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거부, 김사니-조송화의 잘못인가?

IBK사태를 보는 다른 시각 : 선수의 목소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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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hs1578)등록 2021.12.16 15:04
도쿄 올림픽 4강의 기적을 이루어 많은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여자 배구에 큰 악재가 겹쳤다. 이른 바 '조송화 사태'(?)에서 시작해 '김사니 파동'(?)으로 이어지더니 '김호철 귀환'으로 마무리로 이어지고 있는 IBK 여자 배구단 건이다.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사건은 이렇게 전개된다. 김수지, 김희진, 표승주라는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 3인방을 보유하고 있어 우승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위권으로 예측되던 IBK가 개막 이후 예상과 달리 연패를 거듭하면서 꼴찌를 다투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총사령관인 서남원 감독과 코트의 야전 사령관인 세터 조송화 선수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조송화 선수가 무단이탈(이 부분은 조송화의 해명과 언론 보도의 사실 관계가 달라 추후 팩트 확인되어야 함.)을 했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김사니 코치까지 그만 두겠다고 팀을 떠나면서 분란은 더 커졌고, 구단의 설득으로 김코치는 돌아왔지만 이후 구단은 서남원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중도 감독 교체를 결정한다.
 
이어 (사의를 표명했다고 알려진) 김사니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면서 논란이 커졌고, 특히, 김사니 감독대행이 인터뷰에서 서남원 감독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고 밝히면서 분란은 더욱 커졌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김사니 감독대행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차상현 GS 감독을 시작으로 김사니 감독대행과의 악수를 거부하는 사태가 이어졌고,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도 뒤를 따랐고, (김사니 감독대행의 중도 사퇴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페퍼저축은행 김영실, 흥국생명 박미희, 현대건설 강성형 등 모든 여자 배구팀 감독이 같은 입장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자배구팀 감독은 아니지만 배구계 원로이자 전설 중의 하나인 신치용 전 삼성 감독도 강하게 김사니와 조송화, IBK 구단을 비판하는데 동참한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김사니 감독대행은 사퇴를 표명하고 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후임 감독으로 또 한명의 배구 전설인 전 현대 감독이었던 김호철이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조송화 선수를 둘러싸고 상벌위원회가 진행 중이고, 아마도 이어서 법적 분쟁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IBK 사태의 경과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나 인터넷 댓글들은 조송화 선수와 김사니 코치를 저격하고 있다. 서남원 감독은 덕장이자 신사로, 무고한 피해자로 보도되고 있다.
 
나는 조송화 선수, 김사니 코치, 서남원 감독의 인간성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 그럴 위치도 아니고, 그럴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조송화 선수와 김사니 코치를 죄인 취급하면서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찬성하기 힘들다. 특히, 차상현 GS감독에서 시작된 악수 거부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왜 선수들의 목소리는 없고, 감독들의 목소리만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는다.
 
막말 없었다? "야, 김사니, 대답 안 해?"가 진짜 막말이다.
물러난 김사니 코치는 감독대행에 임명된 후 경기 전 인터뷰에서 서남원 감독으로부터 "야, 김OO, 대답 안 해?"라는 말을 들었고, 서 감독으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 폭언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인터뷰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그게 무슨 막말이냐?", "서남원 감독의 인간성으로 볼 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게 막말이면 대한민국 직장인 다 듣는다.", "이런 걸로 직장 그만 두면 직장 다닐 사람 한 명도 없다."는 반응을 전하며 막말이 아니라거나 폭언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라고 김사니 코치를 비난했다.
 
다시 밝히지만, 서남원 전 감독은 덕장으로 알려진 감독이 맞으며, 평소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했다는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서남원 전 감독이 이 말 "야, 김사니, 대답 안 해?"라는 말 조차도 안 했을 가능성도 있고, 추가적인 폭언은 전혀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건 당사자들, 그러니까 서남원 감독과 김사니 코치, 조송화 선수를 포함한 선수들만이 안다.
 
