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ㅡ소월 ▲ 두물머리 여명(黎明) ⓒ 장애라 금강산에서, 그리고 대덕산, 함백산 사이 기슭, 검룡소에서, 굽이굽이 흘러내린 두 강물이 서로 만나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는 지나온 거리 만큼, 만난 시간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고요히 깊은 밤을 지나 아직 해가 깨우기 전인데도 연푸른 이야기들이 살살 피어 오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하늘 어느새 강을 가득 채운 이야기는, 풀을 덮고 나무를 덮고 산을 덮는다. ▲ 두물머리 물안개속 섬 ⓒ 장애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강의 이야기를 듣는다. 강가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구렁이가 살았다는 이야기, 옛날 이웃 섬나라 침략군이 그 나무를 베려다 손이 잘렸다고 하고, 전쟁 등 큰 변고를 그 구렁이가 미리 알려준다고도 했다. 어느 예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간절한 소녀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한 것들을 지켜 온 그 나무를 영화에 담는다.(조정래 감독 영화 '귀향') 강이 풀어놓은 나무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사람들은 어느새 키 큰 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남쪽, 북쪽에서 서울로 오가던 사람과 말이 먹고 쉬고 가던 곳이라, 한때는 말죽거리라고 불렸다는 이곳으로 용이 되고 싶어 머나먼 서해 바다에서부터 물길 따라 이 곳을 지나간 어느 이무기의 이야기는, 한 동화작가의 손길을 거쳐 어린이들의 상상에 찬란한 날개를 달아준다 (최형미 작가 동화 '용빵 가족'). ▲ 두물머리 강변 나무들 ⓒ 장애라 두 강이 웅장하게 합쳐지면서 이룬 풍경의 특별함을 알아차린 화가는 아름다운 진경산수화를 한 폭 남기고(겸재 정선, '독백탄'), 두물머리 가까운 동네에서 태어난 한 천재는 그 아름다움을 시로 전한다(다산 정약용, '귀천시조'). 그 선한 영향은 힘이 세다. 주변까지 크고 아름답게 꾸며 놓는다. 하늘과 강이 형형색색 꽃을 피우는 넓은 정원을 펼치는가 하면(수변생태공원 '물의 정원'), 바람과 햇살이 매번 다른 그림을 만들어, 그냥 하염없이 강과 산만 바라보아도 좋을 명소 자리를 내어준다(다산지구공원). 강변 쇠말산과 마재고개를 넘어 엄마품 같은 마당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마재마을). 물새와 연꽃이 사이 좋은 호수를 지나 작은 언덕을 걷노라면 내가 물인지, 강이 물인지 함께 일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 먼 타국, 벽안의 외국인 등산객들이 두물머리와 마재마을을 걷고나서, 끊임없이 자랑하던 그들의 피레네(유럽남서부 산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참 다르지만, 못지 않게 아름다운' 경치라며 극찬한 적이 있다. 작은 강마을의 풍경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등극한 순간이다. ▲ 두물머리 일출 ⓒ 장애라 물안개로 피어난 강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태양이 떠오른다. 물안개는 갑자기 바빠진다. 오늘도 다 못 풀어 놓는가? 해가 뜨자마자 움직임이 빨라진 이야기들은 서둘러 강변을 향한다. 이렇게 그들이 허둥지둥하는 것은, 하늘이 쉽게 그들의 수다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날의 우주가 알맞은 체온으로 강을 어루만져주고 낮에는 태양이 온 힘을 다해 일을 해야하며, 밤이 급격히 식혀놓은 강 위에서 바람이 잠을 자야한다. 물 욕심으로 깊은 강에서는 물안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다. 강변에서 엄마와 누나는 금모래빛 물안개의 오늘 마지막 노래를 듣는다. 참 고마운 평화. 두 강이 한강으로 만난 것처럼 무수한 줄기로 피어오른 물안개와의 특별한 만남은 강의 이야기를 듣는 기적을 낳는다. 강변에서 내내 살고 싶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강변 집은 비싸다. 물안개를 만날 확률도 비싸다. 아쉽게 돌아서며 엄마와 누나는 이야기를 하나 슬쩍 던져놓는다. 강의 이야기를 듣기 전 태산 같던 그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중 아주 작은 한줄기 물안개로 강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오늘처럼 좋은 가을 날, 강이 피어올릴 한 줄기 그들의 이야기가 뭇 사람들에게, 오늘 그들이 받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 두물머리 가을 아침 ⓒ 장애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두물머리 #물안개 #일출 #가을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