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둘레길 산책은 용산 미군기지가 용산공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만들어가고자 그 주변 지역에 펼쳐진 삶의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역사, 문화를 이야기하며 공유하고자 총 8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시대 때 효창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실의 묘역으로,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와 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그리고 순조의 딸인 영온옹주와 그의 어머니인 숙의 박씨 등 왕실 가족들의 묘역이 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곳을 골프장과 유원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 가족의 묘를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전하였다.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분들을 모신 묘역으로 조성 하였다.
ⓒ 고보경
▲ 이봉창 의사 동상 이봉창 의사는 용산에서 태어났다. 효창공원역 부근에 이봉창 의사의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1928년 히로히토 일왕의 즉위식을 구경하러 갔다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구금되는 일을 겪은 후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먹고,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 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어 1932년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하였다. ⓒ 고보경
▲ 이봉창 의사 선서문 이봉창 의사가 거사에 앞서 ‘나는 뜨거운 충성심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룰 회복하기 위해 한인 애국단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한다’ 쓴 친필 선서문이다. ⓒ 고보경
▲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김구 선생은 동학운동에 참여하다가 항일 운동에 뛰어들어 임시정부의 주축으로서 활동하고, 1931년에는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독립운동에 기여를 한 분이다. ⓒ 고보경
▲ 삼의사 묘역 이봉창 의사를 포함한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역과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세워져 있는 삼의사 묘역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묘가 있다. 이분들은 이름 뒤에 ‘의사’가 붙는다. 이것이 왜 붙는 것일까? 의사는 무력으로 항거하시고 돌아가신 분을 의미하며, 열사는 맨몸으로 저항하다 돌아가신 분/자결하신 분, 지사는 독립을 위해 책을 쓰시거나 사상을 펼치신 분들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돌아가신 분을 의미하며 살아계신 분도 지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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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물과 무궁화 조형물은 각각의 독립운동가 분들과 관련된 것을 표현한 것이다. 각각의 조형물에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 고보경
▲ 숙명여자대학교 숙명여대가 언제 세워진 학교인지 아시나요? 숙대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는 1906년 구한말에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가 여성 인재 양성에 뜻을 두고 설립 자금을 지원하여 세워진 학교다. 을사늑약 이후 애국 계몽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세워진 민족 학교로 학생들이 직접 만세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여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운동과 관련되었던 학생들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 고보경
▲ 식민지역사박물관 반민특위 터 표석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현대에도 이어지는 의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고보경
▲ 옛 삼판소학교 옛 삼판소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용산기지 주변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용산지역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것에는 용산기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일대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주거하게 되면서, 일본식 적산가옥(적산가옥은 자기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소유의 집)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광초 앞에서도 집의 형태를 통해 과거 이곳에 일본식 가옥들이 가득했을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 삼판소학교는 그 당시 좋은 시설이 있는 초등학교였다고 한다. ⓒ 고보경
▲ 옛 조선은행 사택지 과거 일제강점기 때 조선은행의 사택지가 있던 곳으로 조선은행의 본점인 경성 본점(현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멀지 않으면서, 서울역, 당시에는 경성역과 가까워 다니기 좋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다시 한국 소유로 넘어오면서 한국은행 소유의 직원 공동숙소가 된 것이다. 원래 크기는, 이곳도 크긴 하지만 이곳보다 훨씬 넓은 부지였다고 한다. ⓒ 고보경
▲ 김상옥 의사 항거 터 혹시 영화 밀정을 보셨나요? 밀정 앞부분에서 일본인 순사들을 피해 지붕을 뛰어다니며 총을 쏘는 ‘김장옥’ 의사가 나온다. 어떤 의사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어낸 인물일까? 바로 김상옥 의사이다. 의열단원으로서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이다. 1923년 1월 12일 저녁에 독립운동가를 악랄하게 탄압했던 종로경찰서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의거 이후 김상옥 의사가 몸을 숨긴 곳이 매부였던 고봉근의 집이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 후암동이다. 김상옥 의사는 이곳이 일본 경찰에게 포위되었을 때 그곳을 총격을 가하여 일본 경찰 한 명을 즉사시키고 집을 빠져나와 당시 눈이 많이 쌓인 남산을 헤치고 왕십리를 거쳐 동지 이혜수의 집인 효제동 집에 가서 몸을 숨겼다고 한다. ⓒ 고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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