법정에서든, 누군가의 폭로를 통해서건 곧 폭언 여부가 밝혀질 것이니 미리 예단하지도 않고, 그냥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최소한 "야, 김사니, 대답 안 해?"라고 서남원 감독이 선수들 앞에서 김사니 코치에게 말한 것이 맞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건 역대급 폭언에 속한다고 본다. 물론, 과거 인권감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의 스포츠, 특히, 학원스포츠계라면 만연했을 발언이지만 2021년, 그것도 성인인 프로스포츠계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김사니 코치도 이 발언 하나를 공개하면서 미성년자(배구계를 비롯한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졸업도 하지 않은 고3 선수들을 경기에 출전시키고 있다.)도 있는데 코치로서 감독에게 이런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선수들을 지도할 자신이 없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만약, 김사니 코치가 공개한 "야, 김사니, 대답 안 해?"라는 이 말도 서남원 감독이 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김사니 코치가 온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 그것도 전 감독을 없는 사실로 음해한 것이 되므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 말이 있었다는 것을 사실로 전제한다면 이후의 언론보도나 댓글들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코치가 감독에게 선수들 앞에서 반말로 이름을 불리면서 질타를 받는 것, 이것을 아무 문제 없다고 한다면 한국 사회는 한 참 멀었다. 이게 일반 직장의 일상이라고 한다면, 그 회사는 정말 한 참 멀었다는 말이다. 그 회사가, 사회가 정상이 아닌 것이지 이 발언에 문제 의식을 가진 김사니 코치와 같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학교의 상황으로 대치해 보자. 만약, 어느 학급에, 어느 학생에게 문제가 있었는데, 담임 교사가 이 학급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담임 교사를 불러놓고 이름을 부르며 "야, 김OO, 대답 안 해?"라고 했다고 하면 이건 폭언인가, 아닌가? '선생'이라는 존칭도 붙이지 않았고, 반말로 교사에게 "대답 안 해?"라고 하는 교장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담임이 학생들 앞에 제대로 서서 학생 지도를 할 수 있을까? 이건 담임이 아니라 교감 선생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장 선생님이 평교사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참을 수 있을까? 나의 잘못을 질타하면서 계속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런 교장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런 교장 아래에서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상사로부터 그 정도의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다고? 맞다. 대한민국에 이런 직장 많고, 이런 직장 상사 많다. 그러나, 그게 정상은 아니다. 그게 계승해야할 미풍양속은 더더욱 아니다.
 
상황 역시 일반적인 직장 상사의 폭언 상황과 다르다. 만약, 직장 상사가 고객들 앞에서 부하 직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더 큰 문제다. 교사 역시 학교장이 교장실로 불러서 학급 지도 방식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면 담임 교사든, 교감이든 그 말을 들어야 한다. (물론, 반말이나 폭언은 안 된다.)
 
그러나, 그게 학생들 앞, 학부모 앞이라면 그런 말을 한 교장은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한민국 학교, 특히, 사립학교에는 아직도 이런 교장 많이 있고, 이사장들 중에는 더 많다. 그러나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이런 걸 정상이라고, 아무 문제 없다고 넘긴다면 그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을까? 인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감독과 코치, 선수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감독이 선수 지도와 관련하여 이견이 있고, 코치의 지도 방식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도와 지적에도 적절한 방식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최소한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감독이 지도하는 선수들 앞에서 코치에게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로 '야, 김사니, 대답 안 해?'라고 하는 건" 그 자체로 폭언이고,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방식이라고 본다.(물론, 앞서 밝힌 것처럼, 서 감독이 이 말조차도 안 했으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그럼 "선수가, 코치가 감독의 지시에 대답도 안 하는 것은 정당하냐? 그러면 감독이 선수나 코치를 어떻게 지도하나?"라는 반문이 돌아올 법하다. 물론, 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사회라면.....
 
그러나,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수와 코치에게 감독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것이고, 더 나아가 구단에 선수의 트레이드 또는 방출, 징계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감독이 이 이상을 하면 그건 갑질이고, 폭언이다. 프로 선수이고, 성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는 EPL, MLB 등 외국의 프로 스포츠 중계를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기 중에도 선수 교체에 불만을 가진 선수가 감독과의 악수를 거부하거나 물병을 던지거나 의자를 걷어차는 등의 행동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게 선수로서 바람직한 행동이냐는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런 선수에게, 이런 선수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고 감독이 코치나 선수에게 막말을 하고, 반말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전술이나 가치관에 선수가 맞지 않는다면 그냥 출전시키지 않으면 되고,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후의 선택은 선수의 몫이다.
 
