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항쟁과 여순항쟁에서 군대가 어떻게 달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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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구(sinm1129)등록 2021.11.27 15:01
광주학살 당사자인 노태우씨에 이어서 전두환씨가 죽었다. 이 둘은 군대를 동원하여 1980년 5월 18일 수많은 광주민중을 왜 학살했는지 밝히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역사죄인으로 미제의 충실한 마름으로 사라졌다. 이는 한국이 미제의 신식민지이기에 진실규명이 쉽지 않다. 민주정권이 3번이나 거치면서 용서란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었을 뿐이었다.
 
전교조 통일위 선생님들이 여순항쟁지역을 답사하였다.(2021.11.6~7) 나는 3번째인데 순천은 처음이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미흡하나마 여순특별법이 얼마 전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어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픈 상처를 조금이니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근대민족국가에서 군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위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순천 팔마 체육관에 유족들의 기금으로 마련한 여순항쟁 위령탑에는 다음과 같은 시귀가 있다.

                      동백꽃 붉은 도시
                      반란의 도시
                      푸른 하늘 서러워
                      꽃이 지더니

                      흐르지 못한
                      반백년
                      항쟁의 세월
                      이제야 흐르네
                      우리 가슴에 
 

순천팔마 체육관에 있는 여순항쟁탑 전교조 전국 통일위 선생님들이 여순항쟁 위령탑에 참배하고 기념촬영하였다. 여순항쟁이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나서 73년만에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어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픈 상처를 조금이니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 신민구


 

여순항쟁에서 해방 후 목숨을 걸고 독립한 운동세력들이 미제와 그 앞잡이와 대항해서 민족자주통일국가를 위해서 투쟁한 시기였다. 그래서 군대에서 이런 자주독립세력들이 있어서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와 미군을 물러가라를 주장하면서 민족해방투쟁을 벌였다. 다수의 애국시민들과 함께 항쟁을 수행했다.
 
 

여순항쟁 당시 봉기군들이 발표한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 여수.순천에 주둔하고 있는 제14연대 군인들이 '동족 상잔 결사 반대'와 '미군 즉시 철퇴'를 요구하며 봉기하였다. ⓒ 신민구

  
그러나 5·18민중항쟁에서 우리 군대 60만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 마치 한국 군대인양 외피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군대는 미국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기에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미제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제3세계 국가가 있으면 자국의 군대를 동원하거나 우리처럼 신식민지 국가의 군대를 이용해서 민중을 탄압·학살해왔다.
 
 

5.18민중항쟁 당시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을 폭행.학살하는 장면 5.18항쟁 당시 한국군은 작전지위권이 주한미군에게 있기에 우리 국민의 군대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군대가 우리 민중의 재산과 생명을 보위해야 함에도 무차별 연행.학살하였다. ⓒ 신민구

 

여순항쟁에서 군대는 광주항쟁에서 역할과는 매우 정반대여서 군대의 본연의 임무
인 국민의 생명를 보호하기 봉기하였던 것이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36년간 강점하고, 해방 후 미제가 6·10항쟁, 4·3항쟁, 여순항쟁, 보도연맹사건, 6·25전쟁 등 수많은 학살사건은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우리 민족이 원치 않게 분단되어 남북교류협력하면서 통일을 나아가는데 미국이 왜 그리 반대할까?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운동이 광주에서 거리 행진 일제 때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이 여순항쟁으로 국가보안법으로 부활하였다. 이 법이 있는 한 민주주의도 통일도 없기에 이 법폐지 국민운동본부가 전국을 순회하였다. ⓒ 신민구

 

이는 미제가 자국의 자본이윤 극대화를 위해 벌인 만행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침략수단이면서 미국의 이익(미제의 자본이익)을 지키기 위한 물리적 보루이다. 한국 군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제국주의 발생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의 집적·집중으로 독점자본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상품수출보다 자본수출이 훨씬 중요시되면서 식민지가 필연적으로 필요하였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인 독일, 일본 등은 자본수출할 식민지가 부족하여 선발자본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식민지를 뺏기 위해서 벌인 전쟁이 제1,2차 세계 대전이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전 세계 수천만 민중이 목숨을 잃었다.
 
2차 대전 후 제 3세계 국가들의 정치적으로 해방되었다. 이전 제국주의 국가들은 더 발전된 자본주의국가들이기에 자본수출을 위해서 새로운 식민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전처럼 무력을 지배할 수가 없었다. 무력지배는 우선 비용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또한 이들 국가들이 민족해방투쟁이 고양된 상태이었다. 그래서 GATT, WTO, FTA, 세계은행 등을 내세워서 자유무역으로 제 3세계 국가들과 무역하면서 개발도상국을 약탈해왔다. 제국주의에 유리한 무역규칙을 내세우면서 이 규칙을 어기거나 이 자유무역체제에서 벗어나면 당장 무력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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