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월의 청춘'이 전하는 세계

평범한 이웃이 겪어낸 1980년 이야기

검토 완료

조주영(jjyboong)등록 2021.06.11 17:14
오월은 너무나도 찬란하다. 1980년 오월에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청춘들이 살았다.
어제 종영한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그날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삶의 행로가 달라져버린 시린 청춘들의 이야기다. 과거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로 5월을 만날 수 있었지만 안방 드라마로 만난 5월은 훨씬 가까이 느껴졌고 시민의 힘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내가 살았던 시대이지만 나는 거기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주에 없었다. 언론이 통제되고 통신이 두절되어 알 수 없었다는 변명이야 가능하지만 선택권 없이 운명처럼 거기에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의 개인사가 모여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광주의 역사는 어느새 40년을 넘어서고 휘발되어가는듯 했다.

그런 와중에 고민 끝에 머문 채널에서 그날 광주에 살았던 사진관집 아들, 시장 좌판에서 시계를 수리하는 촌부의 딸,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 딸, 광주 태생의 군인, 시민 편에 선 경찰관, 강제징집되어 대학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 신임사병, 소년체전 달리기 선수, 라디오PD가 꿈인 여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관 집 아들은 전남대 학생으로 학생운동 중 보안부대에 잡혀가서 고문 끝에 눈을 감는다. 집회 주동자의 이름을 불라는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친구 아버지인 보안부대 과장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희태 아버지, 저 희건이에요 살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몸짓이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좌판에서 시계수리를 하며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인 주인공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피난 중 북으로 갔고 형은 빨치산이 되어 집을 떠났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모진 고문 끝에 다리를 절게 되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게 된다. 그 딸은 간호사가 되어 자상과 총상으로 병원에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을 치료한다.

광주 진압작전에 투입된 광주 태생의 군인은 고향땅에 들어서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향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는 대신 한 명이라도 살리려고 애썼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신임에게 건빵을 건네며

"네가 총을 안 쏘면 내가 쏴야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전 전남대표 달리기 선수로 뽑혀 합숙훈련 중이었다.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광주시내로 나갔다 군인아저씨들이 광주 시민에게 행하는 폭력을 보고 북한군인줄 알았다. 한밤중 지도 한 장 들고 고향 나주로 떠났던 길에서 아버지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어버렸고 그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러 가던 길, 누나마저 세상을 떠난다.

음악다방에 앉아 팝송을 즐기고 잘생긴 DJ 오빠를 보며 라디오PD를 꿈꾸던 여고생은 방과후 학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학원으로 돌아오다 군인에게 두들겨맞는 학원장을 보고 된다.
"우리 원장님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했다가 달려드는 계엄군의 곤봉세례로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밤중 데모하다 다친 친구를 업고 의사고시를 치룬 친구에게 응급처치를 부탁했다. 꼭 살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서다 붙잡혀서는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다. 깊은 밤 출동 명령이 내려 트럭에 올라탄다. 전쟁이 난줄 알았는데 나침반은 계속 남쪽 방향을 가리킨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체 계엄군으로 살아야했던 '김경수'라는 인물은 삶의 지표를 잃고 거리를 배회한다.

위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수찬'은 부자 아버지를 만나 프랑스 유학 후 귀국하여 제약회사를 창업하고 승승장구할 꿈에 부풀었다. 품성이 따뜻한 수찬씨는 퇴근길 계엄군에게 맞고 있는 시민 편에 서서 항의하다 상무대로 끌려간다. 까까머리 중학생, 할아버지, 여학생에게도 내리꽂히는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한 후 말한다.

"사흘이여 내가 믿던 세상이 딱 3일만에 다 무너졌어......"

사흘만에 내가 믿던 세상이 무너졌다. 세계관이 바뀌었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거짓이었다. 현장에 발을 디디고 서서 감내하고 선택한 시민들이 만든 역사만 살아남아 꼿꼿이 서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영웅들의 역할이야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혈하고 주먹밥 만들고 붕대를 감아주던 손길이 오늘을 만들었다.

'오월의 청춘'이 더 먹먹한 이유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찬란한 5월처럼 터질듯 향기롭고 반짝거리는 청춘이 죽음을 불사하고 메시지를 전했다. 

" 너의 심지를 곧추세워 너의 세계를 확장하라" 

휘발되어가는듯 보이던 시민의 힘은 이후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헤쳐나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나는 별 거다. 나의 힘을 믿어봐.' 라고 말한다.

그 막강한 시민의 힘이 '오월의 청춘'이라는 창문을 넘어 덜컥 나의 세계로 들어서는듯 하다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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