아무리 감독이라도 이 이상은 할 수 없다. 이 이상을 한다면, 그게 바로 갑질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스포츠계에서 선수들의 인권이 더 존중받을 수 있다.
 
GS 차상현을 필두로 한 감독들의 악수 거부, 왜?
 
시즌 중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프로 스포츠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니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 IBK 사태가 커진 결정적인 계기 중에 하나는 차상현 GS 감독에서 시작된 타팀 감독들의 악수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프로 스포츠계에서 수많은 라이벌이 있었고, 심지어 앙숙도 있고, 크고작은 분란이 있었지만 다른 팀 감독들이 집단으로 한 팀의 지도자(감독이든 코치이든)를 보이콧한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스포츠에 엄청난 관심이 있는 필자가 들어보지 못했으니 처음이 아니라도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가장 비슷한 사건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있었는데, 바로 월드시리즈 챔피언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상대팀 LA 다저스의 사인을 훔쳐서 이를 경기에 이용하는 비신사적 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의혹이 알려지자 L.A 다저스 선수들을 비롯하여 많은 야구인들이 휴스턴의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명백히 그 팀과 선수들은 스포츠맨답지 않은 부정행위를 한 것이고, 이것이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LA 다저스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이 휴스턴의 감독이나 선수들을 인정하지 않고 경기 전 의례적인 행사마저도 거부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이기기 위해서 더 최선을 다하고, 그들의 부정행위를 비판은 할망정......
 
그러나, IBK 사태에서 벌어진 집단적 악수 거부 파동은 이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사니가 승부 조작과도 같은 부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조송화가 상대방 선수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동의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팀 감독을 거부해야 하는 정당한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IBK사태에 대해서 다른 팀 감독들이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경기장 밖에서 개별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것이지 경기장 안에서 공식적으로 표현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미우나 고우나 김사니는 자신들이 경쟁하는 상대팀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김사니 감독대행에 대한 거부는 누가 뭐래도 IBK팀과 선수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다.
 
김사니 감독대행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독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면 그건 IBK 선수들이 행동해야 할 몫이지 다른 팀 감독들이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적어도 밖으로 나타난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만 본다면 IBK 선수들과 김사니 코치의 문제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선수들이 김사니 코치를 원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학교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어느 학교 교장이 학교 내에서 이런저런 비판을 받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학교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학교장을 비판하고, 나아가 물러날 것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 학교 교장이 학교 바깥의 어느 공식적인 행사에 갔는데 그를 교장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다고 해보자. 이건 그 교장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그 학교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무시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로 치환을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는 국민들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바판에서 나아가 비난을 할 수도 있다. 물러나라고 시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통령이 외국의 대외적인 행사에 참여를 하였는데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이, 그 행사를 주최한 나라 또는 기관이 우리 대통령에게 악수도 안 하고, 최소한의 의전도 해주지 않았다면 이건 그 나라 국민들이 분노할 일이다. 국내에서 문제가 있어 비판을 받을망정 그가 현직 대통령이라면 나라의 대표이고, 당연히 다른 나라와 기관들은 한 나라의 국가 수장으로 정당하게 대우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상식이 스포츠계에는, 특히, IBK 배구팀과 김사니 코치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 왜?
 
이유는 다른 팀 감독들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배구 유일의 여성 감독인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좋은 후배이고, 여성 지도자로서 계속 열심히 해왔다. 그런 부분은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인 감정은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다. 여기는 직장이기 때문에 구분을 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의 입장은 더 단호했다. 김감독은 이미 사퇴 의사를 표명한 김사니 감독대행과의 경기를 앞두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 누구도 모르지 않나. 다만 전임 감독이셨는데, 김사니 감독대행이 '막말을 들었다'고 언론 인터뷰를 했을 때 가장 화가 났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기 좋았다. 앞으로도 지도자를 하려면 더 많이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다른 모든 감독들의 입장도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말을 한번 되짚어보자. 박미희 감독의 말처럼, 누구든 직장생활을 하려면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과 사가 도대체 무엇인가? 직장이니까 부하가 상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말을 하면 안 되나?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직장인의 금과옥조인가? 박미희 감독이 김사니 감독에게 해야 할 말은 "여기는 직장이다."가 아니라 "정말로 감독에게 그런 말을 들었니? 정말로 폭언이 있었니?"라고 되묻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감독들은 모두 남성이라 이 질문을 김사니 코치에게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박 감독의 말처럼, 개인적으로 아끼는 후배이니 개인적인 관계를 이용해서 이 질문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코치와 감독(영어로는 모두 coach이다.)의 관계는 봉건시대 주종 관계도 아니고, 코치는 감독에게 막막, 아니 최소한의 반말을 해서도 안 되는 관계이다.
 
