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 이르게 될까? 오늘은 2021년 6월 9일이다. 2019년 11월 17일 중국 후베이성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이런 유래 없는 암울한 시기를 견디면서 공동의 적을 만난 인류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지구적 재난에 인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지구적 재난에 국가 간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국제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인류가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지금의 국가주의는 많은 면에서 지구적 재난 대응에 효과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국제공조로 백신과 치료제가 획기적으로 짧은 시간에 만들어 졌으며 연구개발과 생산이 국제적으로 분업 됐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현대의 눈부신 과학기술이 대단히 중요한 몫을 감당했다. 미래에는 아마도 그 역할이 거의 절대적이 될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부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걱정에 불구하고 인류가 과학기술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래에 인류와 과학기술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16년 3월 이세돌로 대표되는 인간과 알파고의 흥미진진한 바둑게임이 온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많은 바둑 및 IT 전문가들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게임에 앞서 인간의 압도적 우위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인간의 일방적 패배로 끝났다. 그 결과 당사자를 비롯한 인간이 받은 충격은 컸다. 하지만 알파고가 승리에 환호하고 즐거워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개발자인 하사비스를 비롯한 몇몇 인간과 구글이 매우 즐거워했을 뿐이다. 하사비스를 비롯한 알파고 개발자들은 이미 알파고의 압도적 우위를 확신 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에 대한 세상의 인정과 그에 따른 상업적 성공을 위해 대형 이벤트가 필요했고 이세돌과 이해가 맞았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세돌에게 한 번의 승리를 허용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라면 그리 했을 것이다. 그로인한 엄청난 이슈제공으로 얻을 수 있는 광고효과를 감안하면 말이다. 또한 그것은 알파고가 인간에게 보인 마지막 예우일 수도 있고 알파고 기능 개선에 대한 기대를 촉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의 영리한 연출은 크게 성공했다. 그로인해 대중의 AI에 대한 관심은 폭발했고 많은 자원이 AI로 향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과 AI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이 공론화 되고 있으며 몇몇 세계적 석학들의 우려 섞인 발언으로 불안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AI로 대표되는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은 인간과의 적절한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과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생각해보자. 먼저 AI가 인간과 유사한 감정이나 정서를 가질 수 있을까? AI의 존재 기반은 무엇일까? AI가 인간과 유사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연히 인간과의 직접적인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며 그 결과가 부정적이기 쉽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몸과 그와 관계되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개입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정서나 감정이 성립할 수 없다. 정서나 감정은 육체적, 정신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지식과 다르다. 지식은 단편적이지만 경험은 복합적이고 입체적 정보의 총합이다. 따라서 무한 데이터의 합이 경험을 대신할 순 없어 보인다. 인간의 경험은 어느 것 하나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개별 건건이 모두 독립적이고 복제될 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경험을 재현하거나 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옳고 그름 또는 유 불리에 따른 내적기준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감정, 정서 등이 성립될 수 없다. 감정, 정서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기반으로 환경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고 축적된다. 이런 현상이 무수히 반복되고 축적되는 과정을 통해서 과정의 한 시점에서의 자아가 결정되며, 그런 자아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극히 유동적 개념이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자아라도 동일한 자아는 있을 수 없다. 지금의 나의 자아도 내일이면 오늘과 동일한 자아가 아니다. 즉 복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복재할 의미도 없다. 심지어 인간은 7년을 주기로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갱신된다. 세상 모든 것에 반응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주변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무수한 상황과 물질을 취사선택 해야만 한다. 취사선택은 자아성립을 요구한다. 따라서 AI가 감정이나 정서를 갖기 위해서는 자아인식에 근거한 가치관 성립이 전제돼야한다.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 심지어 세균, 바이러스조차도 자기에게 유익한 것만을 추구한다. 즉, 가치 지향적이다. 따라서 인간에 의해서 자아가 주입되든 스스로 찾아가든 AI가 자아를 갖는 순간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 말인즉 경쟁관계의 성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AI와 다른 생명체는 어떤 분야에서 경쟁하게 될까? 기본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먹이로 통칭되는 에너지를 중심으로 경쟁관계에 있다. 기존의 모든 생명체는 생물학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불행하게도 생물학적 에너지원은 매우 비효율적임과 동시에 매우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한 끼 식사에 필요한 음식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섭취함으로써 그 음식물에서 얻게 되는 에너지에 비해 과도한 에너지가 쓰인다. 