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수표보다 값진 번호표, 세상가장 따뜻한 떡만둣국

추운 날씨도 거뜬히 이겨내게 하는 누군가가 보내는 따뜻한 눈빛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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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yumi05)등록 2022.11.08 13:57
  

따스한 온기와 함께 내민 그분의 값진 번호표 ⓒ 이유미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배려를 받는 순간이 종종 있다. 특히 아이 한 명이 더 추가되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엔, 마치 드라마속 캔디같은 여주인공을 보는 것과 같은 그 안쓰러움과 짠함이 묻어난다. 최근 나는 그런 따뜻한 시선을 가진 분들로 부터 여러번의 배려를 받았다. 
        백지수표보다 번호표-은행에서 만난 귀인
 얼마전, 수족구에 걸린 17개월 둘째를 데리고 은행에 들렀다. 요즘 예적금 금리가 오른 탓에 그 안은 사람들이 북적하다.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 받은 내 번호 72번, 대기인수 12명..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설상가상 몸이 아픈탓에 낑낑대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둘째. 밖은 추워 혹여나 감기까지 걸릴까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우는 아이를 토닥이는데 옆에 앉은 무심한 중년신사분이 나를 불편한듯 흘끔거리신다.
 아이가 시끄럽게 해 심기가 불편한가 싶어 내심 속으로 신경이 쓰였다. 뜻밖에도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온다.
"몇번이세요?" 나는 잘못들었나 싶어 "네?" 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런 내게 자신의 번호표를 슬그머니 눈앞에 내밀며 "65번인데 바꿔요" 그분의 무심한듯 툭 던진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72번 번호표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분은 조용히 내 손의 번호표를 톡 뽑아가셨고, 나는 얼결에 그분이 내민 65번을 슬그머니 집어들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순간"띵동,65번 고객님" 이라는 창구 직원의 목소리에 후다닥 자리에 달려가 앉았다. 덕분에 긴 기다림없이할일을 마쳤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65번 번호표가 내 손에 여전히 들려있었고 ,예상치 못한 중년신사분의 호의가 다시금 떠올랐다. 세상 무심한 듯 보였던 그분은 옆자리 애기엄마의 힘듬을 눈여겨 보셨고, 그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자신의 번호표를 선뜻 내주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은행을 나오니 냉기를 가득 머금은 겨울바람이 내 뺨을 세차게 때린다. 하지만 은행 안에서 받은 그분의 배려가 내 마음에 뜨거운 온기를 주입해주어, 그 따뜻함이 몸속 혈관까지 구석구석 타고 돌며 앞으로의 추위도 거뜬히 버티게 해 줄 것이다. 그날 그분의 번호표는 백지수표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내 기억에 선연히 남아있다.
     세상 가장 따듯한 떡만둣국-병원에서 만난 귀인들
 콜록콜록, 불협화음 같은 두아이의 기침소리에 아침부터 급히 짐을 챙겨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 대장정의 길이 열렸다. 예약하지 않으면 꼬박 두시간이 넘는 고행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진료 시간을 앞당기려소아과 데스크를 향해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나는 최대한 간절한 눈빛으로 진료대기시간을 물었다. 이내 그 눈빛을 묵살해버리듯 간호사의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온다. "한시간에서 세시간정도는 대기시간 있을 수 있어요" 무시무시한 대기시간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빠른 체념을 하고 그 시간에 밥이라도 먹자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1층 식당으로 갔다. 
 두 아이가 함께 먹을 수 있는 무난한 떡만둣국과 호박죽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정수기의 물을 뜨러간사이, 17개월 둘째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식당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뛰다시피 자리로 돌아가 둘째에게 물을 주며 다독였다. 
 마침 음식이 나왔다.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두아이 먹을 떡국을 앞접시에 나눠담고 후 불어 한김 식힌다. 첫째 아이를 떠먹이고, 이어 둘째아이를 떠먹이기를 기계처럼 반복한다.이 과정도 순탄치않다. 둘째는 먹고 뱉기를 일삼으며 바닥을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만들고, 첫째는 유튜브를 틀어달라 아우성이다. 이들이 순식간에 만든 전쟁통에 내 얼굴은 땀범벅이되었다.
 그때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정신없는 우리의 식탁에 물통과 컵을 조용히 놓고 가셨다. 갑자기 훅 불어온 따스한배려에 흩날리던 정신이 번뜩 돌아왔다. 시선은 아이들을 향한 채 감사하다고 연거푸 인사 했다. 
 배려는 실타래처럼 이어졌다. 아내분은 첫째에게 간간이 오셔서 떠먹여주시고, "잘먹네 아가"라며 따뜻한 말도 잊지 않으셨다. 둘째가 잘먹는 단무지도 직접 가져다 주셨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차례가 되었으니 얼른 와서 대기하세요" 간호사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한데 다녀와서 더 먹고 치울게요"라는 말을 허공에 흩날리다시피 하며두 아이를 잡아끌고 진료실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갔다.
 진료를 받은 후 내려온 식당, 말끔히 정리된 테이블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니 주인내외분이 식은 떡만두국을 다시 데워 가져다 주셨다. 첫째 아이는 주인내외의 따스함이 더해진 뜨끈한 국물과 떡을 먹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숨 돌린 나는 그제서야 떡만둣국을 한술 입에 떠넣었다. 등 뒤에서 식당 주인 내외분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가 내귓바퀴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들어왔다. 
 "애기 엄마가 둘 데리고 참 고생이네, 안쓰럽다"
"그래도 똘똘하게 둘 잘챙긴다,대단하네"
작게 읊조리는 대화였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 속에 콕콕 날아와 박혔다. 순간 울컥한 마음에 수저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늦은 아침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오는 데, 내 마음 속은 마지막 한술을 먹을 때 까지 식지 않은 떡만두국의 훈기로 가득 차올랐다. 그때 먹은 떡만둣국은 세상 가장 따뜻한 음식으로 내 기억 속 한 켠에 자리잡았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배려들을 받고 나면,어릴 적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듯 누군가가 내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 준 것 같아 밥을 먹지 않아도 속이 든든했다. 
 바람이 품은 냉기가 점점 거세어지는 겨울이 오고 있다.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이 냉기를 물러나게 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힘들고 지친 수많은 "나"들을 향해 내리쬐는 다정한 그 눈빛들이 아닐까?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해가 저물고 있다. 지금 이순간차갑고 어두운 겨울밤을 잔뜩 움츠러들어 걷고 있을 누군가의 주변에 마법처럼 따뜻한 눈빛들이 내리쬐어, 가는길내내 따스히 밝혀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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