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4. 화개를 떠나며, 진주를 거쳐 구미

구미 인동파출소 아무개 경위님의 안식을 기도합니다

검토 완료

이환희(prospective)등록 2021.08.25 14:24
불일폭포 관리사무소 부장님이 말씀하신 맛집에 가기로 했다. 쌍계사 앞엔 수많은 밥집들이 즐비했다. 어디를 선택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보통은 로컬(현지인)이 추천해주는 곳을 택하면 편하다. 이런 풍토가 퍼지다 보니 몇몇 지역 업자들은 부러 택시 기사나 관광 명소 직원들에게 조금씩 뽀찌를 주거나 몇 테이블을 유치하면 수수료를 주는 식으로 영업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코가 큰 사장님의 외형을 딴 집은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지난(14시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시간이기도 했고, 코로나19 파 상황의 확산으로 행락객들이 줄어들기도 했다. 물론 섬진강 계곡을 점령한 가족 단위 관광객들과 평상을 설치한 뒤 한 자리에 얼마씩 파는 행태가 여전하기도 했다. 아이의 추억과 가족들의 소중한 한때라는 이유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글쎄. 문득 한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계곡을 불법으로 점령한 상인들의 평상을 굴삭기로 모다 쳐버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튼 하동 섬진강 자락에 왔으니 재첩국은 먹어야 할 듯했다. 12,000원에 이르는 재첩국 정식을 한 상 받았다. 목이 타고 허기져(이날 첫 끼였다) 막걸리부터 찾았다. 막걸리보다는 동동주가 그 집에서 더 팔린단다. 반 되에 3,000원이라 막걸리나 거기서 거기였다. 더덕무침, 멸치볶음, 열무김치 등 간단한 찬을 안주 삼아 동동주를 들이켠다. 쌀알이 동동 떠다녔다. 그래서 동동주라 부르나.

  이어 받은 재첩국의 뽀얀 국물을 한 술 떠먹는다. 진하고 깊으며 더운 기운이 지친 속을 타고 내려간다. 재첩국은 조금 들이더라도 먹을 만하다. 한 상 걸게 차려진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찬 숫자가 15개는 되는 듯했다. 내가 고작 산문 한 번 들어갔고 산 좀 타고 내려왔다고 이 귀한 한 상을 받아도 되는지 자문할 정도였다. 곰취를 닮은 나물, 쓰지 않았던 도라지, 고춧가루 대신 청양고추와 찹쌀풀을 넣어 만든 열무김치, 상큼했던 미역냉국 등이 떠오른다. 부장님한테 소개 받아 왔다는 말 때문인지 원래 그렇게 잘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원고 몇 개 써서 보내야 할 게 있었다. 묵은 빨래도 해야 했다. 한 25분 정도 에어컨 바람에 누워있다 몸을 씻고 빨래를 했다. 인근에 코인 세탁소가 없어 손 빨래를 해야 했다. 요행히 욕조가 마련된 숙소였기에 수월하게 빨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욕조에 빨랫감을 담가두고 욕실에 비치된 바디워시를 뿌려준다. 이렇게 하면 따로 린스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는 엄청 밟아주면 된다. 짤순이 정도가 있는 숙소라면 탈수가 한결 수월하겠지만 없었기에 손으로 하나하나 짜, 마침 비상계단에 있던 건조대에 널었다.

  그리고 원고. 일 얘기를 여기까지 끌고 오기는 그렇고. 몇 백리 밖 서울과 지역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머리와 온 몸이 지끈지끈했다.
  
어제 영업 종료까지 먹고 마셨던 터미널 앞 오리 날개 튀김집에 다시 갔다. 원고를 쓰려고 카페나 찻집을 가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랩탑을 켜고 500을 시킨뒤 오리 날개 튀김까지 곁들여 먹으며 여행기를 적는다. 요즘 일에 이 기록까지 하루에 30~35매는 쓰는 듯하다. 흰머리가 늘었다.