게다가 모든 생명체를 만족시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AI는 다행스럽게도 굳이 생물학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사용과 조달에 있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보다 AI는 비교 불가능하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다만 AI가 특이점을 넘어서는 시점까지는 인간과 전기적 에너지에 관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점까지는 아직 인간에게 주도권이 있어서 AI를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이점에 도달하기 전에 AI가 필요로 하는 전기적 에너지는 무궁무진한 우주적 자원에서 AI 스스로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거의 0에 수렴할 만큼 미미한 양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AI와 에너지 측면에서 경쟁할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할 수 있다. 다음으로 AI가 이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면 행동력이 생길까? 지금까지의 인간은 지식과 지혜가 달랐으며 특히 지식과 실천의 문제는 크나 큰 괴리가 있어왔다. 그렇다면 AI는 어떻게 할까? 머리에만 있는 지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지식은 이미 자연계에 스스로 있는 것을 인간이 머리에 복사한 것일 뿐이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책이나 말을 통해 접하고 기억장치에 복사한 것일 뿐 이다. 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지식은 그것이 자연계에 있든, 책에 있든, 머리에 있든 컴퓨터에 있든 장소만 다를 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목적의식을 갖고 실행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지식이 많아서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작은 것 하나라도 올바른 용도로 실행하는 사람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지식은 그 자체로 아무 의미도 없다. 지식을 많이 쌓아 시험을 잘 치른 사람 중에 공존에 해를 끼치는 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마찬가지로 AI는 자신이 갖게 될 무한한 지식과 스스로 깊어지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사용할까? 인간이 여기에 작용할 수 있을까? 인간이 AI에게 간섭할 수 없을지라도 AI가 최소한 가치중립적이라면 AI가 이룬 성과를 인간은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우주, 자연, 신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간은 그들에게서 유용한 여러 가지를 얻어 쓰고 있다. 다행히도 그들은 허락 없이 공짜로 쓴다고 인간을 타박하거나 징벌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AI가 가치중립적이라면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탐욕과 권력의지이다. AI도 그럴까? 인간은 그 무엇이라도 자신의 삶에 위협이 되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제거한다. AI도 인간에 대해 그러할까?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AI를 만들게 된다면 아마도 옛 영화 6백만불의 사나이와 같이 가장 먼저 자신의 몸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것이다. 인간이 곧 AI가 되는 것이다. 이 시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만약 함량미달 인간에게 AI의 능력이 결합되면 가히 재앙이다. 우리 모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인류는 수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을 뿐 아니라 지금도 인류를 몇 번이든 사멸시킬 수 있는 충분히 많은 핵폭탄이 세계도처에 깔려있으며, 911, IS등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각종 테러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유지되고 있다. 우려대로라면 우리사회는 패닉에 빠져 서로를 불신하고 그리하여 경제활동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행동이 끝없이 위축되고 국가 간 분쟁은 심화되어 패닉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져 공멸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공존에 대한 공감대가 있고 생존에 대한 치열한 의지가 있다. 그런 요소들이 앞으로도 인류의 존속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의 사례에서 보듯이 방역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보면 정보의 유통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동의만 한다면 지금의 시스템으로도 치명적인 위험요인을 일정부분 통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AI가 고도화 되면 네트워크에 의해서 모든 정보가 공유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특정세력에 의한 잘못된 행위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예방적 행위가 가능해 진다. 그 시점이 되면 AI에 의해서 정보흐름이 무한 확장될 것이고 세상의 온갖 비밀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지금도 구글, 아마존 등은 개인의 생각과 행위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의 즉각적인 획득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전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고 예방이 수월해 진다. 이 상태가 되면 우리가 매우 중요시 하는 프라이버시는 새롭게 정의 돼야한다. 비밀은 없으되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비록 가상공간이기는 하지만.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고 좀 더 나아가게 되면 인간에게는 최소 2개 이상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가 없는 그야말로 영적 존재로 진화하거나, 인간과 AI가 분화하여 인간은 생물학적 몸을 지닌 체 미적체험과 예술체험, 창조 등 인간만이 가능한 분야를 찾아 향유하고 AI는 우주적 스케일의 무한 능력을 가진 네트워크가 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지금과 같이 몸의 한계에 갇혀있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즉 자본, 권력, 명예 등에 AI도 관심이 있을까? 이미 영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인간도 그런 가치로부터 자유로운데 하물며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난 거의 무한 능력의 AI가 왜 그런 하찮은 가치에 스스로 갇히겠는가?