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마주하는 슬픈 공항

눈물의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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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hidorcas)등록 2021.08.29 17:36
공항은 설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내겐 슬픈 이별의 공간이다. 단순한 여행을 떠나는 길은 언제나 즐거운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저 공항으로 가는 그 길 자체로 사랑스럽고 하늘을 날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나는 것처럼 미리부터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 살다 보면 공항은 눈물을 쏟아내는 곳으로 변하고 만다. 영국에서 2년 정도 지내다가 여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다시 영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양가 부모님께서 공항에 배웅을 나오셔서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식사까지 다 하고는 출국장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거웠던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심히 가~"

엄마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셨을 때부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공항 직원들이 쳐다보았지만 나는 더 시간을 끌었다. 남편이 엉엉 소리가 날 정도로 울고 있는 내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줬지만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2000년대 초반의 그때는 인터넷 전화나 SNS도 없었으며, Skype나 메신저로 시간을 정해 겨우 화상 통화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부모님과의 이별은 내게 큰 슬픔이었다.

그 후로 영국이나 인도에 살 때, 가족들과 지인들이 꽤 다녀갔다. 그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공항에 마중을 나가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꿈같은 순간이지만,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다시 찾는 공항에서는 이별의 슬픔을 준비해야만 했다. 다시 떠나보내며 눈물을 머금었던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그 허전한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참 어려웠다.

부모님께서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무신 적이 있었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부모님을 배웅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는 다시 버밍엄 우리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남편에게 열쇠를 맡기고는 나는 차마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통곡을 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나를 당황해하며 안타깝게 바라보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년 동안 살던 버밍엄 우리 집 ⓒ 정은경

 
영국에 있는 동안 아가씨와 조카들이 7주 동안 머물다가 공항에서 떠날 때도 난 울었고, 여동생과 조카들이 비행기를 탈 때도 아시아나 비행기가 하늘에 떠서 날아가기까지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울었다.

방학을 이용해 중학교 교사인 민*이가 인도 우리 집으로 여행을 왔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민*이를 배웅하러 델리 국제공항에 나가서 탑승객만 공항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도의 시스템으로 나는 공항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유리로 된 공항 내부는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탑승 수속을 마친 후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날 향해 와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민*이와 멀리 얼굴만 바라보며 전화 통화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목이 메어오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 잘 챙기고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더 마음이 아프고,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시간을 또 눈물로 보냈다. 

 

인도 여행 중 ⓒ 정은경

 
그리고 8년 반 동안의 인도 생활을 잠시 멈추고 귀국하던 날에도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먼저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나중에 나와 샤이니가 델리 공항에서 작별을 하던 날, 날 위해 공항으로 나와 준 소중한 인도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던 인도 학생 아디띠가 그날 공항에서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내준 것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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