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사람들에게 감사해요"

6년 전 필리핀에서 합덕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여성
꿈이자 행복이었던 식당, 하루아침에 화재로 소실
“비 온 뒤 땅 굳는 법…주위에서 십시일반 도와줘”

검토 완료

박경미(pkm9407)등록 2021.08.10 07:59
 

화재를 입기 전 2018년 당시 가게 내부 모습과 카테린 마르고스 씨 ⓒ 박경미

 
필리핀에서 온 카테린 마르고스(28·합덕읍 운산리) 씨가 3년 동안 운영했던 식당이 화마에 잿더미로 변했다. 인생의 꿈이자 행복이었던 식당을 화재로 잃고 망연자실한 카테린 씨는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절망했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 희망이 피어났다. 카테린 씨의 사정을 접한 주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말하는 카테린 씨는 주민들의 손길에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지키지 못한 약속

필리핀의 팡가시난은 합덕처럼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자란 카테린 씨는 전문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했다.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그의 어릴 적 꿈 또한 식당에서 요리하는 것이었다. 직접 요리한 것을 조부모님께 대접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카테린 씨가 19살 때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국제결혼으로 6년 전 합덕에 온 그는 농사를 지었다. 농사가 처음인 데다 땡볕 아래서 밭일을 하고 무거운 박스를 옮기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결국 고된 농사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8년에 오랜 꿈이었던 자신만의 식당을 마련했다. 합덕읍 운산리에 필리핀 음식점을 문 열고 꼬치를 비롯한 다양한 필리핀 음식을 판매했다. 오전 7시에 문 열어 새벽 3시까지 혼자서 식당일을 도맡았다. 쉬는 날 없이 주말에도 가게 문을 열었고 가게 한쪽에는 필리핀 식료품을 진열해 팔기도 했다.

카테린 씨는 "평소 요리하기를 좋아했고, 꿈이었기에 쉬지 않고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진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카테린 씨가 운영하는 꼬치 가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카테린 씨 제공) ⓒ 박경미

   10초 만에 불길 솟아

카테린 씨는 필리핀의 맛을 내고자 꼬치를 숯불에 구워 판매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출국이 어려워지면서 필리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거나 가이드로 일했던 이들은 필리핀 음식이 그리울 때면 이곳을 찾곤 했다.

6월 26일 낮 12시쯤, 이날도 마찬가지로 카테린 씨는 꼬치를 불에 굽고 있었다. 더운 열기에 잠시 목을 축이려 자리를 벗어난 사이 일이 벌어졌다. 천장의 배기후드가 불꽃을 빨아들이면서 한순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탁자, 의자, 칸막이 등 가게 내부에 불이 번졌다.

놀란 카테린 씨는 다급하게 출입구로 탈출했고, 주변에 119 신고를 요청했다. 너무 놀라 맨발로 탈출한 카테린 씨는 "10초~15초도 안 되는 사이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

가게 내부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불길은 건물 바깥까지 번졌고 화재로 인해 전선에 스파크가 일었다. 소방관들이 도착하기까지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카테린 씨가 3년 동안 애써 쌓아올린 인생이 모두 불탔다. 
 

화재로 가게가 불에 탔다. ⓒ 박경미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전소된 가게 내부를 본 카테린 씨는 망연자실했다. 그나마 카테린 씨의 5살 난 자녀가 때마침 가게에 있지 않아 변을 피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불에 탄 가게를 보고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가게 한편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기에 당장 잘 곳을 찾아야 했다. 3년간 화재보험을 들었지만 올해 만기 후 연장이 안 됐던 터라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가게 수리비 견적은 2600만 원이 나왔다. 

낙담한 마음이 컸던 카테린 씨는 이대로 가게를 접고 필리핀으로 떠날까 생각했다. 간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코로나19로 필리핀에 갈 수 없어 슬픈 마음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식당 화재는 그야말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가게 생각에 잠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카테린 씨는 '이렇게 그냥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단다.
 

화재로 불에 탄 가게는 (사)한국산업재해장애인 충청남도협의회의 도움으로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합덕읍과 지역주민, 기업체, 기관 등에서 도움을 전했다. ⓒ 박경미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 건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소식을 전해들은 대한적십자사 당진희망나눔봉사센터에서 구원물품 지원을 연계했다. 천안 모이세성당에서도 300만 원을 지원했다. 불에 탄 가재도구 등을 치우는 것은 카테린 씨의 필리핀, 네팔 친구들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또한 (사)한국산업재해장애인 충청남도협의회 이태일 수석부회장과 이재학 회장이 카테린 씨의 사정을 접하고 집수리 봉사를 지원했다. 이태일 수석부회장은 "다시 식당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전기시설, 주방시설을 모두 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진 당진시의원과 합덕읍, 당진시청 사례관리팀,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당진시복지재단 등에서도 지원하기로 했다. 합덕읍에서는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고 합덕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는 이불 등의 생필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긴급물품과 자녀의 생활학습을 돋는 방문생활지도사 등을 지원하며, 당진시복지재단에서는 현금으로 긴급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지속가능 상생재단에서도 서비스를 연계할 계획이다.

"이렇게 주변에서 도와주니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나쁜 일이 지나면 좋은 일이 온다고 한 것처럼 앞으로는 좋은 일이 생기겠죠? 여러분의 도움으로 다시 식당 문을 열고 저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역 주간지 <당진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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