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에 관한 100년 오해, 이제는 없어져야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 발표 100주년 맞아 '평전 겸 소설세계 탐구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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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daeguedu)등록 2021.12.16 14:58

현진건, 100년의 오해 (표지) 현진건 평전 겸 소설세계 해설서 (정만진 지음) ⓒ 정만진

    
현진건이 네 번째 발표작 〈타락자〉를 《개벽》 1922년 1월호부터 4월호까지 게재하자 큰 후폭풍이 일어났다. 소설 속 주인공과 작자를 동일시한 독자들이 엄청난 비난 투서를 잡지사로 보내고, 항의 전화를 해왔다. 최시한의 지적에 따르면 이는 "일인칭 서술의 '나'를 작자와 구별하지 못하는 미숙한 독자가 범하는 잘못"의 전형적 사례였다.

당시 독자들의 격노가 얼마나 강렬했던가는 "인생의 추악한 일면을 기탄없이 폭로"하기 위해 작품을 썼다는 현진건의 해명이 소설 끝에 붙어 있는 사실로 충분히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잡지 학예부 편집자까지 4월호 말미에 "작자 자기의 자서전이나 전기같이 생각하(여 비난 투서를 하)는 이가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라는 글을 덧붙였다.

경험에서 글감을 거의 찾지 아니한 현진건

현진건은 1931년 10월 《삼천리》에 발표한 〈내 소설과 모델〉이라는 글에서 "나는 대체로 소설을 씀에 있어 실사실(실제 사실)에서 재료를 취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이론가들마저 미숙한 독자 이상의 잘못을 일삼았다.

서울대 모 교수는 1981년 발표 논문 〈현진건의 생애와 문학〉에서 "기생 춘심에게 고혹되어 나중에는 (성)병까지 옮고, 춘심은 딴 남자와 살림을 나간다는 〈타락자〉는 다 빙허(현진건) 자신의 생활을 그린 것"이라고 평했다.

동국대 모 교수도 1980년 간행 저서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춘심이라는 기생과 애정 관계를 맺는 〈타락자〉의 주인공이 작자 자신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짐작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공자들까지 근거도 없이 '자전적 소설' 규정

이렇듯 전공자들까지 현진건의 초기 작품들을 '자전적 소설'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해온 지가 벌써 100년이 되었다.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가 발표된 때가 1921년, 즉 100년 전인데 지금도 잘못된 평가와 해설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진건이) 창작집 《조선의 얼굴》을 간행한 시기(1926년)는 현진건의 의식이 자전적 세계를 벗어나 식민지의 민족적 현실 및 고통받는 식민지 민중의 문제로 옮겨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926년 이전까지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이 자전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서울대의 또 다른 모 교수가 편찬한 《한국현대문학대사전》도 '현진건의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 1920년대 초 체험소설은 1인칭소설로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은 작품들'이라고 해설하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흡사한 인식을 보여준다.  현진건의 초기 작품들이 자전적 소설류라는 설명인 까닭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에 견주어서 생각해 보자

어떤 작품이 자전적 소설로 분류되려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요소가 작자의 실제 삶과 일치되어야 한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자전적 소설이라 하는 것은 작자도 주인공 한스도 신학대학을 다녔고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빈처〉는 '나'와 '아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겪는 일들이 소설의 기둥을 이루는 작품이다. 현진건의 네 형제는 모두 1910년대에 러시아, 중국 등지에 유학했고, 현진건의 처가는 대구 유수의 대부호였다. 〈빈처〉를 발표한 21살 현진건은 그 당시에 이미 전기와 수도가 들어왔고 가정부까지 있는 저택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자전적 소설인가?

그 외에도 현진건에 관한 오해는 무수하다. 《현진건 100년의 오해》는 (1)현진건의 생애, (2)현진건의 문학, (3)〈빈처〉 등은 자전적 소설인가, (4)새롭게 정립한 현진건 소설 3단계론, (5)인간의 이중성과 현진건 소설의 주제, (6)현진건 소설의 소극적 저항의 가치, (7)현진건 소설의 기교와 문학사적 업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이 현진건에 관한 오해를 규명하고, 현진건을 제대로 기리는 올바른 현창 사업을 펼치자는 내용들이다.

문학관은 물론 묘소도 없는 현진건

현진건은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김윤식 김현 《한국문학사》)", "한국의 모파상(장덕순 《한국문학사》)" 등의 찬사를 듣는 한국 사실주의문학의 선구자이다. 게다가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켜 국가로부터 서훈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진건은 생가와 고택이 남아 있거나 복원되지 못했다. 친일파를 기리는 곳은 물론 전국에 70여 개 이상의 문학관이 건립되어 있음에도 현진건문학관은 없다. 심지어 묘소도 없어졌다.
 

(위) 현진건의 사진, 초상화, (아래) 대구 문학비, 서울 부암동 고택터 표지석 ⓒ 정만진

 
대구의 한 공원에 〈고향〉의 몇 문장을 새겨넣은 문학비가 건립되어 있고, 서울 부암동 집터 앞에 표지석이 놓여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두 개의 돌에는 현진건이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켰다거나, 독립유공자라는 데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필자는 현진건의 소설세계를 올바르게 알리고, 그를 기리는 현창 사업이 좀 더 진정성있게 펼치지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현진건 100년의 오해》를 펴냈다.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 발표 100주년인데도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며 2021년의 끝자락을 맞고 있다. 혹시 현진건 선생도 하늘나라에서 쓸쓸한 마음으로 이 땅을 굽어보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은근히 민망하다.
덧붙이는 글 <현진건, 100년의 오해>(현진건 평전 겸 소설세계 해설서), 정만진 지음, 국토(2021년 11월 30일), 24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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