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 만나던 동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작게 운영하고 있는 글방에서 인연 한 이들인데, 모니터의 냉기 대신 살갗의 온기가 그리워진 모양이다. 모이자는 제안에 9월 어느 날, 우리는 서울 모 비건 레스토랑에서 만났고 글방 식구 일곱이 테이블에 삥 둘러앉게 되었다. 해바라기를 닮은 가을날이었다. 일곱은 제각각이었다. 오직 '글'로 연대한 사이이므로 우리의 상황은 같지 않다. 저 멀리 대구에 사는 박부터 인천에 거주하는 장, 하남에 거주하는 최, …. 나이는 대략 30초반부터 이제 곧 50까지 20년을 아우르는 스펙트럼이었고, 직업이며 취향 모두. 솔로도 있고 기혼도 있으며 기혼에 자녀가 있는 이도 있었다. 이토록 다른 우리였지만, 순간마다 떠오른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거침없고 다양한 이야기들이었다. 가령 아이 몰래 '담배 피우다 아이에게 들켜버리면 어떡하지' 하고 피울까 말까를 고민했던 이야기, 예술에 관한 이야기, 자녀양육으로 고되었던 이야기, 오히려 글쓰기는 한참이나 밀렸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자연 같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살며 이 시간만 기다렸다는 듯, 여기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듯 사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가 우리 일곱에게로 퍼져갔다. 그러다 불현 듯 박이 말했다. 그의 과거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도 그를 과거로 떠밀지 않았건만, 그가 자처한 일이었다. "정신과에 다닌 적이 있어요. 회사 다니며 같이 분투하던 동료가 세상을 등지고 멀리 가버렸거든요. 한동안 병원에 다녀야했죠. 놀랐던 건 아픈 사람이 많았다는 거예요. 환자 줄이 너무(그는 '너무'를 오래 발음했다) 길어서,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어요. 진료하는 정신과 의사 수는 한정적이고 환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으니까요." 회고하는 듯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던 박 눈망울을 기억한다. 그러더니 박이 이어 말했다. "내면을 갉아먹도록 아픔을 삭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진료만 기다리던 그 수많은 환자들 수가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마음 터놓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뿐이었던가요. 아닌 거 같아요.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그 뒤로도 줄을 기다리며 내가 무얼 하고 있는가 생각했다고 했다. 아픔을 치유받기 위해, 황량한 이곳에 나보다 더, 어쩌면 그보다 더 시름하고 있을 이들과 여기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자기 아픔의 이면을 들여 보게 한 것이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듯 이야기를 마친 박은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세상을 등진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는 이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을 다녀도 호전되지 않아 지금껏 주기적으로 다니는 이도 있었다. 티 안 나게 아픈 사람들. 내면이 곪아 진물로 물든 이들. 집에 가는 길, 작은 생각들을 했다. 본연의 자신을 타인과 나눌 마땅한 곳이 없었기에 박이 정신과에 가야했던 것 아닐까. 오늘 같은 자리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병이 되기 전 할 수 있던 일은 없었을까.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타인과 공유하고 타인에게서 있었던 비슷한 일로 위로 받고 연대감을 느끼고, 적어도 고백해주었다는 것만으로 응원 받을 수는 없는 걸까. 그것이 꼭 정신과 의사만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박은 충분히 솔직했고 적어도 우리에겐 말할 수 있었다. 그게 너무 중요했다. 우리에겐 연대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가 주창하는 연대의 색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이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제야 비로소 내면으로 침식하지 않고 발산되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이 늘어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것도 전제되지 않는, 나이 성별 직업 연봉 따위는 그들 얼굴과 이름 앞에 무용이 되어버리는. 서로 다른, 그래서 배울 수 있는 연대 말이다. 배움의 전제는 다름과 차이이다. 그렇게 다름과 차이에서 배우다 보면 서로를 포용하는 마음 공간이 넓어지고, 그 공간으로 타인을 수용하고, 수용만큼 터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는 박과 박의 동료와 같은 이가 있어선 안 되므로. 나는 생각해 본다. * 그러나 사유에 그치지 않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하나있다. 박의 회고 짙은 과거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여기 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지려는 사람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쓴 이 글이 내 뜻과 같이 온전한 채로 수신되기를 바라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달라지지 못했을 것이다. 박의 고백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대감 #정신과치료 #마음이아픈사람들 #공동체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