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한다는 전화를 들었다. 김장을 마친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에게 드릴 김치와 겨울 내복과 양말을 챙겼다. 김장한 김치 간이 베이지 않아서 그런지 유독 배추 맛이 달큰하다. 어쩌면 엄마가 직접 농사지은 배추라서 더욱 달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도 농사만 짓고 사셨다. 명절 때 차 밀릴 것을 염려하여 어두운 저녁에 출발해 열 시간 가까이 걸려 전라남도 광주 임곡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꼭두새벽부터 밭일을 하고 계셨다. 시골에 도착하면 외할머니보다 나를 더욱 반기는 것은 강아지였다. 명절에 할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은 언제나 똑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는 없었고 냄새나는 청국장과 구운 김, 간장, 김치 그리고 비린 조기 몇 마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간혹 삼촌 식구가 올 때면 그날 밥상에는 먹음직스러운 갈비찜이 놓여 있었다. 이제 외할머니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열 시간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가 있는 곳은 경기도 덕이동에 위치한 H요양원. 우리 집에서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까지 자동차로 50분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왕복 스무 시간 되는 거리는 곧잘 따라 갔으면서, 왕복 두 시간 걸리는 요양원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한 달 전 요양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외할머니도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큰 이상 없이 격리 해제되셨지만, 할머니가 앞으로 언제까지 살지 모른다는 엄마의 그 말을 평소처럼 흘려듣지 못했다. 오늘은 엄마를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돈을 주면 알아서 몸이 쇠한 노인을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케어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3년 전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우리 집에 계시다가 요양원으로 가셨다. 나는 매번 할머니 끼니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훨씬 편했다. 엄마 역시 외할머니를 편하게 모시기 위해 요양원으로 보내드렸다. 그 선택은 순전히 외할머니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쩐지 요양원을 가는 엄마의 걸음이 마냥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요양원에서 예외적으로 급하게 저녁 면회를 허락했다. 이유는 한동안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 않은 이유가 격리 때문이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 할머니의 식사 거부 때문이었다. 깜깜한 저녁 도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는 문득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먼 훗날의 내 모습이 보였다. 요양원으로 향하는 엄마를 보러 훗날 나도 지금처럼 요양원으로 운전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거동이 불편해지는 날이 오겠지. 명절을 쇠고 다시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엄마에게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 어렸을 때도 할머니가 남자 형제들하고 차별해서 서러운 경험 있었어?"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어렸을 적 밥상에 고기 반찬이 올라오면 남자 형제들부터 먹으라고 챙겨줬다고 했다. 엄마는 결국 형제들이 먹는 모습만 본 채로 밥에 동치미만 먹었던 기억이 서러웠다고 말했다. 3년 전 할머니는 그토록 각별하게 챙겼던 맏아들 집 대신에 육 남매 중에서 다섯 째 딸인 엄마 집을 선택했다. 명절이 되면 외가 댁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서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함이 돌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할머니가 밉고 싫었다. 평소 엄마가 집을 비우면 거실 소파를 차지한 할머니는 남동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꼭 내가 거실로 나오면 밥을 차리는 것부터 물건 가져오라는 사소한 심부름을 시켰다. 사실 할머니 밥을 차리는 일이 번거로운 편은 아니었다. 육식을 드시지 않는 할머니는 시골에서 나에게 차려주었던 것처럼 밥과 김과 김치면 충분했다. 나에겐 차별이었던 반찬들이 할머니 본인에겐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밥상이었다. 그러나 남동생에겐 시키지 않는 밥상을 차리라고 하는 그 지시가 싫었다. 당시에 나는 할머니 밥 차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곧 할머니의 차별을 거부하는 정당방위라고 여겼다.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말했던 할머니가 스스로 요양원을 가겠다고 했을 때 하루 종일 보는 텔레비전에서 요양원 관련 프로를 보았나 싶었으나,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왜 요양원을 가겠다고 한 것인지 들어보지 못했으나,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언젠가 혼잣말로 요양원에서 알아서 제때 밥도 주고, 불도 꺼주니 편할 것이라고 했다. 요양원은 알아서 해주는 편한 곳이라는 그 말을 믿었다. 그 편함을 얻기 위해 집이라는 편함과 바꿨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다. 요양원 가는 길이 언젠가 나도 죽기 전 머물러야 할 정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숨이 조이듯 답답해졌다. #요양원 #외할머니 #르포 #에세이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