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거리 폐지'가 구청장 공약?

'공약'인가 '말바꾸기'인가?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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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cfoi)등록 2022.08.29 18:20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이래로 '차 없는 거리'로 각광 받았던 신촌 연세로. 신촌물총축제와 맥주축제, 버스킹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사랑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로 인해 신촌을 찾는 방문객들이 줄어든 것에 이어, 최근 서대문구가 연세로에 차량 통행을 재개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차 없는 거리'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서 공연을 즐기는 시민들 ⓒ 서대문구청 블로그

 

지역 상인들이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 차 없는 거리 폐지가 필요하다는 동의서를 제출하고, 반대로 신촌 지역 대학생들과 환경단체가 교통안전과 대기오염 우려, 문화공간 축소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신촌 연세로 문제를 다루는 언론 기사들도 쏟아졌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관련 기사들 ⓒ 네이버뉴스

 

신촌에 사무실을 둔 단체 활동가 입장에서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던터라 언론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사 내용들을 살펴보면 신촌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차 없는 거리')에 차량통행을 재개하려는 서대문구의 계획을 설명한 뒤, 지역 상인과 인근 대학 학생들의 인터뷰 코멘트를 찬반 입장 모두 골고루 싣는 구성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사들을 살펴보다가 몇몇 기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폐지가 이성헌 현 서대문구청장의 선거 공약이었다고 소개한 기사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차 없는 거리 원상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표현한 동아일보 기사 ⓒ 동아일보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지방선거 당시 '차량 통행 전면 허용' 정책을 제시했다고 소개한 전국매일신문 기사 ⓒ 전국매일신문

 

예를 들어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이성헌 구청장이 차 없는 거리 원상 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표현하고 있고, 전국매일신문은 지방선거 당시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하는 공약을 제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성헌 구청장이 지난 6.1 지방선거 당시 '차 없는 거리 원상복귀'나 '차량 통행 전면 허용' 등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는 설명은 틀린 설명이다. 이는 현재 서대문구가 추진하고 있는 '차 없는 거리 폐지'가 마치 선거 때 내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6.1 지방선거 5대 공약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성헌 구청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5대 공약 중 하나로 "신촌 지역 신대학로" 조성을 내걸었다. 신촌 지역 대학가를 젊은 문화 소비자들이 모이도록 유인하여 신문화 상권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인데, 흔히 신촌 연세로를 포함한 '신촌-이대 상권'이라 불리는 지역에 대한 공약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고, 차량 통행을 재개하겠다는 말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공보물 중 교통 정책에 대한 서술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약서에 이 내용이 없다면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성헌 구청장의 선거공보물을 찾아보면 교통 관련 공약이 있는데, 여기서 신촌 연세로가 등장한다. "연세로 차 없는 거리 상생 개선방안 마련"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역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연세로를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시키겠다는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상생 개선방안'이 곧 '차 없는 거리' 폐지라고 일반적인 유권자들이 해석하기에 매우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선거 공보물 신촌동 공약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공보물에서 신촌동 지역 공약을 소개하는 부분에 '차 없는 거리'가 다시 등장한다. "보행자와 소상공인 모두를 위한 전면개편"이라는 애매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앞서 나온 '상생'이 "보행자와 소상공인의 상생"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차 없는 거리 정책을 전면 개편한다는데, 그렇다고 해서 '차 없는 거리'를 폐지하겠다거나 차량 통행을 재개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선거공보물에 실린 공약이라고 보기엔 전반적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호한 표현을 반복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성헌 구청장은 후보 당시에도 '차 없는 거리'에 차량 통행을 재개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으나, '차 없는 거리'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저런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구청장이 선거 당시에는 '차 없는 거리'를 폐지한다거나,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한다는 공약을 내세우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구청장이 내세우지도 않았던 정책이 어느새 선거 공약처럼 변신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처음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직후 이성헌 구청장이 당선자 신분으로 진행한 언론 인터뷰였다.

 

지난 6월 27일 공개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인터뷰 ⓒ 투데이신문

 

이성헌 당시 당선자는 지난 6월 27일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취임 첫 행정업무로 '차 없는 거리'를 원상회복 시키겠다고 밝혔다. 그 직후인 6월 29일, 서대문구청장직 인수위원회는 올 연말 부터 신촌 연세로의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교통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순서를 따져보면 '차 없는 거리'를 없애겠다는 것은 선거 공약이 아니라, 당선 직후 일종의 말바꾸기를 통해 나온 정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언론 기사들은 왜 '차 없는 거리' 폐지가 이성헌 구청장의 선거 공약이었다고 설명했을까? 여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다. 기자가 자료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기사를 썼거나, 아니면 취재를 위해 문의를 한 서대문구청 측에서 선거 공약이라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문제가 있지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더욱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그 정책이 선거 공약이었다면 당선 이후에 이를 추진하는 것은 선거라는 절차를 거친 정당성이 실리기 마련이다.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원래 공약으로 내걸었던 내용이 아닌데, 마치 애초부터 공약이었던 것처럼 정책을 포장하여 추진하는 것은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를 둘러싼 문제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첨예하게 나뉘는 문제이고, 인근 대학의 학생들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인해 언론의 관심이 더해져 정책이 계속해서 추진될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만약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단체장 개인의 입장에 따라 추진하면서, 마치 그것이 공약이었던 것처럼 은근슬쩍 말을 바꿔 진행하는 사업들이 있는지 주민들이 하나 하나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이 역할을 해야할 언론들이 공약인지, 말바꾸기인지 제대로 팩트체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더 주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정책공약마당 웹사이트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책·공약마당'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정당의 정책이나 선거 당선인들의 공약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선인 공약 확인하기' 메뉴를 통해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내건 선거 공보물, 공약서, 5대 공약 등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서 새로 당선된 단체장이 선거 때 내건 공약과, 지금 추진하려는 사업이 과연 같은 내용인지, 아니면 교묘한 말바꾸기인지 직접 감시해보자.
덧붙이는 글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블로그(opengirok.or.kr)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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