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진실 어린 치유 회고록

[신작 도서 리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검토 완료

김형욱(singenv)등록 2021.06.09 13:16
 

책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표지. ⓒ 위즈덤하우스

 
지난 2015년 7월 5일 MBC 일요 프로그램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서프라이즈 시크릿'으로 '마지막 춤'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1945년 5월 미군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시체 더미 속에서 발견된 소녀의 이야기로, 발레리나를 꿈꾼 평범한 헝가리 유대인 소녀가 살아남기 위해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나치 친위대 장교 요제프 멩겔레 앞에서 춤을 췄다. 

비록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죽는 것보다 못한 삶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 에디트 에바 에거는 결국 다시 한 번 살아남았고 빅터 프랭클 박사를 접해 자신처럼 마음의 외상을 입은 이들을 치료해 주는 길을 택했다. 90세가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 임상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나라 나이로 90세가 되는 2017년에 생애 최초로 <The Choice>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출간하는데,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에서 임상 심리치료사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생하고 긴박감 있고 절실하게 보여 준다. 회고록으로도 읽히고, 소설처럼도 읽히며, 심리치료서로도 읽을 수 있다. 차마 읽기 버거운 생존 과정을 읽고 나면, 영영 마음속에 남을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살기 위해 원수 앞에서 춤을 춘 소녀

1928년 헝가리의 평범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에디트 에바 에거, 발레리나를 꿈꾼 그녀는 탁월한 실력을 갖췄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대표한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1939년 독일 나치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지만,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 몇 년 동안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던 에거가 16살이 되던 1944년, 가족 일가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큰언니 클라라는 다른 곳에 가 있었기에 끌려가지 않았고, 작은언니 마그다와 막내 에거는 첫 관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아빠와 엄마는 가스실의 연기로 사라져 버렸다. 이후 1년여 동안 마그다와 에거는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오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은 채 버텨 낸다. 부모를 살해한 원흉 멩겔레 앞에서 춤을 추면서까지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에거는, 그러나 마음 감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엄습하는 자살의 유혹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다. 그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 공부를 마쳐선 임상 심리치료사의 길을 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우슈비츠에 다시 방문해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유의 길을 계속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마음 감옥에서 탈출하기로 선택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부터 평생 동안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라는 엄마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산다. 어둠을 없앨 수는 없지만 빛을 밝히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며, 그녀의 유일한 책의 원제이기도 한 '선택'을 삶의 기조로 삼는다. 이 책은 4년이 지나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원제와 이어 보면 '나는 마음 감옥에서 탈출하기로 선택했습니다'가 되는데,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홀로코스트를 두고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다'라고 했다. 이후 정정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홀로코스트의 야만성이 인류의 인문학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제3의 심리치료학파로 유명한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창안자 빅터 프랭클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인데, 다름 아닌 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해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빅터 프랭클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따라 심리치료사의 길로 들어선 에거는, 그 어떤 고통에서도 다름 아닌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자유 의지가 한껏 발휘되는 한편, '선택'이라는 말로 좀 더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다가오게끔 했다. '할 수 있다'와 '선택할 수 있다'는 비슷한 듯 다른 뉘앙스가 아닌가. 

탈출과 자유와 치유로의 여정에서 그녀가 매순간 하는 선택이 그녀의 지금을 만들었다는 건 자명한 일이지만,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을 거라는 것도 자명하다. 탈출하는 과정에선 육체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고, 자유로의 과정에선 선택의 부담이 극심했을 것이며, 치유로의 과정에선 '살아남아 살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테다. 

생존, 자기 치료 그리고 타인 치료

이 책이 회고록으로 작용할 땐 에거 박사의 탈출과 자유와 치유로의 여정이 빛을 발할 테지만, 심리치유서로 작용할 땐 또 다른 부분들로 나뉘어 접할 수 있다. 생존, 자기 치료 그리고 타인 치료의 세 부분 말이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에서 살아남아 삶이라는 비극에서도 생존해 가는 이야기, 육체적인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향해 정신적인 치유를 위해 심리치료사가 되어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이야기, 마음 감옥에서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수많은 내담자를 상담하며 그들도 벗어나게 해 주고 자신도 벗어나게 되는 이야기. 

어떤 상처를 가진 채 어떤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이 책을 보는 관점과 시선과 깊이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심리치유서로서가 아닌 에디트 에바 에거의 회고록으로만 보려 했고 그렇게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인 즉슨, 타인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부분들조차 결국 에거 자신을 치유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내담자들 모두에게서 에거는 자기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녀 자신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반드시 자신만의 마음 감옥에 갇혀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평생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책이 제목을 통해서도 저자의 말을 통해서도 말하는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내가 마음 감옥에 갇혀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곤 탈출하기로 선택했다는 마음가짐을 뜻하는 거라고 본다. 

이 책이 던지는 단 하나의 문장이자 책의 마지막 한 문장을 전한다. 누구도 이 문장을 전해 듣고 탄성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마음 감옥'과 '자유' 그리고 '선택'까지. 

"당신은 마음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위즈덤하우스의 제공으로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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