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시작했다.
친구와 선배들의 오랜 권유에도 차일피일 미뤄오던 골프였다. 그러다 3년 전 즈음에 시작한 골프는 사업과 아이들의 성장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던 단조로운 생활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운동과 여가활동 그리고 재미까지 곁들여진 골프는 이제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 멕시코 로스 카보스 산 호세 골프장 멕시코 로스 카보스에 위치한 산 호세 골프장에서 아들들과 플레이 중이다. ⓒ 김유보
스크린 골프장에서 시작한 골프는 잦은 한국 출장으로 인해서 레슨 횟수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6개월 후 본격적으로 골프를 다시 시작하고 2개월만에 나간 첫 필드의 떨림이란 거의 군대 훈련병이 사격장에서 듣는 첫발의 총성과 같았다.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를 정도로 양파밭을 헤매다 온 후(초보라서 그냥 양파로 처리), 난 남과 다르게 운동을 제법 했기에 골프도 금방 될거야 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깨닫는데 어렵지 않았다. 내 손에 들린 첫 경험 성적표와 끝난지 한참 지난 후 식당에서까지 느껴지던 얼빠진 모습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 더 열심히 연습하고 연습했다. 곧 100타 정복, 3개월이 되기 전에 88개(파 70)를 쳐서 보기 플레이 성적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오른쪽 갈비 뼈 부상… 두 달을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니 covid-19로 모든 골프장이 닫았다. 6개월 후 과도한 열심으로 오른쪽 중지 인대 파열. 이후 또 왼쪽 엘보 부상…
친구들과 간단한 골프 내기를 시작했다. 난 시작한지 1년 정도 되는 초보, 동반자들은 10년 이상씩 된 베테랑들이었다. 핸디 26을 받고 첫 내기 골프의 길로 들어선 후 친구들이 구력에 비해서 대부분 잃었기에 3개월이 안돼서 18개를 놓고 같이 쳤다(PGA룰로 게임을 진행하는 멕시코 특성상 핸디가 많이 낮지는 않다). 내기라고 해봐야 결국 다 돌려주고 저녁 밥 같이 먹는 것이 다였기에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모임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핸디는 더 내려가서 12까지 놓고 쳤다. 9개로 턱걸이 싱글을 했다는 이유로…
그러나…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날. 날 이긴 일부 동반자는 내가 평소에 패자에게 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이기면 돈이 딱딱 들어맞아서 돌려주고 밥 먹고 끝인데... 이거 참 난감한 일이었다. 내가 평소에 패자에게 베풀었던 자비가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 멕시코 코팔 골프장 멕시코 시티 코팔 골프장에서 1인 플레이 중이다. ⓒ 김유보
▲ 멕시코 외곽 빈민가 지역 멕시코 코팔 골프장 주위에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 김유보
참고로 동반자들 중에서도 여러 신들이 있다.
어려운 곳에 위치한 공을 남들 보지 않을 때 발로 툭 건드려서 좋은 자리에 위치시키는 메시 뺨칠 정도의 발 재간의 신. 누가 봐도 명백히 나간 볼인데 기가 막히게 죽음에서 돌아오게 만드는 알까기의 신. 동반자의 플레이에 전혀 관심없이 자신만이 중심인 중화사상의 신. 너무 예민해서 주위 사람이 숨도 못 쉬는 무궁화 꽃이 피었신… 헤비 러프, 벙커, 해저드까지 다 다녀와도 언제나 보기인 뻔뻔의 신. 등등.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싱글로 점점 다가가는 기쁨에 골프를 즐기려 한다. 하지만 여러 골프의 잡신들이 섞인 동반자들과 나가면 조그만 내기라도 붙기 때문에 핸디를 조정해서 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연습해서 이뤄낸 열매는 내가 언제 따먹는거지? 내가 타수를 줄인만큼 핸디 조정 압박이 더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테고… 연습이라고는 1도 안 하면서 10년을 넘게 쳐도 이십 몇 개 핸디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불변 핸디, 삼 십년이 돼도 인정이 되지 않는 30개의 핸디를 고수하는 등등의 사람들이, 나의 핸디는 24시간 열린 해장국집처럼 들락날락거리면서 짜네 쓰네 온갖 참견뿐만 아니라 서로 핸디를 맞춰야 동반자들끼리 재밌게 치지 않겠냐는 회유, 압박으로 결국 본인들이 내 핸디를 정말 빡빡하게 조정해내고 마는 것이다. 내가 뼈빠지게 연습해서 이뤄낸 결과는 내가 언제 누려보는건지…
누군가가 그랬다. 핸디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내리려는 적들에 맞서 끝까지 잡고 버텨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문제는 골프는 혼자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플레이 하는 것이 외국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재미가 없다. 친구의 오비가 동반자들에게 입꾹 눈웃음의 즐거움이 되고 나의 뒷땅 퐁당이 친구들에게 숨죽인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상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반자와 웃고 떠들고 상쾌한 공기를 같이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것이 골프의 묘미 아니겠는가!
많은 골프 모임들이 중단되고 마음 상해하는 골프 선배들을 많이 봤다. 간단한 게임을 해보면 그 사람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하물며 하루를 온 종일 같이 지내는 동반자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떤 잡신이니? 등신?'
오늘도 여러 잡신들이 섞여 있는 동반자들과 플레이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다 잡아 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정의의 드라이버로 잡신을 몰아내고 송곳 같은 아이언으로 십년 불변 핸디들을 멸하고 자로 잰 듯한 퍼터로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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