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리오 포스터 ⓒ 드니 빌뇌브 글을 쓸 때 가볍고 오락적으로 안 쓰면 억압되어 본능이 차단되었다고 힐난하는 사람이 있다. 공적으로 학술적으로 쓰는 사람에게 대한 비판이다. 이에 내용 없고 최소한의 사실만으로 비평을 한다고 맞받으며 두 세계는 공존, 공생한다. 해외의 저널리즘을 취급한 영화는 <굿나잇 앤 굿럭>, <네트워크>이 괜찮아서 그 세계를 새롭고 다르게 보여줬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국 테러정치를 취급한 영화가 알차고 기획력이 돋보이어 다 괜찮으므로 약간만 일정한 논지 내로 취급한다. <시라아나>는 부시 정부 때의 미국의 이슬람 테러정치를 다뤘다. 결국 이슬람의 실세 권력자를 암살하는 미국 정보요원과 그에 병치되는 미국 대학운동권 느낌의 사업가가 주연이다. 정보요원이나 사업가나 친 이슬람인 측을 하지만 상대차가 있다. <시카리오>는 1, 2부가 있는데 본편인 1부 암살자의 도시가 오바마 때의 중남미의 역시 테러정치를 잘 그렸다. 달라진 점은 좀 더 내밀하게 정보기관의 속내와 실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불법으로 제거공작을 일으키는 측과 감시하는 측이 다르다. 미국의 테러정치는 이슬람이든 중남미든 일정하다. 미국의 적에겐 국제법적 불법인 제거나 공습과 같은게 가능했다. 자국법으론 인허가를 받았으며 007처럼 면허권이 열리는 요원은 영웅으로 처리되지만 법규에 대한 고민 외 양심상의 가책은 적다. 그 이유는 큰 목적을 위해 작은 오류는 배제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에 관한 제도권 교육의 오래된 이데올로기 윤리교육관 모순적이다. 목적이 정당해도 수단이 나쁘면 안 된다든지 수단의 부당함으로는 목적을 정당화 못한다와 같이 예시된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 허구다. 이 문장은 현실반영과 허구 중 어디에 강조점을 둘지 사뭇 개성적이다. 관객의 가치관대로 영화를 현실반영물로 보든지 허구로서의 작품으로 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가 통상 사실주의라는 리얼리즘이다. 왜 이리 되냐면 영화를 보면서 어디까지 사실일까 어디를 넘기면 사실이 아니겠지란 의문점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이 실제인데 이와 같이 노출이 되면 바로 야당의 청문회 및 법무부 기소 대상이다. 단지 그 내용이 보여주는 점은 요새 우리 서민들의 대북, 대중 감정처럼 미국민의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정서다. 그게 여론을 규격 잡는 사람들과 온도차가 상당하다. 그 점은 이와 같은 영화의 높은 흥행실적이나 관객집중도가 보여준다. ▲ 시리아나 포스터 ⓒ 스티븐 개건 #시리아나 #시카리오 #조지 클루니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