물론,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반말을 하든 존대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코치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라면 감독이 선수 앞에서 코치에게 반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막말이다. 박미희 감독이 정말로 김사니 코치를 개인적으로 아끼는 후배였다면 악수 거부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반말, 나아가 폭언을 했는지에 대해서부터 김사니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의 인터뷰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김 감독이 "전임 감독이셨는데, 김사니 감독대행이 '막말을 들었다'고 언론 인터뷰를 했을 때 가장 화가 났다."고 밝힌 것에서 감독들이 왜 화가 났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도자를 하려면 더 많이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타팀 감독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선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박미희 감독이나 김종민 감독의 발언, 그리고 다른 감독들의 발언과 행동을 종합해보면 감독들이 집단으로 화가 난 것은 "어떻게 선수가, 어떻게 코치가 감독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느냐?"하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며 지나친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인식이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발상, 나아가 적폐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일까? 다시 밝히지만, 감독과 코치, 선수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니다. 코치는 무조건적으로 감독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 선수 역시 감독과 코치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나?
 
물론 지도자의 지도, 전술에 선수들이 따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전술이나 지도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감독의 지도나 전술에 따르지 않는 선수가 있다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경기에 출전 시키지 않는 것이고, 구단에 이적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이다.
 
선수 역시 감독이나 코치의 전술, 지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거부했더니 출전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지도자가 바뀔 때까지 경기에 나가지 못한 채 기다리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을 요구하면 된다. 이게 정상이고, 이게 정도이다.
 
이런 상황은 외국의 프로 스포츠 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축구 선수가 감독의 전술에 대해서, 선수 교체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했다는 뉴스는 더 이상 놀라운 기사도 아니다. 가레스 베일 같은 수퍼 스타가 감독이 지단으로 바뀌니 거의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여 토튼험으로 임대를 가는 것 역시 이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들은 되는데 우리는 안 되는가? 그 이유는 언론보도에서 사용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사제(師弟), 스승과 제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언론들은 언제부터인가 감독과 선수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 즉, 사제 지간으로 표현한다. (학교로 치면 교사와 학생이다.) 이번 IBK 사건에서도 김사니가 현역 국가대표 배구선수이던 시절 올림픽에서 감독이었던 김영실 현 페퍼저축은행 감독에 대해서 '김사니의 은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종 관계,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라고 하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를 이렇게 사제, 은사와 제자의 관계로 부르는 것도 사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외국으로까지 확대를 하면 더욱 이상하다. 축구 선수 메시의 이적이 세계적 관심사였던 시절 많은 언론들은 메시가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하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과르디올라가 이전에 메시가 몸 담았던 FC바르셀로나 팀의 감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메시와 과르디올라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로 표현하는 것에는 의문이다. 외국의 언론 어디에도 과르디올라와 메시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굳이 영어로 쓴다면 teacher와 student)로 표현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떤 언론에서는 은사와 애제자라는 레토릭을 쓴다.
 
여기서 물어보자. 과연 과르디올라와 메시가 그런 사이인가? 메시가 정말 과르디올라에게 축구를 배웠을까? 과르디올라가 정말로 메시에게 축구를 가르쳤을까?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배구 스타 중 한 명(이 중에는 김사니도 들어간다.)인 김연경에게 이번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팀 감독인 라바리니는 스승인가? 김연경은 라바리니의 제자인가? 배구 선수를 한 적도 없는 라바리니 감독에게 김연경은 어떤 배구 기술을 배웠을까?
 
