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철옹성'은 무너질 수 없다
'휴전선'에 철조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라고 질문을 하면 한국인들 대부분은
눈치를 보며 머뭇거린다. 묻기 전에는 자신이 휴전선을 잘 안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휴전선엔 거대한 철조망이 쳐있고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도는 영상을 몇십년 간이나 보아왔는데 뜬금없이 '철조망이 '있냐 없냐' 고 물으니 이상하나. 휴전선에는 철조망이 없나?.
자난 해 8월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북한생활문화연구단 선임연구원 강주원 씨가 '휴전선엔 철책이 없다'란 책을 한권 펴냈다. 이분은 분단/통일문제를 화두로 안고 조/중 국경도시 단동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연구인이다. 이러한 전문연구인이 그의 저서에서 '나는 휴전선을 몰랐다'라고 소제목으로 고백하고 있다. 전문가도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 일반 시민들은 '휴전선' 의 진실을 모른다고 볼 수 있다. 없는 철조망을 스스로 쳐놓고 거기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높이며 굳혀가 결코 뚫릴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어 놓았다. 현실의 철옹성은 무너질 수 있으나, 가상의 '철옹성'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 IMG-1 염하 촐조망을 끼고 도는 평화누리길 제1코스 ⓒ 라영수
휴전선 별곡(別曲) - 통곡하는 노인들
'휴전선'을 바로 이해하기는 사실 어렵게 되어있다. 이제는 거의 '휴전선'으로 사용하나 '정전(停戰)' '휴전(休戰)' 부터 생각해야 했고, 민통선, 접경 지역, 남방/북방한계선, 휴전선 등 수많은 선(線)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나,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니다.
중공(中共)도 협정에 조인하였으나 중공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이 아니고 의용대 형태의 집단이었고 한국정쟁 후 해체되어 실체가 없어졌으므로 공식 당사국이 아니다. 미국(유엔)과 북한이 '휴전협정'의 당사국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지리한 협상을 타결하고자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를 타결일시로 미리 정해놓고 진행한 이상한 협상이었다. 이후, 뒤따라야 할 협상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휴전' '으로, 우리는 73년간이나 전쟁 중인 나라로 살아온 것이다.
어떤 뜻이든 전쟁이 멈추고, 전쟁이 아닌 '일상이 계속된다는 것' 만으로도 천국같은 행복을 느꼈다. 논밭을 다시 일구고, 집을 고치,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내일을 이야기하며 세월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세월은 갔다. 6.25때 청소년이었던 아이들이 벌서 저 세상으로 가야할 80대 백발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니 '아직도 전쟁 중'인 것이다.
아니, 아직도 전쟁 중이라 ?
우리 노인들이야 어차피 겪은 전쟁이니 어쩔 수 없으나, 어찌 죄 없는 우리 후손들에게 그 '끔찍한 전쟁'을 남겨주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이 지경에 이르도록 모르고 지나가버린 한 평생,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 노인들은 우선 '휴전선'을 생각했고, 그 철책 앞에서 통곡이라도 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경기도에 통일교육 관련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도움을 받게되고 '평화누리길' 12코스 중 버스가 닿고 철책이 있는 6코스를 골라 버스킹 투어를 나섰다.
그러나 제1코스부터 벽에 부딪쳤다. 도상(圖上)기획 된 6곳은 모두 휴전선과 무관한 곳이었고, 그곳에 있는 철책은 간첩방지용 철책이거나 민통선을 알리는 철책이었을 뿐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만 휴전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나 인원이 30명 이상이라 탐방이 거절되었다.
우리는 마음 놓고 통곡할 장소도 찾지 못해 싱겁게 되었으나, 계획된 행사니 포기하지 않고 매월 1코스씩,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간 6곳을 순방하였다.
'통곡'을 못하게 되자 동래학춤의 명인 박소산(笑山) 선생이 달려와 통일을 가로막는 악귀를 몰아내고 평화를 부르는 '나레짓'으로 우리의 울분을 대신 해주었다.
