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균열의 시대: 사회정책의 재도전"이라는 주제로 '2022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공동학술대회 중에는 '절망사(deaths of despair)'를 주제로 "오래된 미래, 한국의 절망사"라는 학술 토론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절망사
절망사는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앤 케이스(Anne Case)가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한국경제신문, 2021)"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1990년대부터 2013년까지 미국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사망률이 낮아지는 것과 반대로 미국의 저학력(고졸 이하)·저소득 중년(45세에서 54세)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기대수명이 낮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추적한 결과 자살, 알코올 중독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폐암 같은 다른 사망원인으로 인한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왜 이들은 평균 수명보다 이른 중년의 나이에 자연사가 아닌 방임과 자기파괴로 인해 사망하고 있는 것일까?
대다수의 저학력 노동자들은 세계화와 산업·경제 체제의 변화에 노출되면서 노동시장 불안정, 소득감소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기 어려워지게 되고, 지역사회 참여가 더욱 위축되었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이들은 결국 '누적된 불리함(cumlulative disadvantage)'과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게 되고, 다차원적 절망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알코올 또는 약물을 과다 복용하게 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죽음을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여 '절망사'로 정의하였다.
과연, 한국에서의 절망사는?
토론회에는 '절망사'를 주제로 네 명의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우선 한국교원대학교 상종열 겸임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키에르케고르의 사유를 중심으로 절망에 관한 철학적, 신학적 고찰"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어서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상준 교수가 "절망사 개념과 국내 절망사 연구의 실태에 대한 고찰"을, 예명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 권진 교수가 사망원인 통계와 사회조사자료의 실증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절망사는 무엇이며,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꽃동네대학교 김미숙 교수가 "언론에 보도된 과로사 기사의 텍스트 네트워크 분석 및 시사점" 발표를 통해 한국형 절망사의 단면을 탐색했다(관련 자료는 https://bit.ly/2022kpolicy 링크 클릭).
네 명의 연구자들이 준비한 발표를 들었지만, 한국에서의 절망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 현상이 나타나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앤 케이스(Anne Case)가 제시한 절망사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구성요소에 대한 논증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자살, 알코올 중독, 약물 과다 복용의 세 가지 원인에 따른 죽음 모두를 절망사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째, 세 가지 원인으로 사망하는 특정 사회계층은 누구인지, 둘째, 이렇게 사망하는 특정 사회계층이 직면한 사회 맥락과 현상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절망사'하는 특정 사회계층과 그들이 직면한 사회적 맥락과 사회 현상은 무엇일까? 발표 자료에서는 한국사회 절망사 관련 연구 결과로 자살과 알코올 중독, 약물 관련 사망 통계자료를 성별, 학력, 연령으로 구분해서 사망자 추이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시한 통계자료를 절망사의 근거로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 한국의 절망사 토론회 “오래된 미래, 한국의 절망사” 학술 토론회에서 발표자가 발제하고 있다. ⓒ 박진옥
마지막 발표에서는 '과로사와 절망사의 연관성 탐색'을 시도했다. 연구자는 "과로자살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절망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음"으로 결론 짓고 있다. "살인적 노동시간, 실적 압박 등 절망적인 환경에서 선택되는 인위적인 생명의 단절"이기 때문에 과로자살을 절망사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로자살을 산업재해 사망이 아닌 절망사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절망사로 규정할 경우 개인적 요인이 더 두드러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절망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도 자살과 알코올 중독, 약물 과다 복용에 따른 죽음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죽음을 절망사로 규정했을 때 어떠한 차별점과 연관 관계가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절망사의 관심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절망사의 주요 관심 사항은 '죽음 문제'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삶의 문제'이다. 사망원인 앞의 '누가'와 '왜'도 중요하다. 고독사 정책이 고독사라는 죽음이 아닌 '사회적 고립과 단절'을 예방하고 관계를 형성해서 고독사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앤 케이스(Anne Case)가 절망사를 제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하면 검시는 하지만 부검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일본은 변사자의 경우도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절망사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에 더 다양한 정보가 기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망진단서, 시체검안서에 포함할 항목에 대한 논의와 부검에 대한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는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전 생애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고독사, 무연사, 절망사 없이 존엄하게 살다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다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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