아닐 거다. 과르디올라와 메시, 라바리니와 김연경은 모두 선생과 학생이 아니고, 스승과 제자도 아니라, 은사와 애제자는 더더욱 아니다. 같은 축구팀에 소속된 감독과 선수이다. 감독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 전술을 짜서 선수를 기용하고 배치하는 것이고(한 마디로 달리 표현하면 '이용'하는 것이고), 선수는 그 감독의 전술에 따라서 훈련하고 경기에 뛰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과 선수를 스승과 제자로 표현하는 우리 언론이 이번 IBK 사태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 나라에 지금도 남아있는 그 뿌리 깊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의식의 반영이다.
 
스승은 아버지나 임금과 동급일 정도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남아있는 사회에서 선수가 감독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감독 밑에 있던 코치가 감독을 밀어내고 감독이 되는 것은 항명을 넘어 반역에 가깝다.
 
그래서 감독들은 절대로 이 사태를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의 귀결이 상대팀 지도자에 대한 악수 거부, 달리 말하면 집단 보이콧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배구 감독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김사니 감독대행에 대한 보이콧이 아니라 서남원 감독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한 IBK 구단을 상대로 해야 한다.
 
(정말로 잘못이 없다면) 왜 잘못이 없는 서남원 감독에게 애꿋은 책임을 물어 어떤 절차도 없이 그를 해고하느냐고 다른팀 감독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나는 양손, 아니라 양발까지 들어서 박수를 쳐줄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들과 국민들의 인식은 감독들의 집단 악수 거부에 대해서 '무너져가는 스포츠계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정의감의 발로'라는 인식이 팽배한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의로운 감독들이 박철우 선수를 폭행하고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감독으로 복귀한 이상열 감독에 대해서는 왜 악수 거부를 하지 않았나? 과연 김사니 코치의 잘못과 당시 국가대표 이상열 코치의 잘못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그렇게 직장인의 인간적인 도리를 강조하는 감독들이 최근 물의를 일으킨 정지석을 다시 기용하고 있는 대한항공 감독에 대해서는 왜 악수 거부를 하지 않는가? 과연 김사니 코치의 잘못과 정지석 선수의 잘못 중 어느 것이 더 큰 사회적 물의인가?"
 
"그렇게 스포츠계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들이 국가대표 감독 시절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하여 꼼수로 양다리를 걸쳐 상도의를 위반하여 감독에서 잘린 김호철 감독이 다시 IBK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데 왜 어떤 감독도 김호철 감독의 귀환을 비판하지 않나? 김호철 감독의 반복된 꼼수와 김사니 코치의 행동 중 어느 것이 스포츠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더 큰 문제인가?"
 
대한민국 스포츠계 감독들과 이번 IBK 사태에서 김사니 코치와 조송화 선수를 조리돌림, 적어도 왕따 시키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들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조송화 선수와 김사니 코치의 구체적 행동에 대해서 잘 몰라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기를...)
 
선수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IBK 구단은 완강해 보인다. 조송화 선수가 선수로 계속 뛰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음에도 다시 선수로 받아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미숙한 일처리로 팬과 국민들의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구단이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게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거의 온 국민의 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조송화 선수는 '무단 이탈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할 태도이다. 언론은 일색으로 이런 조송화 선수를 이번 분란의 장본인으로, 스포츠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정도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밝혀진 사실만으로 판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일단, 선수가 무단이탈을 했는지 여부부터 사실 관계에 대한 주장이 엇갈린다. 솔직히, 지금 나온 보도만으로는 IBK 구단이 조송화 선수의 무단이탈 다툼에서 이기기는 힘들어 보인다. 구단 스스로 조송화 선수를 태워다 준 것이나 무단이탈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 대표적인 증거이다.
 
게다가 조송화 선수를 임의탈퇴 처리하려던 IBK 구단의 무리수는 판을 완전히 뒤집는 최악수로 보인다. 선수가 서면동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구단이 선수의 임의탈퇴를 배구협회에 요구하는 것은 정말 쌍팔년도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현대 문명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조송화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언론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의탈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계약해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감독의 전술이나 출전 횟수 등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이 있는 선수가 구단과의 합의를 통하여 잔여 계약기간과 연봉을 포기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야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임의탈퇴는 원 구단에서 못 뛸 뿐 아니라 다른 구단에서도 당분간 뛸 수 없다. 당연히, 잔여 기간의 연봉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중대한 신분상, 금전상의 변화가 생기는 임의 해지(임의 탈퇴)를 선수의 동의 없이 구단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2021년 대한민국의 놀라운 현실이다.
 
