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책, 그리고 북카페

인도사람들의 독서

검토 완료

정은경(hidorcas)등록 2021.08.27 14:49
우리는 나라에서 나라로 이사를 여러 번 했다. 배로 또는 비행기로 살림실이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중노동을 할 때마다 많은 책들을 포기하지 못했다. 

사실 영국으로 갈 때는 남편의 책을 정리하며 리어카에 3번을 실어서 헌책방에 갖다 주었고, 인도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도 주인도 한국문화원 도서관과 한인교회에 책을 기증하고 꼭 필요한 책들만 박스에 담아 놓고 왔다.  하지만 여전히 책이 많다.

한국에 와서 이제 1년이 좀 지났는데도 벌써 집 안에 책이 가득해서 꽂아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책들마저 생겨났다.

우리는 왜 그렇게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을까?인도에서 잠시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오면 그 무거운 책을 꼭 몇 권이라도 사서 가져가곤 했다.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최대 무게가 20 kg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때로는 짐을 다 부치고 나서 인천공항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이라도 꼭 골라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챙겨가던 책들 ⓒ 정은경

 
인도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냉장고가 크다는 것과 책이 많아 집이 도서관 같다는 거였다.
처음 인도에 갈 때, 나는 인도에 북카페를 만들겠다는 계획과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영국에서부터 가져온 영어 소설책들을 인도로 가져갔다.

"북카페를 인도에서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인도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할 거예요."
"글쎄요, 인도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요."
"그러니까 읽게 만들어야죠."

나의 이런 계획을 듣고 선배 선생님께서 회의적으로 말씀하실 때만 해도 나는 의욕이 넘쳐서 자신만만했다.  의욕이 앞섰던 것이다.

모든 인도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인도에 살면서 그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인도에는 언어가 3000 개가 넘는다. 보통 내가 만나는 인도 사람들은 언어를 두세 개는 기본으로 했다. 영어와 힌디어 그리고 고향 언어에 친구네 언어뿐만 아니라 친할머니네 언어와 외할머니 언어, 아버지 고향 언어와 엄마 고향 언어 따로 하며 셀 수 없는 언어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델리 붉은성, 레드 포트(Red Fort) ⓒ 정은경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언어를 깊이 하는 게 아무래도 어려운 거 같아 보였다.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힌디어를 사용하지만 한 디어 책을 잘 읽지 못하며, 영어를 말하지만 영어책을 읽기는 쉽지 않은 것을 종종 보았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다 보니 아무래도 한 가지 언어로 깊이 있는 책을 읽기가 힘든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인도 친구들이 우리 집 서재에 꽂혀있는 많은 책들을 보면 마치 도서관에 온 듯한 느낌을 갖곤 했다. 사실 나도 여러 인도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보아도 우리 집 서재에 꽂힌 책만큼의 도서를 인도 집에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외국어에 자신이 없어서 한국어 하나만 잘하는  우리가 책을 읽기에는 유리한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유난히 책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우리는) 지적 욕구도 강하고, 책에 대한 욕심이 신경안정제를 안고 사는 것과 같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결국 그렇게 나는 인도에서 북카페를 끝내 하지 못하고 작년에 귀국했다. 아무래도 한동안 다시 인도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이곳에서 북카페를 열어보려고 한다.

인도에서 하지 못했던 숙제를 여기서나마 할 수 있게 된다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책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마음의 빚과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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