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해례본은 과연 2권뿐일까?"

-'제3의 훈민정음해례본 찾기 범국민운동'을 제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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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82leeanmbc)등록 2022.10.09 13:47
"훈민정음해례본은 과연 2권뿐일까?"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을 기념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이자 공휴일이다. 올해는 마침 일요일이어서 다음 날인 월요일을 대체 공휴일로 지정해 사흘 동안 연휴다. 500여 년 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 덕분에 후손들이 연휴를 즐기게 된 셈이다. 
  

세종대왕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 위키백과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이 발견된 것은 지난 2008년 7월이다. 안동 MBC 보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고 "무가지보, 1조, 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현 소유자가 숨겨 두고 있을 뿐 세상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알다시피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는 1940년 안동에서 처음 발견돼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금을 주고 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책자가 발견되면서 그동안 불확실했던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제대로 알게 됐고, 훈민정음이 얼마나 위대한 우리 글자인가를 인식하게 되었다.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1940년 간송 전형필이 안동에서 구입한 훈민정음(해례본). 국보 제70호 ⓒ 경향신문 자료

 
또 상주본의 발견으로 간송이 소유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진본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간송본과 상주본은 똑같은 목판으로 찍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일제 강점기 때의 위본이라는 주장이 같은 판본인 상주본의 등장으로 허구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학계에서는 간송본과 상주본이 같은 목판본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다. 그럼 현재 남아있는 간송본과 상주본 이외에 출간된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목판으로 만들면서 딱 2권만 찍었을 리는 만무하고 수십 권, 아니 수백 권의 책을 인쇄했음은 분명한데도 현존하는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는 2권이 전부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 2008년 상주서 발견돼 안동MBC가 최초로 보도한 훈민정음(해례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 ⓒ 안동MBC

 
일부 학자들은 조선 시대 '언문 벽서' 사건으로 화가 난 연산군이 언문(훈민정음)으로 된 모든 책자를 없애라는 어명을 내리면서 언문 관련 책자가 사라지게 됐고 이때 훈민정음(해례본) 책자도 희생됐다고 말한다. 최초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도 맨 앞 두 장이 없던 것도 이런 연유라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책자의 맨 앞 두 장은 당시 간송에게 책자를 판매한 이모 씨가 대필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연산군의 어명이라도 당시 책을 중시했던 양반들이 언문 관련 모든 책을 없앴을까? 아니면 간송본처럼 앞장만 찢어버리고 어딘가 감춰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훈민정음(해례본)은 왕실에서 출판해 하사한 책이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왕이 하사한 책은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겼을 터이고 그 귀중한 책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의 원 소유주였던 안동 진성 이 씨 집안에서도 이 책자가 임금의 하사품이었다고 증언한다.
 
이에 따라 간송본은 왕실 출판본이었고 왕이 하사한 책자란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판본과 똑같은 상주본도 역시 왕실본이고 임금이 하사한 책이란 사실로 이어진다.
 
그럼 조선 시대 목판 인쇄문화 특성상 한 번 인쇄하면서 한두 권만 찍었을 리는 만무하다. 수십 권에서 수백 권의 책을 인쇄했을 터이고, 수백 권을 찍어 공신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합리적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제3의 훈민정음(해례본)'을 찾아야 한다.
 
국어학자들은 세종 때에 훈민정음(해례본)이 적어도 2~300권은 발간됐으리라 여기고 있다. 출판을 위해 목판이 만들어졌고, 목판으로 많은 책을 생산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연산군 박해로 상당수가 사라졌다고 가정해도 간송본이나 상주본처럼 아직 이 땅 어디엔가에 남아있음이 틀림없다. 이 훈민정음(해례본)을 찾아야 한다.
 
지난 5월 문화재청이 상주의 한 다방을 뒤졌다고 한다. 현 소장자인 배 모 씨가 잘 다니는 동네 다방에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을 숨겨뒀다는 제보에 따라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은 현재 국가이다. 2011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소유권을 되찾은 조 모 씨가 사망하기 전에 국가에 기증하면서 현재 상주본의 소유자는 국가이다. 다만 현 소장자인 배 모 씨가 숨겨 두면서 국가가 이를 찾지 못할 뿐이다.
  

훼손된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 2015년 화재로 일부 불에 탄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 현 소장자가 언론에 공개한 사진이다. ⓒ 현 소장자

 
문화재청은 배 모 씨가 숨겨 두고 있는 상주본에 대해 더 매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상주본은 간송본과 같은 판본으로 학술적 가치가 없다. 그리고 상주본에 쓴 필사 또한 국어학에서 알려진 내용으로 더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게 국어학자들의 지적이다. 다만 한 권뿐이었던 간송본 이외의 훈민정음(해례본) 책자가 추가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배 씨는 상주본을 다른 데 팔 수도 없다. 소유권이 국가에 있기에 누구든지, 어느 기관이든지 상주본을 사면 불법이 된다. 매입한 측에 소유권이 넘어가지도 않는다. 문화재청이 배 씨로부터 상주본을 살 수도 없다. 국가가 소유한 것을 국가가 다시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배 씨가 상주본을 내놓지 않는 한 상주본은 영원히 배 씨가 소장할 뿐 다른 어떤 행위도 할 수가 없다. 그냥 배 씨가 갖도록 하면 된다. 더 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하다.
 
문화재청은 제3의 훈민정음(해례본)을 찾는 데 집중하면 좋겠다. 세종 때 수백 권의 책자가 발간됐음은 분명한 만큼 이 땅 어디엔가 소유자도 모르게 남아있을 훈민정음(해례본)을 찾아 세종 대왕의 위대한 우리 글자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되살리면 더 좋겠다.
 
'제3의 훈민정음(해례본) 찾기 범국민운동'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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