현대건설 고유민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표준계약서라는 것이 도입되었고, 이를 통하여 임의탈퇴는 선수의 명시적인 서면 동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그런데, 여전히 IBK 구단과 배구계는 고유민 선수의 죽음에서 배운 것이 없나보다.
 
선수의 잘못으로 징계위원회(상벌위원회)를 통하여 잘못의 경중에 따라서 계약을 해지하든, 연봉을 삭감하든 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절차도 없이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선수를 임의탈퇴 시킬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구시대적 적폐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 힘들다.
 
조송화 선수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절차를 거쳐서 그만큼의 책임을 물으면 된다. 김사니 코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선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임의탈퇴를 처리하여 돈도 안 주고, 다른 팀에서도 못 뛰게 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그건 이 나라가 아직 봉건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가 기계의 부속품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되듯이, 21세기 운동선수가 봉건시대 영주의 노예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조송화 선수, 나아가 IBK선수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왜 존재 자체를 비난하고 부정당해야 하는가?
 
IBK 선수들 입장에서 내부의 분란이 있기는 하지만, 김사니 코치이자 감독대행은 그들의 지도자이자 그팀의 대표이다. 그런데, 다른 팀의 감독들이 자기 팀 감독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선수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그게 정상이다. 우리 감독에 대한 무시는 우리 팀과 선수들에 대한 무시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그게 정상이다.
 
서남원 감독의 '야, 김사니, 대답 안 해?'라는 발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된 현장에 여러 선수들이 있었다. 정말로 이런 발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밝힐 수 있어야 그게 정상적인 선수와 코치, 감독의 관계이다. 선수가 코치나 감독의 행동에 대해서 어떤 반론도, 어떤 발언도 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것이 비정상이다.
 
IBK 선수 중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서 진심어린 말을 하지 못한다.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둘 중 하나다. "김사니 코치에 대한 그런 발언, 나아가 폭언이 있었다." 또는 "그런 발언이 없었다."
 
이것만 밝혀지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올 필요도 없었다. 없었다면 김사니 코치는 스포츠계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얼굴 들고 살기 힘들다. 정말로 이런 발언이 있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선수들이 이걸 밝히지 않고 IBK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 나아가 김사니 감독은 조리돌림을 하면서 김호철 감독의 복귀에는 침묵하는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재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왜 선수들의 목소리는 없을까? 지금 김광현, 류현진 선수가 뛰고 있는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직장폐쇄 중이다. 스토브 리그도 완전히 중단되었다.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선수노조와 구단주들간의 마찰이 원인이다.
 
즉, 미국의 프로선수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어떤 프로 스포츠 리그에도 선수노조가 없다.(아마 없을 것이다.) 선수노조 대신 선수협의회라는 이름의 모임이 있을뿐이다.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미국 야구선수들이나 스페인 축구선수들은 선수노조가 있어서 선수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왜 대한민국에는 선수노조가 단 한 개도 없을까? 왜 선수들의 목소리는 없고 구단과 감독들의 목소리만 언론에 보도될까?
 
선수노조, 아니 선수협의회라도 있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조송화 선수의 임의 탈퇴가 정당한가? 조송화 선수의 무단 이탈이 맞는가?, 선수들 앞에서 감독의 폭언이 있었나?' 등을 조사하고, 나아가 '타팀 감독들이 자기팀 감독을 보이콧하는 것이 선수 무시는 아닌지?'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목소리도 없다. 선수들은 죄인처럼 침묵하고 있고, 홀로 목소리를 내는 조송화는 입을 열자 말자 바로 역적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게 맞나?
 
고유민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교훈으로 임의탈퇴 제도가 인권친화적으로 바뀌었듯 이번 IBK 사태에 대한 교훈으로 선수들 대변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억지일까?
 
스포츠 팬이자 국민으로서 이번 IBK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되고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여기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이번 사태는 또 재발한다. 코메디가 아니면 비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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