  마지막 날의 감상에 젖어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은 거리와 일터에서 많은 경험과 내가 책으로 얻지 못할 지식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그가 내게 "글 쓰는 일, 어렵고 힘든 일 하시네요."라고 하자 나는 질겁하며 아니라고, 몸으로 현장에서 이 더운 날이나 탁 막힌 업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더욱 고생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거라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나도 적잖은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더 수월하고 상대적으로 편한 환경에 놓였는지 안다.

  사장님과 작별을 나누고 숙소로 돌아간다. 화개에서의 마지막 밤, 섬진강변에 나가 물 흐르는 곳과 시커먼 산줄기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이튿날 역시 눈이 떠졌다. 8시쯤 일어났나. 그래도 화개에 왔으면 장터는 한 번 보고 가야겠다고 여겼다. 전에 검색을 한 번 해보니, 상업적으로 너무 개발돼 예전의 정취가 나질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5일 장이 아니라 상설화 되어 있는데 초입부터, 그 이른 아침부터 갖은 조명이 켜져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화려하다는 인상. 해정이나 하려 국밥집에 들어가 돼지 머리 국밥을 먹었다. 진한 국물에 괜찮은 맛이었다. 그렇게 화개에서의 마지막 끼니를 해결했다.
 
본래는 이 글을 쓰는 전남 강진에 가기로 했는데, 방향을 위로 돌려 경북 구미에 가기로 했다. 아는 선배가 그곳에서 부모님 일을 도와주는데 온 김에 얼굴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구미역까지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화개터미널에서 하동역 가는 버스를 탄 뒤 진주역에 내리면 2시간쯤 뒤 구미로 가는 무궁화호가 마련돼 있었다.
 
진주역 신역사 앞은 별천지 같았다. 층층이 솟은 주상복합이 늘어서 있었고 역전 광장이 보기 좋게 펼쳐졌으며 길도 잘 닦여있다. 캐리어를 밀고 인근 카페에 갔다. 캐리어 바퀴 고무패킹이 닳아 가방을 세게 밀수록 고급 스포츠카의 배기음이 났다. 주변 사람에게 민폐인 듯해 주로 들고 다녔다. 쓴지 15년이 넘는 녀석이라 캐리어 자체 무게도 상당했다.
 
카페에서 2시간 기사 쓰고 잠깐 책을 보다 차 시간 맞춰서 다시 역사로 갔다. 호남, 영남을 오가며 다니니 고단함이 쌓였다. 무궁화 안에서 눈을 잠깐 붙이고 일어나보니 구미역에 도착. 대구에 인접한 이 고장 더위가 이맘때 오니 제대로였다. 폐활량 좋은 한 300여 명의 장정이 나한테 달라붙어 한 번에 입김을 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차가 있었기에 쾌적하게 선배의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부모님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오래 못 만나 묵은 이야기를 나눈다. 선배는 화가 많이 올라있었다. 숨 막힐 듯한 더위와 더불어, 정치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선배 뿐 아니라, 경남 서부 쪽을 넘나들면서 마주한 사람들은 최악의 불경기와 마침 닥친 코로나19 4단계 거리두기에 낭패감과 무력함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가 사주는 고오급 고기를 먹으며 쌓여가는 술병과 이야기, 기억들이 밤과 함께 건너가는 중이었다.
 
모자란 이야기를 선배 자취방에 가 이어 했다. 말이 나오던 중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가 사는 지방을 '인동'이라고 부르는데 장희빈을 비롯해 조선시대 왕비, 숙의, 온갖 비와 정경부인까지 배출한 성씨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이건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인동에 있는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경위 계급의 경찰관이 1차 AZ백신 2차 코로나 백신을 교차 접종하고 며칠 만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뒀다는 그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까. 생때같은 자식들과 혼자 그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아내까지...의무접종대상자로 역학 조사 진행 중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그간 달라붙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정부의 판정 추세와 방어적 태도로 보아 인과성 인정은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의 순직을 두고 야권 대선 주자 하나가 정부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사태는 지켜봐야 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일로를 걷는 중인 이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상(死傷) 사고는 어떻게 전개될지. 인동파출소 경위님과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https://blog.naver.com/leehhwanhee)에도 실린 글입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가운데 인동파출소 경위님 경찰장 자료가 있다면 게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곳 돌며 사진을 못 찍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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