낮없이 수런거리던 뒤뜰의 신우대 숲의 소리와 사랑채 옆의 외양간에서 들리던 소의 풍경소리에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60년 전, '마음의 행로'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보게 된 경위는 기억할 수 없으나 초등학생이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운 영화였는데 그럼에도 영화의 여러 장면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았다.
종전이라는 들뜬 분위기가 감시를 어수룩하게 했고, 전쟁의 상흔으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안개 속을 헤매던 장면은 안타까웠고, 한 여인을 만나 작은 교회에서 결혼하고 새 출발을 했던 장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주인공은 자신의 본래 기억을 되찾게 되는데 그 연인과 살았던 시냇가의 작은 집, 여닫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낮은 대문, 현관으로 가는 길에 이마에 걸리던 나뭇가지의 기억은 주인공의 잠재의식 속에 남는다.
주인공의 코트 주머니에 남은 열쇠를 보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하지만….
열쇠는 어딘가 존재하는 작은 집의 현관을 열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남자 주인공에게 소중한 행운의 선물이었다.
그런 남자의 주변에서 헌신하면서 열쇠의 비밀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여주인공.
마침내 그 열쇠로 잊힌 기억의 문은 열리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지금 보면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애정 영화인데 어린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행로'라는 제목에 반했던 것인지….
 
수년 전, 아내와 정원의 둘레길을 걷다가 머리에 걸리는 자두나무 가지를 들어 올리면서 마음의 행로를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그 영화를 모르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다시 그 영화를 찾아보았고 제1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을 배경으로 했던 미국 영화였음도 알았다.
그 이후 나는 정원에 '마음의 행로'를 뚫었다.
물론 영화의 내용과 내가 빌려온 '마음의 행로'와는 의미가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리워하고 또 찾으려 하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불로초와 불사약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완전 회복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덜 아팠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님들의 포행(布行) 자세를 따라서 느리게 걷는다.
그러면서 사계절 솔향 짙은 길, 작아도 선명하게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 잎이 햇빛에 반짝이고, 여름에 시작하여 쌀이 나올 때까지 피고 진다는 백일홍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원에서 나는 가장 먼저 열쇠 없는 고원의 집을 생각한다.
때때로 부끄러움과 가슴 저리는 회한으로 남는 일들이 크게 부풀어 가슴을 압박하면 참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염주 혹은 묵주를 돌리며 걷는다.
 
계절도 시간도 막지 못하는 내 '마음의 행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느릿한 움직임과 그 배경이 되는 고원을 그리며 발돋움하는 길목이요, 동심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보이는 흑백 영상 속의 고향을 향한 망향가, 앞서가신 분들의 영혼에 바치는 초혼가 혹은 진혼가를 부르는 길이다.
언젠가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학을 타고 구름처럼 조용히 사라져 갈 인생.
원망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가끔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적인 경구로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한다.
지형도 풍경도 바뀌었을 고향, 주인이 바뀐 고원의 늙은 팽나무는 그대로 있는지.
몸이 좀 더 좋아지는 어느 날,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싶다. 2021.6.1.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카페 대직방과 암싸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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