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등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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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정(zzun78)등록 2021.08.10 09:16
전라도 사투리 중에 "꺽정시럽다"라는 말이 있다. 귀찮다+엄두가 나지 않는다+걱정된다의 복합적인 뜻을 가진 가성비 높은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즘 같은 날씨에 산을 가려면, 이 단어부터 머리에 떠오른다. 꺽정시럽게 도시락은 뭘 챙기며 더운 공기 속을 헤치고 산을 오르고 땀으로 샤워할 생각을 하면 나와 산을 가는 사서고생팀한테 이번 주는 핑계를 대고 못 간다고 할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행복이 순간에 느끼는 찰나 같은 감정이라고 한다면, 등산을 할 때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지리산 아빠가 살얼음 동동 뜬 꿀물을 줬을 때 행복했고, 선각산 정상에 올라서 얼음물을 마실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더운 건 맞는데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은 건 맞는데 그 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 구름, 산마루에 감탄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낭 하나를 메고 산을 헤매다 보면 언제든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훌쩍 떠날 수 있다고 나한테 가르쳐주는 것 같다.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주는 진안 선각산 환종주를 했다. 덕태 산장으로 올라서 덕태산-삿갓봉-선각산-투구봉-점전폭포로 내려갔다. 선각산 데크에서 H삼촌(사서고생 멤버)이 난데없이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거라 못 알아보고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다가 "어디서 왔어요?"라는 말에 "익산에서 왔다"는 말이 돌아오자, 익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삼촌이 사람들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된 것.     

"어, 너 ㅇㅇ아니냐?"
"H야!"
아, 오랜만이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냐, 00는 연락하고 지내냐, 하는 말들이 오갔고, 막걸리라도 한잔 하자며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 
"H가 시장되었으면 이렇게라도 못 볼 뻔했어."   
  
삼촌은 학생운동을 했고 나중에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시장 선거에 나간 적이 있다(나도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 대학 졸업장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취직이 되던 시절,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전과 때문에 취직을 하지 못한 삼촌은 건설노동을 시작했다. 현장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시위에 참가했다.     

60세인 지금도 일을 하고 일요일에 산을 그것도 빡센 코스만 골라서 가자고 하는 삼촌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오늘도 6개 봉을 오르내렸고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에 탐방로가 정비가 되지 않아서 네 발로 엉금엉금 내려갔다. "이런 길을 가고 싶을까"하는 원망+투정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삼촌은 이런 길을 혼자서 20년을 다녔다. 그래서 전라도와 충정도권 산의 환종주 코스(네발로 가는 코스)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 길이 없어져서 알바하기 딱 좋은, 그래서 아무도 안 가는, 한번 갔다 하면 치를 떨고 다시는 안 가는 그런 코스만 수집했다. 요즘은 그걸 우리한테 공유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오를 수 있는 산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산처럼, 인생도 내려갈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까. 배낭 하나 메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는 등산처럼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알게 되었을까. 
 
"삼촌이 읽으면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희남이 삼촌한테 책 <영초 언니>를 선물했다. 책에는 서명숙 작가가 학생운동을 하다가 236일간 교도소에 수감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문과 본문을 조금 넘어섰을 뿐인데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쩌면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이런 책을 소개한 친구가 산행 동료라서 너무 고맙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선물이 희남이 삼촌한테 작은 위로가 되었다면 다행이었다. 우리의 유산인 시대의 아픔을 삼촌을 통해 내가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삼촌은 두 번의 수감생활 동안 0.75평 독방에서 구금을 당했다.
   
"독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인이 보내준 요가책으로 요가를 마스터해부렀어."
그 얘기를 삼촌이 지나가면서 할 때 나는 "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밖에 하지 못했다.
      
친구들 누구는 대기업 임원이 되고, 누구는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삼촌은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서 먹고 5시에 건설현장에 출근하는 일을 삼십 년을 해왔다. 현장은 요즘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다. 새벽부터 더운 기운이 느껴지는 날, 나는 삼촌에게 카톡을 보냈다.
     
"더위 조심하세요. 저도 오늘 하루 치열하게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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