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도는 좋지만 아쉬운 시대착오적인 여성 캐릭터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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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tn4994)등록 2021.09.23 10:17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걸고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을 한다는 내용을 한 <오징어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과자'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아동용 게임을 잔인한 살상 게임으로 둔갑시켜 인간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려는 과감한 시도가 담겼다. 

공개된 지 5일 만에 미국의 탑 10 컨텐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일본의 <배틀 로열>,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을 뒤섞어 놨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대량 살상 장면에서 아름다운 배경이나 음악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나 <킹스맨>이 떠오른다는 지적도 있다. 감독관들의 옷이 빨간색이라는 점에서 <종이의 집>이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원래 스페인 드라마 원작인 <종이의 집>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져 현재 시즌 5까지 방영되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 현재 유지태 등이 주연 배우로 리메이크가 결정된 상태다. <종이의 집>이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도둑들이 모여 스페인 은행을 터는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니다. 각자 사연을 가진 도둑 한 명 한 명의 서사가 극의 개연성과 결말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비교할 때 <오징어 게임>은 첫 장면부터 구태의연했다. 456명이 모인 커다란 방에서 덩치 큰 남자(덕수)가 조그마한 여자(새벽)를 자기 돈 훔쳐간 나쁜 년이라며 폭행하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 특별한 연결 고리가 숨어있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폭력성 가득한 악한 남자와 적대감 많고 독한 여자 캐릭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한미녀는 처음에 아이 이름을 지어야 한다며 이곳을 나가게 해 달라며 빌더니 갑자기 456억에 눈이 뒤집혀 덕수에게 몸까지 받치는 인물이 된다. 캐릭터 각각의 설정 자체가 평범하고 납작하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 논란과 개연성 논란이 나오는 것이다. 

별 능력 없이 남자에게 빌붙어 얄밉게 자신의 몫을 챙기는 민폐녀들이 옛날 조폭 영화에서 흔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대중들의 카타르시스를 건드리는 여자들은 <종이의 집>의 '도쿄'나 '나이로비'이다. 잃을 것 없어 대범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통찰력 있고 판탄력 빠른 데다 무기만 들면 파괴력 있는 무적의 전투사다. 언뜻 생각하면 남성일 것 같은 이 모든 묘사의 주체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파격적이고 새로운 장면들이 탄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종이의 집>에서는 도둑들의 상대인 경찰에서도 주요 팀장으로 여성이 나온다. 시즌 초반에는 라켈이었고 시즌 3부터는 시에라 경감이 있었다. 상대역으로 여성이 나옴으로써 서사에 다양성이 부여되는데, 라켈은 결국 적군과 사랑에 빠짐으로써, 시에라 경감은 출산 장면을 추가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다양한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주인공에 성별만 다양하게 추가해도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변주 가능한지, 그리하여 주변 캐릭터의 입체성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줄 수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어떻게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지가 <오징어 게임>의 관전 포인트인 만큼 <오징어 게임>에서의 평범한 캐릭터 구성,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시대착오적인 묘사가 아쉬운 이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어떤 게 입체적인 여성 악역인지 궁금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나오는 전도연을 보길. 한국의 넷플릭스 컨텐츠가 계속해서 세계적인 상위 랭킹을 유지하려면 여성 캐릭터의 다양화는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풀어야 할 시급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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