▲ img_2 소산의 학춤(임진강 주상절리) ⓒ 라영수
▲ img_2_1 휴전선 표시판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측) ⓒ 라영수
우리들은 '휴전선'이란 말을 의미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휴전선 별곡'에도 이 때문에 계획의 차질이 있었다. '휴전선'이 라고 부르는 선은 엄정히 표현 하여 '비무장군사분계선' MDL(Military Demarcation Line) 을 지칭하며, 이 선은 한반도 동서로 1,292개의 말뚝을 박아서 표시되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선위원회 측에서 2015년~2016년 3간 진행한 MDL Project의 조사결과로 자연부식으로 대부분 훼손되고 181개의 표식만 확인이 가능하였다 한다.
더구나 표식들이 정확히 MDL 선상에 위치하는지는 의문으로, 인력으로는 도상 위치에 정확히 표식을 세우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휴전선 별곡(別曲) - 수밚은 '선(線)'들과 지도들
이 MDL을 기준으로 남북이 각각 2Km씩 물러난 4Km 지역이 비무장지대로서 우리가 흔히 써온 DMZ(Demilitarized Zone)이다. 군사작전상 필요한 곳에 남/북 군은 각기 휴전선 남/북 한계선에다 불법으로 초소와 철책을 세웠다.
또한, 남방한계선에 연이어 몇 군데 접경지역에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을 알리 는 경계선)이 있는데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의하여 국방부장관이 지정 하며, 남방한계선에서 10Km 거리까지가 지정 가능 범위로 되어있다.
국방부장관은 나라의 발전에 필요하며 남북화해에 지름길이 된다면, 민통선을 축소 또는 해지할 수 있는 것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정부가 들어서 국방부 장관에게 이러한 검토를 명할 날이 기필코 올 것이다.
DMZ, 155마일, 자다깨도 읊을 수 있는 입에 붙은 말이다.
그런데 마일이 무어냐? 조상 대대로 우리는 이런 단위를 써본 적이 없고 지금 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선인 휴전선에 뜬금없이 '마일'이라고 붙여 놓고 73년을 읊어댔다. 그보다 더한 것은 155마일이란 길이의 문제이다.
강원대학교 지리교육학과 김창환 교수가 2011년에 펴낸 'DMZ 지리 이야기'에 의 하면, 휴전선(MDL)이 실측결과 약 148 마일 (238Km) 임을 확인했고, 미국의 'NASA'나 '북미지리협회' 도 공식적으로 148마일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그는 "DMZ에 대한 환상과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 " 이 책을 썻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73년이나 고수해온 'DMZ, 155마일'은 '환상과 오해' 의 한 자락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휴전선이 명확히 정의되지 못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공식적인 휴전선이 여러개 있다.
휴전회담에서 사용했던 당시 군사지도에 그어진 군사분계선이 있고, 유엔군사령 부군사정선위원회 조사반에서 사용하는 구글어스(Google Earth)로 나타낸 디지털 군사분계선이 있으며, 또한,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이 사용하는 디지털 군사 분계선이 있고,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이 사용하는 디지털 군사분계선이 있다. 또 하나는, DMZ 한국군초소인 GP와 OP 현장에서 인지하고 사용 하는 군사분계선까지 있는 바, 이 선들이 제각기 다르다고 유엔군사령부군사정선위원회가 주관한 MDL Project의 조사결과로 밝혔다.
5만분의 1지도상에 1mm 두께의 팬이 그은 선은 현장에서 50m에서 250m 까지 차이를 낼 수 있다니, 시대와 기준 및 방법이 각각 다른 지도에 표기되는 선들이 같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휴전선의 현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가능하다. 좌표 값이 각기 다른 지도 를 가지고 대치 중인 군은 의도하지 않은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런 충돌이 발생했다고 한다.
▲ img-3 고구려 ‘덕진산성’ 기념촬영(파주시 군내면) ⓒ 라영수
휴전선 별곡(別曲)을 마치며
10월 임진강 주상절리 버스킹을 끝으로 노인들의 '걸작 프로젝트'로 칭찬 받은 '2022년 휴전선 별곡(別曲)'을 마치게 되었다.
임진강은 6.25와 조선, 고려가 흐르는 아름다운 역사의 강이다. 북한 친구들이 꼬랑내 나는 발을 담군 그 물에 우리도 발을 담그며 통일을 생각케 하는 강이다.
이 사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다. 왜 이리 복잡한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칭찬받는 한국인들이 정작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왜 모르는 것인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일관된 의지와 노력이 따르지 않은 것 이다. 심지어 이런 혼란 상태를 기획/방조하는 일련의 세력이 웃으며 뒤에 숨어 있다고까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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