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커서 슬픈 짐승이여

사람에 관한 상상력을 키워보아요

검토 완료

손지유(livenletlive)등록 2021.09.16 10:21
    예전에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거대한 몸집의 길냥이를 보고 뭘 저렇게 많이 처먹었길래 살이 찔 대로 쪘느냐고 하는 걸 들은 적 있다. 물론 그 고양이가 능력이 좋아 이집 저집 드나들며 좋은 거 많이 얻어먹어 풍채가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길냥이들은 사람들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으며 연명하느라 염분이 높은 음식을 먹어 몸이 퉁퉁 부어 뚱뚱해 보이는 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은 늘 그렇듯 속으로 삼켰다.

    눈에 쉽게 보이는 일차원적인 정보로 누군가를 금방 판단하고 그런 게으른 사고방식이 빚어낸 막말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사람 자주 본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해도 너무 많이. 나 역시 누군가가 나를 지그시 바라봐도 '내가 얼굴이 그렇게 큰가?'라며 지레 겁을 먹거나, 누군가의 대화에 '큰 바위 얼굴'로 등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야 oo 얼굴 완전 조막만 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 오히려 그 말이 '야, 걔(나) 얼굴 진짜 크지 않냐'로 메아리쳐 돌아온다. 그렇다, 이 크고 삐뚤어진 얼굴은 아직도 나를 우울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얼마 전엔 춤 배운다고 댄스 스튜디오를 들락날락했는데 전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우와, 이 비율은 정말 미학적으로 옳지 않아!'

'어머, 어머, 오 등신도 안 되겠어'

'동작을 아무리 잘해도 균형이 안 맞으니까 꼴 보기 싫다'

'아니, 얼굴이 어쩜 저렇게 커'라는 생각들로 머리가 분주한 적이 많다.

거기다가 선생님은 자꾸 비디오를 찍어서 동작을 체크하라는데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긴 하지만 균형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전신이 촬영된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던지…... 초보 운전, 어린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표시처럼 나도 등짝에 이렇게 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의 변: 예전에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말단 비대증이라는 병을 오래 앓았고 그 결과 지금처럼 큰 얼굴과 골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술로 종양은 사라져 완치는 되었지만 바뀐 외모는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았네요. 목소리가 조금 걸걸한 것도 손가락이 굵고 발이 크고 얼굴이 우락부락한 것도 다 이 병을 앓아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하거나 놀리지 마세요."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바뀐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해 평가를 받아도 예전보다는 빠르게 회복하는 편인데 그래도 이 크고 삐뚤어진 얼굴만큼은 안기가 힘들다. 여전히 오묘한 굴욕감이나 쪽팔림에 땀이 삐질 나는 상황도 많은데. 예를 들어, 미용실에서 머리 감고 수건을 매주는데 수건이 간당간당 묶이거나, 매장에서 모자를 써 보려는데 잘 안 들어갈 때, 분명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인데 내가 쓰면 오버사이즈가 아니 거나, 친구랑 얼굴 팩하는데 내 얼굴 팩은 많이 모자라거나, 누군가와 앉아 있는데 상대를 향해 너 얼굴 진짜 작다는 말이 오가거나, 페디큐어 받는데 내 엄지발톱이 한 번에 안 잘릴 때! 오 마이 갓! 그 쪽팔림과 긴장감의 강도가 더 높아지는 상황이 있다. 혹여 연인이 팔베개해 주는데 내 머리 무게에 팔이 짓이겨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진 않는지 날 품에 안았는데 내 머리가 거대한 돌덩이처럼 다가오진 않는지,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진 않는지, 다른 여자와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내 얼굴이 너무 커서 갑자기 정나미가 뚝 떨어지진 않는지 등등과 같은 상황. (써놓고 보니 좀 웃기는군 풋! 결국 좋아하는 사람한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가) 어쨌든 이 얼굴 큼이 나를 초라하게 하는 큰 원인이고 누가 조금이라도 건들면 너무 쓰리고 아프다. 한 번은 연인과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창문에 내 얼굴이 그의 얼굴보다 너무 크게 비치는 모습에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적도 있다. (요즘은 왜 여자가 남자보다 얼굴 크면 뭐! 그러면서도) 아니 대체 8등신 미녀라느니 얼굴이 주먹만 하다느니, 얼굴이 작은 걸 왜 미의 기준으로 한 걸까? 3등신 판다는 귀엽기만 한걸. 남들과 사진 찍을 때면 이 큰 얼굴이 더 부각되니까 오히려 이상한 표정을 짓곤 하는데 단체 사진 속 내 얼굴을 보면 나도 매번 놀란다. '진짜 크긴 크네, 어디 가도 눈엔 잘 띄겠어' 하면서 '에이, 난 충분히 매력 있어. 이만하면 됐어'하다가도 위가 비었거나 생리 날짜가 다가오는 날이면 이 큰 얼굴이 한없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져 고개를 못 드는 날도 많다.

    나 역시 누군가와 만났을 때 처음 대화를 (그게 아무리 긍정적인 말이라도) 외모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 안 하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 외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문화는 좀 없어져야 한다. 어떤 이의 생김새나 몸의 크기, 그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담겨 있으니까. 비만이 꼭 탐욕과 나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열악함 때문일 수도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어서 인스턴트로 음식을 때우느라 살이 찐 사람도 있다고요) 혹은 생소한 지병이 있어서 남들과 조금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는 거니까. 각자에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거니까. 상상력 키우기에 대한 방법론이 차고 넘치는데 우리가 키워야 할 상상력에 대한 대상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러고 보니 뇌하수체 종양 제거 2차 수술 성공한 지 내년이면 딱 십 년 차. 요즘엔 엉덩이 커 보이려고 보형물도 넣던데 얼굴 큰 게 최고의 미인일 날도 언젠간 오려나. 혹시 모르니까 그때까지 잘 붙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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