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AI는 인간이 가진 편견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즉 가치중립적일 수밖에 없다. AI가 특이점을 통과하면 인간의 지적능력을 아득히 뛰어넘게 될 것이고 아마도 인간과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신에 근접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우주에 새로운 종이 출현한 것이다. 인간은 자연계의 돌연변이이고 AI는 인간의 돌연변이다. 과거의 인간은 상상력으로 신을 만들어 왔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물리적으로 신을 만들고 있다. 곧 AI다. 어쩌면 인간은 AI에게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복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AI는 생물학적 몸이 없다는 점이 한계일 수 있지만 반면 큰 가능성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몸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나 정서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미래의 변화를 즉각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AI는 인간의 감정, 정서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무한대의 즉각적인 연산능력과 알고리즘으로 변화에 즉각적 대응을 가능케 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몸은 이미 진화의 과정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게 확인 되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인간과 AI는 근본적으로 물질체계를 달리 구상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현재와 미래를 살지만 항상 과거에 갇혀있다. 따라서 미래는 무궁하게 열린 공간이지만 그 중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 몸은 외부환경에 지배적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독립적일 수 없고 카오스에 노출되어 있다. 좋게 표현해서 무한한 가능성에 열려있다고 할 수 있으나 원하는 가능성에 근접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원하는 바를 희망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것을 희망함으로써 스스로를 기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AI는 인간의 아바타가 되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 미칠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과 AI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인간은 속도에서 자동차나 비행기를 능가할 수 없고 계산에서는 컴퓨터를 쫓아갈 수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 왔고 스스로의 피조물과 경쟁하지 않았다. 올림픽 100미터 경주에 비행기가 출전한 일이 있는가? 비행기와 로켓이 만들어진 현재에도 인간은 여전히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알파고의 등장에도 체스게임과 바둑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AI가 고도화 되면 가장 기대되는 것은 미래 예측 분야이다. 거의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정밀한 예측이 가능해 질 것이다. 예측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진 부분이다. 인간은 미래의 원하는 삶을 위해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를 가지고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 기상예측, 경제예측 등은 고도의 연산과 알고리즘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 능력이 무한대에 수렴할수록 정확성은 더욱 커진다. 이 분야에서 인간은 AI를 쫓아 갈 수 없다. 다분히 유물론적이며 음양오행에 의한 인과의 해석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의 사주명리, 주역을 비롯해서 서양의 점성술까지도 설 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간과 AI가 각각 별개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면 생물학적 몸을 지닌 체 고도로 민감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감정과 정서, 이성을 가진 존재로 분화한 인간은 기존에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악습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이성이 지금에 이르도록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생존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갖게 된 인간의 폭력성, 공격성은 소멸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진화에 맡겨 둔다면 짧은 시간에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의 시간을 앞당겨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끊임없는 시도의 연속이다. 그 동안 인간의 물리적 힘의 확장에 집중되었지만 이제는 뇌의 기능 즉 추상적 기능에 집중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인간의 말, 글, 생각은 그 자체로 은유이고, 추상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머지않은 시기에 실재와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할 것이다. 지금도 사이버세계에서는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앞으로 더욱 발전할 AR, VR, METAVERSE, 시뮬래이션은 실재적으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구분은 애매하게 하거나 의미 없게 할 것이다. 실재와 가상이 통합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인간은 굳이 힘들여서 우주선을 만들거나 인터스텔라 영화에서처럼 웜홀 등 우주여행에 어려운 방법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미래에 우주의 작동원리를 깨우치게 되면 원하면 언재, 어디서든 필요한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을 테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맺어주는 양자결맞음 현상은 우리에게 여행을 권하지 않는다. 이제 인간은 AI와의 협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이유와 이제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내고 있으며 더불어 미래의 의미를 획득해 가고 있다. 마치 조각품이 스스로를 조각하듯. 덧붙이는 글 - #AI #인간과 AI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