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의 비밀

아이에게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들킨 날카로운 크리스마스의 추억

검토 완료

이가은(panadoll)등록 2022.12.16 10:32
바야흐로 때는 아이가 일곱 살 무렵.
아직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고 있을 무렵이었다.


"엄마 나 크리스마스 선물 뭐 줄거야?"


아니 크리스마스 선물은 두 달 전 벌써 다른 장난감을 사 주면서 퉁 친것 같은데 아이는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의뭉스럽게 말했다.

얼마 전 어린이집 엄마들끼리도 하원 길 산타에 대한 설전이 오갔던 차였다. 해마다 어린이집에서는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하시는 선생님이 계신데, 이제 졸업할 연수가 되는 일곱 살 아이들은 이미 산타의 존재에 대한 눈치가 빠삭하다는 것이었다.

"애들도 다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거래요."
"네?"
"없다고 하면 선물 못받을 수도 있잖아요."
'아~!!!'하는 깊은 깨달음이 왔지만, 그런가 하고 웃으며 넘겼었지.

단호하게 "너 지난 달에 선물 먼저 받았잖아." 했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 워킹맘의 자아가 깨어나 버렸다. 평소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축은함이 몰려온것이다.
'그래 이 녀석아 엄마가 한 번만 더 속아준다.'

"선물로 뭘 받고 싶은데?"
"응 레*. 그걸로 성 만들고 싶어요."

아이는 당시 한참 몰두해있던 조립식 블록을 말했다. 블록으로 공주가 사는 예쁜 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날은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 즉 12월 23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아 방심하고 있었는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 선물은 당장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나."



| 크리스마스 선물 구매 대작전

일단 매장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어려서 떼놓고 나갈수도 없다. 그렇다고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함께 장난감을 사러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반 택배로 크리스마스까지 받는 것은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당장 당일배송이 되는 곳!!!!!!



| 촉박한 마감시간에 타는 건 내 마음 뿐

예상은 했지만 아이에게 적당한 블럭들이 거의 품절이었다. 겨우 당일 배송 가능 마트에서 가격도 아이의 연령대에도 적당한 블럭을 찾을 수 있었다. 가격도 물론 조금 더 비쌌지만 그런것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당일도 아니라 내일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이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뭐가 어쨌든 다 접어놓고 아이의 동심은 조금 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어릴 때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소중했으니까. 아이도 그런 추억을 조금은 더 쌓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었다.

배송일을 체크하고 결재를 완료했다. 이제 도착하면 잘 숨겼다가 포장을 해서 주는 일만 남았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커다란 비밀의 상자가 열릴 줄도 모르고.



|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빌런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을 뿐

선물이 배송 되기로 한 바로 그 날.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보지 못하게 몰래 숨기고 잘 때 포장해서 머리 맡에 놓아 두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혼자 세웠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이 배송이 문 앞에 도착해 있었나보다. 
아이가 눈치채면 안되니까 "문 앞에 놓아주세요."를 체크를 했었으니 당연했다.

배송이 온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잠시 나갔던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들어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OO아, 문 밖에 엄마가 시킨 거 왔더라. 이번엔 엄마가 뭘 시켰을까?"

당시 아이는 택배오는 걸 좋아해서 그게 뭐든 다 열어보았었다.

'잠시만~! 뭐라고?'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우와~!!'하면서 신발을 신고 문 밖으로 나갔다. 황급히 아이를 뒤쫓았다. 현관문 옆쪽에 S*G라고 써 있는 커다란 종이 봉투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봉투를 열어보더니 그 속에 얌전히 들어있던 블록박스를 기어코 보고야 말았다. 

"뭐야~!!! 쓱배송 아저씨가 산타 할아버지였어?"

순간 나는 남편을 째려보았다. 
"아니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나는 정말 몰랐지."

'아이고야~~ 그걸 도대체 왜!!!'
입 속으로 수 많은 말들을 삼겼다. 미리 남편에게 말을 못한 내 잘못이지 뭐......

이렇게 우리집에서는 산타의 정체가 들통나고야 말았다.
아이에게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사실 산타 할아버지가 너무 바쁘셔고 엄마에게 선물을 부탁했는데, 엄마가 사러갈 시간이 없어서 쓱배송 아저씨에게 부탁했어."

"완전 동심파괴네. 쓱배송 아저씨가 산타라니."

그해 크리스마스.
어쩌다보니 나는 동심을 파괴한 엄마가 되어버렸고, 비록 들통은 나서 찜찜은 했지만 그 후로는 마음 편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고마워."
"뭐가?"
"이렇게 선물도 챙겨주고."

 

아이가 써준 크리스마스 카드 아이의 크리스마스 카드 ⓒ 이가은

 

아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이렇게 아이는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초등 고학년이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항상 자기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썰을 전설(?)처럼 풀곤 한다.

 

아이와 함께 만든 재활용품 트리 아이와 함께 재활용품들로 트리를 만들었다 ⓒ 이가은




그리고 이 추위에도 묵묵히 집 앞까지 배달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어쨌거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산타야 어찌되었던 간에, 모두 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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