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 쓰기의 촉발

읽기와 쓰기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검토 완료

손은경(bestjasmineever)등록 2022.06.09 10:36
읽고 쓰기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쓰기'라는 관점에서 풀어볼까 합니다.
 
하루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줄 감동에 책을 덮어야 했어요. 더 볼 수 없었어요." 책이 좋아 서점까지 운영 중인 지인 이야기입니다. 구태여 그의 말을 빌려온 이유가 있는데요. 그 모습이 꼭 저 같더랍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끝내 책을 덮던 행동은 그나 저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덥석 반기던 기억이 납니다.
 
"와 저도요! 저도 어떤 문장은 한 줄만 읽고 책을 덮게 돼요! 쓰고 싶거든요!"
 
다른 이유 그러나 같은 시점에 독서를 멈추는 우리였죠. 그와 제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분이 공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라 그런 거 아니냐는 핀잔도 있을 수 있고, 기이한 사람으로 비춰질 지도요. 허나 거짓을 말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정말이지 그렇습니다. 읽다 보면 쓰고 싶다는 마음의 시동이 걸립니다. 왜,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이러스 이후 여행병이 걸린 저란 걸 AI가 알아채고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캠핑 영상을 추천해 줍니다. 다양한 영상이 연달아 등장해요. 일정 거리를 둔 나무 아래 수북이 덮인 낙엽,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에 코가 뻥 뚫릴 듯한 푸른 숲, 이들과 더불어 캠핑하는 영상 속 그이를 더러 봅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에요. 그렇게 멍하니 20분쯤 보고 났는데 가슴에 무언가 움트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발동이 걸렸다고 할까요. 일단 영상을 멈추고 더듬더듬 캠핑장을 검색해보고요, 가격 비교도 해보고. 가슴 속 씨앗이 싹을 틔운 게 분명해요.
 
제 경우, 그것은 마치 읽으니 쓰고 싶어질 때와 같았습니다. 읽을수록 쓰라는 부추김을 받는 게, 아아. 읽기는 분명 쓰기를 촉발합니다. 읽으면 쓰게 됩니다.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의 채근이랄까요. 경험에서 온 예를 추가하자면,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초보 작가님들 보며 알게 된 사실인데요. 확실히 읽을수록 쓰는 동기는 잦게 찾아온다는 거였습니다. 무어라 하셨냐면요.
 
"책을 읽는데, 어느 날인가. '나도 이런 책 써보고 싶다'며 내면에 어떤 욕구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더라고요. 그렇게 책 쓰는 건 한참을 바라던 일이었어요. 그러다 이제야 용기 내요."
 
동기를 만나면 반드시 쓰게 됩니다. 목적쓰기가 아니라 '쓰고 싶다'는 마음의 채근 덕에 말입니다. 그렇게 촉발당한 쓰기는 가장 훌륭한 동력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만큼 좋은 동기는 없습니다. 억지나 부정은 없고요. (물론 쓰면서는 다양한 감정을 상대해야겠지만 보통)즐겁게 쓰게 됩니다.
 
그래서 쓰기의 관점에서 조차 읽기를 권합니다. 쓰고 싶게 하는 류라면 특히 에세이가 특효약입니다. 에세이는 '이만하면 나도 쓰겠다'하는 마음의 장벽을 낮춰 주기도 하고요(실은 까탈스러울 정도로 잘 써야하는 게 에세이지만 어쨌거나), 저 멀리 달나라까지 다녀올 필요 없이 곁에 있는 일, 그러니까 오늘 내게 있었던 일과 어제 퇴근하며 내가 한 사유를 쓰면 그만이니 말이에요. 몹시 사소한 일상조차 타인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에세이의 큰 매력일 테지요. 사람살이, 즉 문학인 거죠.
 
그렇게 동기가 찾아오는 횟수가 늘면 끼적이는 날도 늘겁니다. 쓰고 싶어 쓸 테니까요. 결국 쓰는 날과 시간이 쌓이겠죠. 글이 늘겠죠. 글은 쓴 만큼 늡니다. 정비례는 아니지만, 상승곡선인 건 분명합니다. 죽이 되건, 이유식이 되건, 밥이 되건, 허나 찰진 약밥을 기대하며 꾸준히 쓰는 이유는 그뿐이겠고요.
 
그리하여 오늘은 쓰기 대신 가볍게 읽기 어떨까요. 쓰고 싶어 안달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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